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때 단종 복위의 난을 평정하여 정난공신(涏難功臣)에 오른 증 형조참판공
최효량(崔孝良)의 증손이다. 공은 산청군 단성면 백곡리의 본 집에서 태어닜다.
어려서는 총명하엿고 정성해서는 단정하고 재주가 남보다 빼어났다.생부는 영수
(永綏)인데 백부인 진사공 영견(永甄)이 공을 양자로 삼았다.
아들 기변(琦抃)과 기준(琦準) 양공이 평왜회맹(平倭會盟)에 참가한 추은(推恩)으로
증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오위 도총부 부총관이다.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구인정 유허비문에 “ 공은 학문과 선행으로 산해(山海)
선생의 문화에 왕래하였고, 각재 하항(河沆), 조계 류종지(柳宗智) 등 여러 현명한
선비들과 벗하여 친하게 지냈다. “ 고 하였다. 문 행이 있어 사림에서 공을 추증하였고
풍수학에 정통하여 오묘한 경지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호조참판으로 추증된 공이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모방산(茅芳山) 아래에 집터를 잡았는데 강물이 산을 끼고
빙 둘러 있어 지세가 아주 빼어 났다. 그래서 공이 우뚝 서 있으니 “ 우리 후손
중에 반드시 위세에 굴하지 않는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 하였다.
진양지에는 “최정공(崔涏公)이 어느 날 꿈을 꾸니 하늘에서 구슬 4개가 내려왔는데
그 가운데 한 개의 구슬이 밝지 아니하였다. 그가 네 아들을 낳아서 모두 기(琦)자를
써서 이름을 지으니 그 꿈에 따른 구슬옥(玉)의 뜻으로 기연(琦衍),기변(琦抃),
기필(琦弼),기준(琦準)이다. 세 아들이 무과에 올라 기연(琦衍)은 회녕만호
(會寧萬戶:外官職正4品武官職)가 되고 기변(琦抃)은 태안군수(泰安郡守)가
되었으며 기준(琦準)은 형조좌랑(六曹에 소속된 正5品)이 되었는데
기필(琦弼)만이 과거에 오르지 못하였다. 사람들이 기필(琦弼)에게 묻기를
“네개의 구슬가운데 밝지 못한 것은 누구인가?”라 하니 대답하기를
“ 이는 회녕포(會寧浦)의 큰 형님이다.“ 라 하여 듣는 이들 모두 절도(絶倒)
하였다.” 라고 하였다. 임진왜란 뒤에 문헌이 없어져 자(字)가 무엇인지
생몰연대가 언제인지 조차 알수가 없으니 하물며 그 나머지 것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진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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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해 (海 10世)
자는 대함(大涵)이며 호는 송호(松湖)이다.검재공 최수지(崔水智)의 증손이며
최치운공의 장자이다. 일찍 송당 박 선생 문하에서 스힉하였고, 여러 동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