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열어 '김영란법' 적용을 받는 공직자(公職者)의 범위를
공·사립 학교 교사와 모든 언론기관 종사자로 확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김영란법은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제안한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을 말한다. 당초 김영란법은
공직자를 국회의원과 공무원, 공직 유관 단체와 공공기관
임직원으로 국한했다. 정부가 여기에 국·공립 교사를 포함시키자
국회는 사립학교 교사와 언론인까지 집어넣은 것이다.
국회는 이렇게 적용 대상을 확대시킨 안을 놓고 새로
구성되는 후반기 국회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김영란법의 핵심은 공직자가 100만원 이상 금품을 받으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관계없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처벌하는 내용이다. 100만원 미만일 때는 받은 돈의
2~5배 과태료를 물리게 돼 있다. 지금의 뇌물죄로는 공무원이
평소 기업인이나 지역 유지들로부터 촌지와 골프·술 접대를
받으면서 스폰서 관계를 맺어 왔다 하더라도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으면 처벌할 수 없다.
국회의원과 공무원은 연간 수백조원의 예산을 편성·집행하고 인·허가,
감사, 수사, 감독 등 국민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권한을 행사한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부패(腐敗)할 가능성이 있다. 공무원이 부패하면
법 질서가 무너지고 그 피해는 사회 전체가 보게 된다.
세월호 참사는 그 대표적 사례다. 이런 공무원 부패를 막기 위해
국가는 공무원들에겐 특별한 혜택을 제공한다. 형사처벌이나
징계를 받지 않으면 정년 때까지 직장을 보장하고, 20년 이상
근무하면 국민연금의 2~3배 되는 연금도 평생 준다. 뇌물을
받지 말고 맡은 업무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따라서 공무원이
금품을 받으면 일반 국민과 다른 잣대로
엄중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공립 학교 교사는 공무원 신분이긴 하다. 일부 교사가
학부모들로부터 받는 촌지가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 오가는 사례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언론사 기자는 예산을 편성·집행할 권한도,
무슨 인·허가를 해줄 권한도 없다.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런 기자들을 공무원과 똑같은 방식으로
규제하겠다니 국가가 기자에게 월급 주고
연금이라도 보장해주겠다는 것인가.
국회는 정부가 작년 8월 제출한 김영란법을 이제껏 내버려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세월호 참사로 공직 부패 척결 여론이 높아지자
뒤늦게 논의에 나서더니 공직자 범위에 교사와 기자들까지
포함시키자고 나왔다. 이 경우 김영란법의 적용을 직접 받는
대상자 숫자가 186만명이나 되고 이들의 가족까지 포함시킬
경우 최소 550만명, 최대 1786만명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국회가 법 적용 대상을 대폭 확대시켜 해당 집단들의 반발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 김영란법
처리를 유야무야시키자는 속셈으로 볼 수밖에 없다.
김영란법만큼 국민 지지를 받고 있는 법안이 없다. 그런데도
국회의원들이 꼼수를 부리면서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은 이 법을
무산시키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민이 뽑아준 사람들이
국민 뜻을 정면 거역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들 행동은
'우리부터 김영란법을 지킬 자신이 없다'고 인정하고 있는
꼴이다. 대한민국 국회의 윤리(倫理) 수준이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