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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가정에 대하여

[스크랩] 高麗 按廉使公 崔龍生(고려 안렴사공 최용생)

by joolychoi 2007. 4. 1.

 

 

 

   按 廉 使 公   崔 龍 生 (안렴사공 최용생)

 

 

 按廉使公全州崔氏 文成公系 始祖 文成公 崔阿(전주최씨 문성공계 시조 문성공 최아)

 큰 아들로 諱(휘)는 龍生(용생)이며, 高麗 忠定王(고려 충정왕/1350년)때 持平(지평) 벼슬을

 하다가 慶尙道 按廉使(경상도 안렴사)가 되었다.


 당시 高麗는 元나라의 屬國(속국)으로 해마다 어린 소년 소녀들을 붙잡아 元나라에

 朝貢(조공)으로 바치고 있었는데, 이렇게 고려에서 元나라에 조공된 사람들은 대부분

 元나라 貴族이나 관료들의 從僕(종복)으로 살아가게 되었지만, 그 중 일부는 원나라

 皇室의 內侍(내시)가 되기도 하였다.

 

 특히 奇氏女人(기씨여인)은 元나라 황제의 눈에 들어 황후(皇后)가 되기도 했다.
 그로 인하여 奇皇后(기황후)의 오빠 奇轍(기철)을 비롯한 元나라의 총애를 받는 내시

 무리들의 고려에 남아있는 가족들은 고려 정가의 實權을 장악하고 많은 暴政(폭정)을

 휘둘렀다.  

 

 이런 상황에서 按廉使公元나라 내시들과 연결된 고려 조정내 姦臣들의 죄를 낱낱이

 들추어 전국에 방을 붙여 세상 사람들에게 暴露(폭로)하였다.


 이에 내시 朱元之(주원지)가 王에게 참소 하여 按廉使公을 파직시켜 慶尙道 泗川으로

 귀양가게 하고 金有謙(김유겸)에게 慶尙道 按廉使를 대신하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按廉使公의 후손들은 慶尙南道 地域을 중심으로 살게 되었는데, 후손은

 주로 진주를 비롯한 경남 서부지역에 많이 살고 있으며, 이들을 全州崔氏 按廉使公

 (전주최씨 안렴사공파)라고 부른다.

 按廉使公의 큰아들은 崔君甫(최군보)로 후손이 전해오지 않는다.
 작은아들 崔田雨(최전우)는 판도 정랑을 지냈으며 후손이 전해와 경남 고성군 구만면

 효락리에 약 200여호의 集姓村(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으며, 산청군, 하동군, 사천군,

 통영군 그리고, 경북 구미시 등지에 약 1,700여호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사위 吳蒙乙(오몽을)은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寶城君(보성군)이라는 尊號를 받았다.

 


             어구 및 고관직 설명

 

 돌아가신 분의 이름.   살아 계신 분의 이름은 (함)이라 한다

尊號

존호

 왕의 宗親이나 고려조 종1품, 조선조 종2품 이상 벼슬의 신하에게

 왕이 내리는 이름으로 대부분 **君(ㅇㅇ군)이라고 호칭했다

按廉使

안렴사

 고려시대 지방장관으로 절도사. 안찰사라고도 하며, 지금의 광역시장

 또는 도지사와 동등한 위치의 관직이다



        
 

출처 : 全州崔氏 文成公子孫
글쓴이 : 한국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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