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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틀라스의 발-그 인고(忍苦)의 상징, 주춧돌

by joolychoi 2006. 9. 18.

주춧돌은 주초석(柱礎石), 초석(礎石)이라 하며 건물의 기둥 밑을 받치는 돌을 말한다.

 

                                김제 금산사 미륵전의 주춧돌들


주춧돌은 구조적으로 건물 전체의 하중을 감당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만약 주춧돌 자리가 꺼지면 건물이 내려앉으며 찌그러지게 된다.

 

  주춧돌 아래 기초가 부실하여 기울어진 건물- 많은 비용을 들여 해체하고 누각으로 새로 지어졌다.

 

적어도 건물이 서 있는 세월 동안은 그 짐을 모조리 떠받고 버티어내야 하는 것이

주춧돌의 피할 수 없는 업보다.


제우스신의 노여움을 받아 평생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의 운명,

 

 

건물의 기둥과 함께 주춧돌은 그 아틀라스의 처지와 고스란히 닮았다.

기둥이 아틀라스의 몸이라면 주춧돌은 그 몸까지 버티고 선 고통스런 발이다.

그나마 홀몸이 아니라 동무가 여럿 있다는 것이 조금 위안이 될까!

아마도 한때 우리 성주신의 심사를 되게도 그르쳤는가 싶다.


아무튼 그런 까닭에 주춧돌을 놓는 일은

무엇보다 건물의 구조적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작업을 하여야 한다.

특히 주로 무거운 기와를 얹은 한옥의 무게를 감당하려면

건물터의 토질이나 물길 같은 것을 잘 판단하여 주춧돌 아래 기초를 완고히 하여야 한다.


시멘트가 제조된 이래로 한옥의 기초에도 철근콘크리트로 바닥 전체에 통기초를 하거나

주춧돌 놓일 자리부분만 연결하는 줄기초 등을 하고 그 위에 다듬은 가공초석을 많이 놓는다.

 

           위로부터 통기초, 줄기초, 독립기초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 전엔 주로 주춧돌 자리마다 독립기초을 하였는데 여기에도 여러 방식이 있으나 대개는 각 주춧돌 자리마다 따로 깊이 파서 잡석을 조금 채우고 그 위에 강회와 석비례, 모래 등을 섞어 만든 삼화토(三和土)를 넣어 달고질(다지는 일)을 하고 또 잡석을 채우고 삼화토를 넣어 다지고 하는 식으로 몇날 며칠 작업을 해서 그 위로 주춧돌을 놓았다. 지금도 문화재보수 현장에서는 이러한 방법을 기본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전통방식으로 각 주춧돌 아래를 독립적으로 다진 건물 

 

그리고 주춧돌을 놓는 일은 지금은 목수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여기고 맡아 하지만 예전엔 목수가 규준틀(야리가다)을 세워 실만 튕겨 놓으면 돌을 다루는 석공(石工)들이 맡아 하기도 하였다. 주춧돌 자체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어서 돌 다루는 일은 역시 석공이 제격이었던 탓이다.


이렇게 주춧돌이 놓이면 기둥을 세우는데 그 기둥 밑 부분을 가운데가 조금 들어가게 파 놓고 기둥을 바로 세우기 전 주춧돌 위 중심에 소금이나 잿물, 간수(艮水,苦鹽) 그리고 숯 등을 놓고 그 위로 기둥을 세운다. 이는 사악한 기운이나 기둥을 썩게 만드는 습기와 벌레 같은 것을 막고자 하는 까닭이다.

 

       주춧돌 위에 소금과 숯을 놓고 기둥을 세우는 모습

          (인용:<한옥살림집을 짓다>김도경.현암사)


 

주춧돌의 유형


주춧돌의 유형을 간단히 나누어보면 자연스런 돌을 그대로 사용한 자연주초석과 큰 돌(巨石)을 여러 덩이로 켜내어 다듬거나 또는 크기가 적당한 자연석을 여러 형태로 다듬은 가공초석으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옛 건물에는 자연석을 쓰되 윗부분만 모양을 다듬어 사용한 혼합된 형태도 더러 있다.

