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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저승가는 길과 살아 움직이는 자리

by joolychoi 2006. 9. 19.

한참 자료를 뒤적거리다 뜻밖에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풍경들을 오랜만에 보았다.

 

여러 해 전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담아놓은 것들인데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혼자 보고 덮어두기가 아쉽기도 하고 나름대로  느끼는 바도 있어 이렇게 올려본다.

 

 

저승가는 길

 

 

먼저 현란한 상여를 따라 저승가는 길의 의미를 한 번 더듬어보자

 

 

위 그림은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치를 때 쓰이는 상여(喪輿)이다.

 

이름하여 산청전주최씨고령댁상여(山淸全州崔氏高靈宅喪輿)인데

 

조선 철종7년(1856년)에 제작된 것으로

 

각부의 조각과 조립형태가 정교하고 제작연대가 분명한데다

 

구조도 특이해 상여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어

 

1996년 중요민속자료 제230호로 지정되었다.

 

 

 

보통 가마가 산 사람이 타고 다니는 것이라면 상여는 죽은 자가 타고 저승길로 가는 가마이다.

 

그런데 가마는 그 임자가 반복해서 타고 다니며 어디를 다녀온다는 왕래의 산물이지만

 

상여를 탄다는 것은 일생에 한 번뿐인데다 타고 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한마디로 상여가 지니고 있는 그 일회성과 다시는 회귀할 수 없는 단절의 속성,

 

그것이 바로 우리가 '상여'를 바라보는 마음이 '슬픔'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 상여를 보면 꼭 그 함의(含意)가 슬픔만은 아닐 것도 같다.

 

상여의 모습을 찬찬히 한 번 들여다보자

 

 

 

 

4층 누각의 기와집 모양으로 만들어진 상여에 대한 문화재청의 설명은 이렇다.

 

"긴 멜대 위에 4층 기와집 형태의 몸체가 조성되고 맨 위에 햇빛을 가리기 위한 넓은 천이 쳐있다. 1, 2층 아래 부분에는 난간을 두르고 난간 위에 인물조각상을 세웠는데

망자가 외롭지 않게 저승길을 함께 가는 사람들과, 저승길을 인도하는 신선으로 알려진 동방삭을 표현한 듯싶다.

 

3, 4층은 몸체 위에 지붕을 얹은 모습이다.

목조건축양식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는데 마치 기와집 두 채를 포개어 놓은 모습이다.

지붕의 추녀 끝에는 날개를 접은 새를 두고 4층 용마루에는 날개를 펼친 새를 꽂았는데 저승새를 의미한다.

전면에 가득한 조각과 그림들은 용, 동물, 식물, 인물 등의 문양이 다양하고 색깔도 화려하다.

특히 3층 지붕 아래에 연꽃이 시들어가는 과정을 조각한 것이 흥미로운데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까지를 보는 듯 서글프다.

장례행렬에서 상여는 요령잡이의 방울소리와 노래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두 개의 긴 멜대 중간 중간에 횡목을 끼워 그 사이에 사람이 들어가 어깨에 메고 운반하도록 되어 있다. "

 

 

 

 

화려한 형상도 그렇지만

 

만들어진 동기나 오랜 풍상 속에서도 박물관까지 오게 된 연유 또한 그리 예사롭지가 않다.

 

"전주 최씨 통덕랑공파(通德郞公派) 21대손인 최필주(崔必周)의 시신을 장지까지 운반하던 기구이다.

최필주는 대단한 부자였는데 그가 죽음에 이르자

맏아들이 경남 통영의 조각공을 초청하여 만들게 한 것으로 6개월에 걸쳐 제작되었다 한다.

개인 상여로 보관하던 것을 ‘진주화단친목회’에서 구입하여 사용하다가

1994년 나라에 기증함으로써 현재 서울국립민속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상여 명칭은 최필주의 후손 중 고령군수를 지냈던 사람이 있었으므로 관직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

 

 

 

위 글은 구한(舊韓) 말에 이 땅을 방문한 두 외국인들이 본 우리네 장례식 풍경이다.

 

민씨네 한 집안 장례에서 상여꾼만 72명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민비의 집안이었을까? 아무튼 대단한 위세의 장례식인 셈이다.

 

 

 

 

상여에는 인형 외에도

 

"용과 봉황 등의 초월적 상상물에서 귀면과 저승사장와 같은 신격 그리고 연꽃과 호랑이, 병아리

 

등"이 있는데 이는 "현실적인 동식물에 이르기까지 죽은 이를 아무 탈 없이 저승까지 이를 수 있도

 

록  보호하는 구실과 저승에서 온전하게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구실을 한다."

