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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마음의 시(詩)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 이어령 (영상시 첨부)

by joolychoi 2022. 9. 5.

 

♥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 이어령 ♥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하나의 공간(空間)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조그만 이파리 위에

우주(宇宙)의 숨결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내가 혼자인가를 알았다.

푸른 나무와 무성한 저 숲이

실은 하나의 이파리라는 것을...

 

제각기 돋았다 홀로 져야 하는 하나의 나뭇잎,

한 잎 한 잎이 동떨어져 살고 있는

고독(孤獨)의 자리임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 잎과 잎 사이를 영원(永源)한 세월(歲月)과

무한(無限)한 공간(空間)이

가로막고 있음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살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다.

왜 이처럼 살고 싶은가를,

왜 사랑해야 하며 왜 싸워야 하는가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생존(生存)의 의미를 향해 흔드는 푸른 행커치프...

태양(太陽)과 구름과 소나기와

바람의 증인(證人)...

잎이 흔들릴 때, 이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生)의 욕망(慾望)에 눈을 떴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들었다.

다시 대지(大地)를 향해서 나뭇잎은 떨어져야 한다.

어둡고 거칠고 색채(色彩)가

죽어버린 흙 속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본다.

 

피가 뜨거워도 죽는 이유를 나뭇잎들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생명(生命)의 아픔과, 생명의 흔들림이,

망각(忘却)의 땅을 향해 묻히는 그 이유(理由)를....

 

그것들은 말한다.

거부(拒否)하지 말라.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대지는 더 무거워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인력(引力)이

나뭇잎을 유혹한다.

언어가 아니라 나뭇잎은

이 땅의 리듬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다.

별들의 운행(運行)과 파동은

같은 질서(秩序)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우리들의 마음도 흔들린다.

온 우주의 공간이 흔들린다.

(73) 시니어시낭송가 |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 이어령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