그리고 고대의 헛간이나 움막 같은 간이용 건물에 나무로 주초석을 한 경우도 있었다.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자연주초 또는 덤벙주초라고 부른다.

 

                            김해향교 동재 건물의 자연석 덤벙주초

               주춧돌 왼쪽이 조금만 더 들렸으면 좋았을 걸 싶은 모습이다.

 

이런 경우 돌의 모양이 아래와 윗면만큼은 되도록 평평하여야 하고 기둥이 서는 자리의 중간부가 조금 볼록한 것이 물기가 고이는 것을 방지하고 위로부터의 압축력을 버티어내는데 이상적이며 각 돌들의 높이도 어느 정도는 비슷한 것들을 사용하면 더욱 좋다.

 

해남 미황사 대웅전 주초석 - 자연석을 살리면서 상부에 연화와 주좌면을 다듬은 혼합형.

 

그리고 계곡의 정자와 같은 건물에는 주춧돌을 따로 두지 않고 아예 개울가의 넓은 암반 자체를 주춧돌 삼아 그 위에 바로 나무기둥을 세운 경우도 더러 있다.

 

                  경남 함양의 군자정-거대한 암반 자체를 각 기둥의 주춧돌로 삼았다.

 

이 자연석에 관한 일본 최후의 궁목수로 불렸던 니시오카 츠네카츠(西岡常一) 선생의 말씀을 잠시 들어보자


“돌의 중심이라고 하는 것은 돌의 한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다. 돌에서 가장 뚱뚱하게 되어 있는 거기에 있다. 그런데도 보기에 좋다고 해서 돌의 중간에 기둥을 세우면 어찌 되겠니? 거기에 건물의 힘이 전부 실리는 것이다. 그것을 견뎌낼 수 있겠냐? 처음이야 좋을지 모르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흔들린다.”

(나무의마음 나무의생명. 니시오카 츠네카츠 지음/최성현 옮김. 삼신각. 1996)


이 말은 자연석을 사용할 때 무조건 돌의 가운데에 기둥의 중심을 두려 하지 말고 돌의 모양을 잘 살펴서 약간 비켜서더라도 돌의 두께가 실한 곳을 중심으로 잡아 사용하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자.


“자연석 위에 세워진 기둥의 밑바닥은 방향이 가지각색입니다. 지진이 와서 흔들리더라도 힘을 받는 방향이 다릅니다. 그리고 뭣보다도 볼트 따위로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진이 오면 흔들리며 어느 정도 기둥이 어긋날 테지요. 그러나 곧 원래대로 되돌아옵니다. 그러한 각기 다른 ‘놂’이 있는 움직임이 지진의 요동을 흡수하는 것입니다.”(위의 책)


자연석을 주춧돌을 쓰는 경우 기둥이 서는 자리가 수평이 아니라 돌 생긴 대로 울퉁불퉁하다. 이런 경우 돌 위에 기둥을 수직을 똑바로 잡아 세워놓고 기둥 밑 부분 가장자리 선을 따라 그레칼(요즘의 콤파스)로 울퉁불퉁한 돌 모양대로 기둥에 선을 그려서 기둥을 눕혀 그어진 부분을 끌로 따내고 다시 세운다.

 

                주춧돌 생긴대로 기둥에 그리는 것을 '그레질한다' '그렝이 뜬다' 라고 한다.

                 이렇게 맞추어 따내고 세워놓으면 아주 안정되게 기둥이 서 있게 된다.

 

김해 은하사 대웅전 해체복원공사 때 기둥 세우는 모습.

기둥을 주춧돌 위에 한번 세워서 기둥의 각 면에 추(다림추)를 내려서 수직을 보아

기둥이 똑바로 섰을 때 주춧돌 생긴 대로 그레칼(콤파스)로 모양을 뜬다.

양쪽에서 지지목을 잡은 사람들은 기둥 수직을 볼 때 기둥을 밀고 당겨주는 역할을 한다.