 

 

 

장엄한 오색단청,

 

이 또한 슬픔을 넘어 가는 길을 축복하고 새로운 삶을 기약하는 뜻이 아니겠는가!

 

 

 

새악시같은 청사초롱이 가는 이의 앞을 밝히니 그 어찌 외롭다고만 하겠는가!

 

 

 

 

한옥 건축의 고격한 수법인 다포의 양식으로 상여를 장식했다.

 

3층에는 연꽃이 피어서 점점 시들어가는 과정을 표현하여 덧없는 인생을 나타내었다 한다.

 

 

 

 

서까래도 겹서까래로 만들어 처마를 받치고 다포식의 공포양식을 두는 등

 

상여의 형상을 산자의 대궐집보다도 더 장엄을 하고자 하였으니

 

상여 역시 이승의 양택(陽宅)에서 저승인 음택(陰宅)으로 가는 길목의  

 

또 하나의 집으로 표현하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추녀 끝에 달린 풍경은

 

상두꾼이 그 풍경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찬찬히 상여를 옮기라는 뜻과 함께

 

산중에 갔을 때 맹수를 쫓기 위한 금속성의 소리를 내라는 현실적 상징물이다.

 

 

 

상여에 장식 중 다양한 남녀의 모습으로 조각된 인형들을 기호인형이라 하는데

 

죽은 이를 안전하게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시립용(侍立俑)으로 칭한다.

 

 

 

좀은 특별한 상여 하나를 통해 저승가는 길을 잠시 생각해보았다.

 

요즘은 이런 상여는 보기가 힘들어졌고 한 번 만들어 사용하고 태우는 것이 일반이다.

 

하지만 규모나 형식이 달라졌다고 세상일을 굳이 마음으로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살아 움직이는 지금 이 자리에서 고마운 마음으로 즐겁게 나누며 살아가는 그것이

 

먼저 가신 분들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고운 정성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며

 

이젠 산 사람 모습도 한 번 살펴보고 마쳤으면 한다.

 

 

 

살아 움직이는 자리

 

 

아래 그림들은 상여 바로 옆에서 벌어진 풍경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온통 즐거운 놀이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있다.

 

한쪽에서 그 현란하던 상여가 빤히 내려다보고 있다.

 

이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고 있는 상여의 마음은...! 

 

 

 

 

온통 돌멩이 투성이다.

 

비석치기는 아닌 것 같고 전투가 벌어진 모양인데 한 방 맞으면 머리통 꽤나...^^

 

목수 어릴 적엔 연탄재를 담아서 많이 싸웠었다, 물도 한 바가지씩 퍼부으며^^

 

 

 

 

널뛰기는 아무래도 여자아이들 몫이다

 

그래서 여성들이 꽤 활발했다는 고려 때 생겨난 놀이라 한다.

 

엄격했던 조선시대엔 아무래도...

 

언제나 중간에 막둥이 한 녀석 꼭 끼어들었다^^

 

 

 

 

단오날 그네 뛰는 아가씨!

 

저 건너 웬 도령 하나 한 눈에 반해서 서 있는 거 아닌지^^

 

 

 

날은 추워도 쌩쌩 연은 날아간다.

 

방패연, 가오리연, 문어연 입맛대로 날려본다.

 

추위도 날려버리고 나쁜 기운들도 모두 날려버리고

 

우리 꼬맹이들 내내 튼튼하게 자랄 수 밖에^^

 

 

 

"아쿠나! 모다 모!"

 

왼쪽 꼬마 두 팔을 한껏 쳐든 걸 보니 제대로 한판 나온 모양^^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방뎅이 꼬마녀석 그나마 장독 뒤에라도 겨우 숨어들었건만

 

눈치없는 발발이 고마 바지자락 물고 늘어져 뿌렀다^^

 

 

 

그러고 보니 우리네 인생도 술래잡기 놀이를 닮았다.

 

저마다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잡으려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대충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가는 감이 좀 잡힐 듯^^

 

 

 

엉뚱한 그림들로 바쁜 살림 헷갈리게 해드린 건 아닐런지

 

혹시나 하면서 한 소리 마칩니다.

 

보람있는 시간들 되시길 바라면서...

출처 : 사는 이야기
글쓴이 : 이목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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