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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世德叢覽(全州崔氏 按廉使公 宗會)

10. 총 담 (叢 談 ) [1-2]

by joolychoi 2013. 11. 19.

 

 

 

  

세덕총람 (世德叢覽) 
 始祖 文成公 墓所

10.총 담 (叢 談 ) [1] 에서 계속 

  

10. 총 담 (叢 談 ) [1-2] 
 
 O 꿩이 왜군(倭軍)을 쫓다. 

완해군 최산휘(崔山輝)는 전주인으로 인재공 최현(崔晛)의 자이다

어려서 임진왜란을 당하자 해평리 동민은 모두 피난갔는데 공은

6살 무렵 이웃 보리밭에서 피난중 너무 고통스러워 울먹이자, 그때 마침

왜군이 그 앞을 지나 가다가 사람 소리 듣고 멈추어 서서 실피는데,

그때 마침 꿩 한 마리가 푸두둥 날아오르자 왜군이 날라가는 꿩 소리인줄

알고 지나쳐 갔다고 한다. 이 사실이 항간에 퍼지자 장차 나라에 큰 일을

헤 낼 아이라 하늘이 돌봤다고 칭송이 자자하였다는 말이 전해졌는데,

과연 공은 장성하여 광해군의 잔당인 루효립(柳孝立)의 음모를 고변

(告變)하여 영사공신에 녹훈되고 완해군(完海君:完山崔氏海平居住의

頭文字)에봉해졌으며 불천묘(不遷廟)가 특시(特施) 되었다.

 자헌대부 호조판서 겸지의금부사 행 갈충효성 연사공신

(竭忠効誠寧社功臣) 통정대부청송도호부사를 지냈다(최열)

 
 
 O 적덕(積德)이 급제(及第)보다 낫다.

영모재공 최진추(崔震樞)는 시조 문성공 최아(崔阿)의 15세손이고

찰방공 최진호(崔振虎)의 증손으로 고성군 개천면 청광리에 살았다.

일찍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전시(殿試)를 보려고 괴나리 보심을

메고 금강(錦江)을 지나는 무렵 날이 저물어서 어느 객사(客舍)에

짐을 풀고 침상에 들었다.그런데 사람의 울음소리가 귓전을 울리기에

잠에서 깨어 가만히 듣고 보니, 바로 이웃집에서 나는 곡소리였다.

이 곡소리가 너무 애통하여 객사 주인에게 그 연유릉 물었더니 며칠

전에 친상(親喪)을 당하였으나 가세가 너무 가난하여 장사를 치를

장례비를 마련 못하여 그냥 몇날 며칠을 그대로 애통하게 곡소리만

내고 있다는 말이었다.

 

공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사정이 너무 측은하여 그 자리에서

상주(喪主)를 불러 친상을 조문하고 돈 주머니를 끌러서 장례비가

되도록 주었다. 상주는 너무 고맙고 황송한 마음에서 복받치는 눈물을

금치 못한 채 사례하면서 공의 성함을 물었으나 공은 알 필요가 없다고

어서 잘례를 치루라 타 일러 돌려 보낸 뒤 집으로 되돌아 왔다.

어머니 께서 과거 볼 날이 닥치지도 않았는데 미리 돌아오는 공을

괴이하게 여겨 그 연유를 물었더니 공은 숨김없이 사실을 어니에게

여쭈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적덕(積德)이 급제(及第)보다 낫다.”

하시면서 공을 위로하고 칭찬하여 주셨다.

 
 

그 상주는 공의 도움으로 친상을 잘 치른 후 보은(報恩)할 생각이

뭉게 구름처럼 일었으나 그가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어서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러니 그는 이때부터 풍수 지리학을 공부하여 전국

방방곡곡을 식객(食客)행세를 하면서 떠돌아 다니다가 고성군 개천면

청광리 담티재에 이르러 객사에서 잠이 들었다.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멀하기를 “너의 은인이 여기에서 머지 않은 곳에 있다.

그 은인이 이제 막 모상(母喪)을 당하여 장사를 지낼 날을 택하고

있으니 네가 명혈(名穴)의 한 자리를 찾아 장사 할 곳을 정하여

주는 것이 전날의 보은(報恩)에 답함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따라 오너라.“고 하여 그 노인을 따라 나섰다.

 

노인은 한참을 걸어가다가 지금의 구만면 선동 산내골에 이르자.

“여기 는 와우형(臥牛形)이다.” 라고 하고 그 안산을 가리키면서

“ 저 봉우리는 속초봉(束草峰)이라 부른다” 라고 하였다.

그런데 정혈(正穴)을 분간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노인은 지팡이로

산허리를 찌르면서“여기가 와우(臥牛)의 젖이 아니냐?”고 하자

소가 곧 일어나려고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놀라 일어나니 생생한

꿈이 었다. 그 사람은 그길로 모상)母喪)을 당한 집을 물어 찾아가서

상주를 만났더니, 자기가 찾아 다녔던 지난날의 적선자(積善者)임을

알아차리고 한없는 눈물로 그 날의 고마움을 다시 표하더니 공도

그를 알아 차리고 두 사람은 백년지기(百年知己)인양 다정하게

담소하였다.그러던 중 이 사람은 공에게 자신 꾸었던 꿈속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공이 산내골은 여기서 약 10리길이라 하고

함께 가 보자고 하여 그곳을 가서 산의 형국을 보니 완연히 ]

꿈에서 본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그래서 이곳에 장사

지냈는데 사람들이 모두 명묘(名墓)라고 하였다.

 

또 공은 뒷날 부상(父喪)을 당하여 장지를 정하고 보니 큰 내

(지금의 고성군 고성읍 범내)를 건너야 하는 곳이 었다. 마침

장사날에 큰 비를 만나 상여가 이곳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이미

물이 넘쳐서 건널수가 없었다.

이에 공이 물을 바라보고 한없이 호곡(號哭 )을 하였더니 흐르던

물이 갑자기 끊어져서 길을 만들아 주어 쉽게 건너 갈수가 있어서

하관시간을 맞추어 장사를 지내게 되어Te다고 전하고 있다.

이 사실을 임금에게주청하였더니지평(持 平:사헌부정5품관)의 벼슬을

내렸다. 공의 적덕(積德)으로 천단(川斷: 냇물이 끊어 짐)과 신점

(神占:꿈에서 묘자리를 알려 줌)의 두 그림이 있어 후손들이

소장하고 있다고 함(진양속지)

 

10.총 담 (叢 談 ) [1-3]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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