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멈춘 뒤 이 사장과 신 점장, 직원 5명은 정리를
하러 서점에 들어갔다. 서점엔 흙탕물과
뻘이 차 있었고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작은 기적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몰려왔다. 많을 때는 80여명, 적을 때도 20여명이 서점을
찾아 일손을 보탰다. 할머니·할아버지, 중·고교생과 군인은
물론이고 초등학생들도 엄마와 선생님 손을 잡고
찾아와 책을 날랐다. 서점 정리 작업은 한여름 땡볕에서
50일간 계속됐다. 이 기간 자원봉사 연인원은
2500여명이나 됐다. 한길문고는 유급(有給)
인부를 한 명도 쓰지 않고 정리 작업을 끝냈다.
자원봉사가 이어지는 동안 서점 입구엔 먹을 것이 쌓였다.
빵 3~4박스가 한꺼번에 입구에 등장했고, 누군가는 피자를
배달해 놨다. 부근 한의원에서는 한방 원기회복제
수십 상자를 갖다 줬고, 인근 교회에서는 한 번에
50인분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오기도 했다.
음료수와 김밥도 끊이지 않았다. 한길문고는 이런 성원
속에 수해 두 달 만인 10월 6일 같은 건물 2층에
새로 문을 열었다. 규모는 250여평으로 더 커졌다.
이렇게 시민들이 '서점 구하기'에 나선 이유는 무얼까.
한길문고 이 사장은 지역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했고
지역 공익사업에도 열성이었지만, 서점은 분명히 개인
사업체다. 그런데도 남녀노소 구별 없이 지역민들이
팔을 걷었다. 서점을 찾은 김현숙(여·51)씨에게
이유를 묻자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1주일간
자원봉사를 했다"고 말했다. "종이책은 절대 사라지면
안 되잖아요. 애들은 휴대폰 좋아하지만, 이게 책을
대신할 수 있나요. 그래서 나섰어요.
다른 사람들도 비슷할 겁니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인 서점 직원 오유민(28)씨는
"수해와 서점 재건 이야기를 언젠가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일반 상점이면 사람들이 그렇게
했을까요. 서점은 문화, 지식, 추억,
휴식이 있는 공간이죠. 일반 상점과 달라요."
지역 단체의 힘도 컸다. 군산시민연대를 비롯한 지역
시민단체들이 '한길문고-한길문구를 응원하는 모임'을
꾸려 펀드를 만들었다. 나중에 한길문고가 재오픈하면
책을 구입할 수 있는 '바우처' 2000만원어치가
팔렸다. 유재임 군산시민연대 사무국장은
"군산 최대 서점이 없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열기가 뜨거웠다"고 했다.
한길문고가 이 홍수에서 건진 물건은 이 사장
누나가 선물한 2인용 나무 의자와 대형 뽀로로
인형뿐이었다. 또 있다면 시민들의 마음이다.
이 사장은 "서점을 완전히 접을 생각도 했지만,
시민들의 도움을 보고 다시 용기를 내서
서점을 열었다"고 했다.
한길문고는 현재 서점 내 40평 정도를 비워 놨다.
의자와 책상을 놔서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다.
세미나가 가능하도록 전동 스크린과 프로젝터도
설치했다. 지난 1월엔 근처 음악학원 수강생들이
이곳에서 록 콘서트를 가졌다. 이용료는 무료다.
왜 무료로 공간을 내줬는지에 대해 이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원래 내 서점이었지만
이젠 군산 시민의 서점이니까요."
출처: waple chosun.com./wapl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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