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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北전문가라는 교수가 확실한 정보는 노동신문, 못믿을 건 탈북자라니..

by joolychoi 2012. 6. 11.

 

 

 

 

 

   

 [단독] "北전문가라는 교수가 확실한 정보는 노동신문, 
못믿을 건 탈북자라니… 순간 피가 끓었다"

임수경 의원한테 "변절자" 폭언 들은 탈북 대학생 백요셉

탈북때 베트남 한국대사관은 "대한민국은 좋은 곳 아니다…

北 돌아가라"는 말까지 해. 해당 교수 "그런 강의 안했다"

"남한은 지금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경제불황보다 위험한 건

이념적 불황""종북주의자 비판을 매카시즘이라는 그들

'수령님 빅엿'을 외칠 용기는 있는가"

"임수경 폭언사건에 대해 쇼라는 얘기까지 들어…

천안함 사건 때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지난 1일 임수경(44) 민주통합당 의원으로부터 '입 닥치고 살아,

이 변절자들'이란 폭언을 들은 탈북자 대학생 백요셉(28·사진)

씨가 휴대폰을 끄고 잠적한 지 닷새 만에 본지 인터뷰에 응했다.

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사무실에서 본지 기자와 만난 백씨는 여러 말 대신

자신이 지난 6년간 탈북과정과 탈북 후 한국에서의 감회를

기록한 일기장 14권을 내밀었다. '나의 일생,

나의 하루(我的一生, 我的一天)'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백씨는 2003년 2월 처음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다. 19살 때다.

3번의 북송, 베트남 등 10여개에 가까운 나라를 거쳤다.

지난 2005년 8월엔 가까스로 찾아가 만난 베트남 한국대사관 관계자로부터

"대한민국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곳이 아니다.

돌아가라"는 말도 들었다. 백씨는 이후 2008년 10월 러시아에서

유엔난민신청을 통해 간신히 한국으로 들어왔다.이날 백씨는 임 의원을

비롯해 자신이 한국에서 경험한 여러 종북론자들을 떠올리면서

"주사파와 종북주의자 비판을 색깔론이나 매카시즘으로 매도하는 이들에게,

당신들이 그렇게 찬양하는 북한에 가서 '수령님 빅엿'을 외칠 용기는 있는지

질문을 하고 싶다"고 했다.백씨는 "탈북 후 학교에서 주사파를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외대) 입학하고 첫 수업시간이었다. 학생 22명이 수강했다.

 

한 남성 교수가 들어와 간단히 자기소개와 앞으로 수강 일정 등을 얘기했다"면서

"이 교수는 시작부터 자신이 얼마나 북한에 정통한 사람인지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에 대한 정보를 얻는 루트는 4가지다. 조선중앙방송과 노동신문,

중국에 있는 조선족들, 탈북자, 한·미국에서 나오는 정보다"라고 말했다.

백씨는 자신이 손을 들고, "그럼 가장 확실한 것은 뭡니까?"라고 묻자,

그 교수는 "가장 확실한 건 노동신문, 가장 못 믿을 것이 탈북자"라고 말했다.

 

백씨는 "이 말을 들은 순간 피가 끓었다"며

"수업을 드롭(포기)할까 하다가 순간 나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져 끝까지

해보기로 했다"고 전했다.그러나 이 교수는 본지 통화에서

"전혀 그런 내용을 강의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다음은 백씨와의 일문일답.

 

―수업을 받으면서 탈북자란 사실을 얘기했나.

 

“두 번째 수업시간에 발표하면서, ‘내 고향은 함경북도…’라고

말하는 순간 교수가 ‘그만! 너 누구야?’하고 외쳤다.

지난 1일 임수경 의원에게 들은 말과 똑같은 말이었다.”

 

―교수의 수업 내용은 어땠나.

 

“종북사상이 뚜렷했을 뿐더러 말도 거칠었다. ‘북한 정부는 괴물이다.

그건 인정해. 하지만 그렇게 만든 것은 남한과 미국이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예로 들면서는 ‘니들이 생각해봐.

자기네 앞바다에서 포탄 쏴대는데, 이런 시발X들 하고 쏜 거 아니야.

응당한 징벌이다’라고도 했다.

 

한 번은‘김일성이 총을 쥐고 만주에서 피를 흘리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는데,

이승만이는 미국으로 도망가서 카바레서 블루스나 추고 양키 기생들하고

춤이나 추면서 ‘마이 컨트리(My country) X됐다’하고 있었겠지?’

라는 말을 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학생들이 그 교수를 ‘나꼼수’쯤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교수가 나를 향해 침을 뱉는 것 같았는데….”

 

지난 1일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으로부터“변절자”라는 폭언을 들은 탈북 대학생 백요셉(28)씨가 두만강을
건너면서6년 동안 품에 지니며 썼다는 일기장 14권을 들여다보고 있다. /유마디 기자 umadi@chosun

―이런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

 

“한국에 살면서 한국 정부를 흔드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정말 용감한 사람들인지 의심스럽다. 얼마 전 한 판사가 페이스북에

‘각하 빅엿’을 올린 것처럼, 그들이 북한에 가서 수령님 빅엿’을

한 번이라도 외칠 용기가 있을까.” 〈2009년 2월17일 일기에서,

“남한은 지금 너무도 심하게 기울어져 가고 있다.

경제불황보다 더 위험한 것은 남한의 이념적 사상문화,

제도적 불황이다”고 적었다.〉

 

―임수경 의원 폭언사건과 관련해 음모론도 나온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봤다. 내가 이야기를 지어냈다는 얘기서부터,

정치적인 쇼라는 얘기까지 난무했다. 천안함 때도, 미국 9·11테러 때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그런 사람들이 다수의 의견을 몰고 갈 수 없다고 본다. 치졸하게 없는

사실을 만들어서 정치에 악용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대응하고 싶지 않다.”

그는 이어 자신이 탈북과정에서 겪었던 한국 외교 당국에 대한 섭섭함도 토로했다.

 

―탈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적은 언제인가.

 

“2005년 8월 걸어서 베트남 하노이까지 들어갔을 때다. 당시는 노무현 정부

때이고, 김정일과 정상회담이 성사된 시점이었다. 나는 이미 3번 북송당한 터라,

이번에도 걸리면 참형을 각오해야 했다.

간신히 성사된 한국 대사관 직원과의 만남에서 돌아온 말은 충격이었다.

‘대한민국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나라 아닙니다. 환상을 갖지 마세요.

중국말 알면 중국에 가서 사시고, 아니면 북으로 돌아가세요.

탈북자들이 자꾸 찾아오면 우리가 곤란합니다.’

그날 일을 일기에 적어 또렷이 기억한다.”

 

〈백씨의 2005년 7월 27일 일기에는 “한국 정부까지 우리를 배척하면

우리는 정말로 국제 고아가 되어버린다”고 적고 있었고, 8월 3일 일기에는,

“이제는 하늘처럼 믿었던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에서도 우리를 배척한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고 적혀 있었다. 백씨는 당시 베트남 정부가

북한으로 가면 처형된다는 걸 알고,

나름 배려해 중국으로 추방했다고 전했다.〉

출처:http://waple.chosun.com/
와플(Waple)은 현명한 사람(Wise People)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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