수직으로 기둥이 서면 중앙의 책임목수가 '숨도 쉬지 마라' 하고는 주춧돌 생긴대로 기둥에 그린다.

그리고는 기둥을 눕혀 그린 선대로 따내고 다시 세우면 기둥이 정확하게 선다.


 

이렇게 세워진 기둥은 자연석과 아귀가 딱 맞게 세워지는데 한 기둥에만도 이 각각의 접점들이 다양한데다 한 건물의 모든 기둥으로 치자면 수많은 접점들이 있어 건물이 흔들릴 경우에 이 다양한 접점들이 상호간에 묘한 완충작용을 하여 건물을 지탱해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일본의 궁목수는 ‘각기 다른 놂’이라는 표현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고대건축의 자연적 맞춤 기법들에는 이렇듯 오묘한 이치들이 군데군데 숨어 있다.


(우리 건축을 말하는 자리에서 일본 궁목수의 표현을 빌리게 되어 좀 안타깝긴 하지만 우리의 기록들은 수많은 변란으로 인해 너무나 찾아보기 힘든 형편이어서 역사적으로나 또 그 방식의 동일함으로 보더라도 다를 것이 없어 인용을 하였으니 그리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다음으로 자연석을 다듬어 만든 가공초석에 대해 살펴보자.

 

가공초석은 형태로 보면 사각형, 다각형, 원형 등이 있는데 대개 기둥과 닿는 부분인 상부 주좌면(柱座面)은 얹힐 기둥의 모양과 동일하게 만들고 맨 아랫부분인 초석면(礎石面)의 형태는 주로 사각형으로 다듬는다.

 

솟을 삼문의 방형(사각)주초석

 

경주 오릉 홍살문 팔각주초석 - 기둥이 주춧돌에 끼워지도록 만든 구멍주초(확주초)

 

순천 송광사 요사채 원형주초석

 

경복궁 근정전 회랑 일곽의 주춧돌.

각각 한쪽은 방형(陰), 원형(陽)으로 다듬어 음양(陰陽)의 이치를 담아놓았다.

 

기둥과 닿는 주좌면을 도드라지게 접어 올린 것을 돋은주좌(凸彫柱座), 두 번 이상 접으면 층단주좌라 하며, 그 아래로 배가 부르게 쇠시리를 하고 맨 밑면은 쇠시리면보다 조금 넓게 사각형으로 만드는데 이러한 것을 철조주초(凸彫柱礎)라 부른다.

 

철조 초석(凸彫礎石)의 단면과 평면(인용:<목조>장기인.보성사)

 

양양 낙산사 조계문 - 맨 위 요철부분이 없는 원형주초석

 

울산 고경사 대웅전 주초석.

기둥이 닿는 부분을 한번 접어올린 그야말로 전형적인 '철조고복주초석(凸彫鼓腹柱礎石)'으로

맨 위에 요철(凸)을 두고 옆의 쇠시리한 면이 북(鼓)의 배(腹)처럼 생겼다고 붙인 이름이다.

 

 

순천송광사 종각 - 위 부분에 요철을 두번이나 접어 층단주좌를 둔 원형주초석이다.

 

그리고 건물의 격이나 형편에 따라 주춧돌 옆면에 연화(蓮花)나 거북과 같은 상징적인 문양들을 새겨 넣기도 하고 주춧돌 자체를 특수한 모양으로 다듬기도 하며 일주문이나 대문, 그리고 안내문 같은 것은 그 형편에 따라 특별히 만들어 설치한다.

 

김해 보륜정사 대웅전 연화새김주초석

 

김해 예암서원 본채 - 거북문양을 새긴 주초석

 

순천송광사 강원 일각문의 주춧돌.

파여진 홈의 용도가 참으로 궁금하다. 다른 부재를 끼워서 기둥을 잘 고정하기 위함인지?

 

 

해남 대흥사 팔각형종각의 주춧돌 -  자연의 문양을 새겼다.

