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 논설위원 입력 : 2013.03.27 23:00
1980년대 중반이었다. 버스 타고 미아리 고개를 넘다 보면 왼편으로
번듯한 학교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옥상 난간에 커다란 여덟 자
입간판이 걸려 있었다. 멀리서도 잘 보였다. '남·녀·공·학
·○·○·상·고.' 학교를 알리는 일종의 광고 카피였다.
남녀공학을 실험학교 보듯 하던 때였다. 입가에 슬몃슬몃
미소가 번졌다. 60~70년대 까까머리였던 베이비붐 세대에게
남녀공학은 야릇하게 설레는 느낌과 부러움에 맞닿아 있다.
▶집의 사내 애들은 2000년대 남녀공학 고교를 다녔다.
큰아이 학교는 한 반 정원이 마흔 명이었다. 어느 해 학기 말엔
1등에서 20등까지 여학생, 그리고 21등에서 40등까지
남학생이었다. 깜짝 놀랐다.남녀공학에선 남학생이
내신을 손해 본다는 말이 실감 났다.
그 학교에서 낡은 책걸상을 모두 바꿀 일이 생겼다.
여학생은 운동장에서 쉬고 남학생만 불려가 반 전체
책걸상을 옮겼다고 했다. 아들 둔 아비로서 부아가 좀 났다.
▶우리 남녀공학은 1911년 성결교회가 세운 경성성서학원이
처음이지 싶다. 비록 남자만 책걸상을 썼고 여자는 바닥에 앉아
공부했지만 그때로선 파격이었다. 제대로 된 양성 평등
남녀공학이 나오기까지는 긴 세월이 걸렸다. 서울에 몸집
큰 남녀 학생이 짝을 지어 앉는 혼성 학급은 80년대
강남에 있는 고교에 처음 생겼다. 일부 반대가 있었지만
효과는 괜찮았다. 교실 수업 자세가 진지해졌다.
특히 남학생이 부드러워졌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중1 학생이 고3 수능 치를 때까지 6년을
뒤쫓아 조사했다. 6908명을 살폈더니 수능 점수에서
여고·남고에서 따로 배운 학생이 남녀공학 학생보다
4~7점 높았다. 남녀공학 아이들은 자습시간은 짧은 대신
휴대전화·채팅에 시간을 더 썼다. 이성에게 잘 보이고픈
마음에 집중력도 떨어졌다. 내신보다 수능이 더 중요해서
여학생도 남녀공학이 유리한 건 아니었다.
외국도 비슷하다. 영국은 여고 출신이 남녀공학
출신보다 좋은 직장을 잡는다고 한다.
▶우리 남녀공학은 중학교의 80%, 고교의 60%가 넘는다.
주로 남학생 학부모가 하소연한다. 청소년기 사내아이는
'똑똑녀' 앞에 기를 못 편다. 두뇌 발달도 늦다.
전문의는 "또래 남녀를 한 교실에 두면 한두 살 어린
남동생과 누나를 경쟁시키는 꼴"이라고 했다.
그래서 남학생이 남녀공학을 훨씬 꺼린다.
어떤 남녀공학 학교는 남고(男高)로 돌아가겠다고
신청했다. 옛 훈장 말씀이 들리는 것 같다.
"일곱 살 넘으면 같이 앉히지 말랬거늘."
출처: /waple club-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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