 

 

청학동 삼성궁 국조전 주춧돌 - 삼태극 문양

 

 

순천송광사 진여문 주초석 - 아예 초석자체를 거북모양으로 만든 주춧돌

 

 

보은 법주사 일주문 주초석 -본기둥을 받치는 가새의 형편에 맞춘 주춧돌이다.

 

문경 김룡사 일주문 주춧돌

 

나주 불회사 일주문 주춧돌

 

 

경복궁 근정문 주초석 - 대문 자체가 얹혀 돌아가도록 주춧돌을 넓게 만들어 홈을 팠다.

 

김해 예암서원 가묘의 일각대문 주춧돌

낮고 긴 사각주초 위로 본기둥은 장초석을 한 단 더 두고 샛기둥은 그냥 얹었다.

 

 

청도 운문사 안내문 주춧돌.

바람에 넘어가지 않도록 주초석 위로 신방석을 두어 양쪽으로 본기둥을 끼웠다.

 

수덕사 근역성보관 안내문의 주춧돌

주초석 위로 신방목을 두었다.

 

그리고 하방 아래 당골막이가 깔끔하게 처리되도록 주춧돌 좌우로 인방두께만큼 홈을 파놓은 것을 '고막이물림주초'라 하고 반대로 주춧돌 좌우로 역시 인방두께만큼 각지게 살을 내어놓은 것을 '고막이돋은주초'라고 한다.

 

         부산 범어사 설법전 고막이돋은주초 - 주춧돌 좌우로 각지게 살이 붙은 부분이 보인다.

 

또 기둥 하부의 부식을 우려하여 주춧돌 자체를 높게 만든 것을 장초석(長礎石)이라 하고

누각 같은 건물에선 아예 나무기둥 대신 돌을 깍아 세운 돌기둥을 둔 곳도 더러 있다.

 

            부산 범어사 대웅전의 장초석 - 기둥 높이의 반 가까이나 되게 높게 두었다.

 

순천 송광사 대웅보전 장초석 - 장초석에도 연화문양을 새겨 격을 돋구었다.

 

    하동 청학동 삼성궁의 청학루 누하장초석 - 누각 같은 곳 하부에 장초석을 많이 둔다.

 

 

         김제 금산사 보제루 누하석주(樓下石柱) - 누각 아래 돌로 세운 기둥

 

 

                                   남해 현풍곽씨 재실의 돌기둥

 

 

      남해 금산 보리암의 극락전 돌기둥 - 용을 조각하여 한껏 장엄을 드러내고 있다.

 

 

부산 괴정 해인정사 대적광전 주초석.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인데 이런 경우에는 주초석의 중앙에 구멍을 내어

철근을 꽂아 세우고 거푸집을 만들어 콘크리트 타설을 한다.

 

 

끝으로 주초석 외에 건물의 하부 바닥에 설치하는 다른 용도의 돌들이 있는데

대문 같은 곳의 문이 달리는 문선(門扇:문설주)을 지지하는 역할의 신방석(信枋石)과

닫힌 대문이 밀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원산(遠山) 등이 있다.

 

진주 대곡의 재실 청우재 솟을삼문 신방석

화려한 조각으로 된 돌이 신방석이다. 나무로 만들면 신방목이라 한다.

 

 

경남 고성 구만의 한 재실 솟을 삼문 어칸 대문의 원산.

주로 원산은 방의 미서기문이 서로 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얇은 철판으로 만들어 문지방에 고정시켜 놓은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깔끔하게 돌을 다듬어 대문의 밀림을 방지하고자 했다.

 


여기까지 대략 우리 건축물에 있어 버팀돌 격인 주춧돌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목수의 과문함으로 더 많은 얘기를 들려드리지 못함을 하량으로 보아주시길 바라며

파고 들면 들어갈수록 오묘한 우리 건축의 모습들, 찬찬히 돌아보시고

잠시나마 고된 마음 편하게 풀어버리고 가시기를...^^

출처 : 문화예술
글쓴이 : 이목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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