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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모음

봄 편지-2. 진달래

by joolychoi 2012. 4. 3.
                         
      봄 편지-2. 진달래
      봄이다. 산과 들에 아지랑이 아른거리고, 평지엔 벌써 진달래가 만발했다. 이 한 해도 어김없이 새봄은 찾아왔고, 그 감격의 꽃을 우리는 보고 있다. 해마다 보는 꽃이건만 그때마다 꽃을 보는 소감은 항상 새롭고 각별하다. 특히 세상살이의 모진 고달픔과 병마에서 겨우 풀려나 이 봄을 내다보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특별한 것일까. 작은 풀 한 포기, 야생초 하나에도 봄은 찾아가 밝고 화사한 기운을 활짝 피워내고 있다. 아름다운지고, 봄이여! 그 봄 속에서 살아있음을 만끽하는 즐거움이여!

      진달래는 황폐한 산능선이나 소나무숲에서 눈에 잘 띤다. 진달래의 꽃말은 왜 ‘절제’로 다듬어졌을까? 아무 곳이나 마구 피지 않고, 피는 곳을 가려서 피기 때문일까? 흐드러진 연분홍 빛깔의 황홀함에 심신이 잠겨 있을 때 가장 주의해야할 인간의 덕목이 절제인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눈보라와 질풍노도가 휘몰아쳤던 우리의 근현대사를 겪어온 우리 겨레의 예술과 노래는 대부분 고통을 이겨낸 과정을 담아낸 것이었다. 하지만 그 서술은 단순한 직설이 아니라 풍자와 골계를 함께 겸했던 스타일이다. 그게 멋이었다. 이런 문체가 오늘의 작품 속에 무르녹아 있다는 사실은 우리 문학과 예술의 힘인지도 모른다.

      따뜻한 봄 햇살에 두 볼이 발그레 달아오른 처녀를 일컬어 ‘저년, 저 참꽃(진달래)에 볼때기 덴 년!’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만산홍(滿山紅)의 진달래로 두 볼에 화상을 입었다는 뜻이니, 진달래에 관한 이보다 더 아름답고 감각적인 표현이 어디에 있을까.

      이 감격의 봄에 우리는 노래 한 자락을 빠뜨리고 넘어갈 수 없다. 우리 겨레는 예로부터 기쁨과 슬픔의 자리에 반드시 소리와 가락을 함께 하였으니, 그것은 기쁨과 감격을 두 배로 구가하려는 몸짓이자 지혜였던 것이다.

      진달래를 테마로 한 노래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은 단연코 동요 「진달래꽃」이다. 이맘때 쯤이면 저녁나절의 골목길이나 라디오에서 아련히 들려오는 선율이 바로 이 곡이었다.

      산에 산에 진달래꽃 피었습니다/ 진달래꽃 아름따다 날저뭅니다/
      한 잎 두 잎 꽃뿌리며 돌아옵니다/ 뻐꾹새 먼 울음도 들려옵니다

      그 시절 아이들은 무엇 때문에 진달래꽃을 날이 저물도록 따서 모았던 것일까?
      진달래꽃이 등장하는 우리 가요곡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최고의 절창을 단 한 편만 고르라 한다면 나는 이난영의 ?진달래 시첩?을 들기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진달래 바람에 봄치마 휘날리더라/ 저 고개 넘어간 사랑마차/ 소식을 싣고서 언제 오나/ 그날이 그리워 오늘도 길을 걸어/ 노래를 부르느니 노래를 불러/ 앉아도 새가 울고 서도 새 울어/ 맹서를 두고간 봄날의 길은 멀다

      약간은 엉기는 듯한 애교섞인 콧소리로 이난영이 구성지게 엮어가는 '진달래 시첩'은 언제 들어도 좋다. 하지만 방안의 구석에서 겨울을 지난 장전축의 먼지를 모처럼 말끔히 닦아내고 LP음반으로 듣는 기분은 그 무슨 말로도 형용할 길이 없다. 이 곡은 봄의 기쁨과 감격을 속속들이 담아내는 효과에 충실하다.

      ‘저 고개 넘어간 사랑마차’란 대목에서는 실제로 마차가 아슬아슬한 고개를 넘어가는 듯한 실감에 휩싸이도록 이끈다. 돌아오지 않는 소식을 기다린다는 ‘언제 오나’란 대목에서는 눈물이 금방이라도 쑥 둘러빠질 것같은 슬픔에 휩싸인다. ‘오늘도 길을 걸어’에서는 길을 걸어가는 경쾌한 걸음걸이의 처녀와 그 환영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마지막 결구인 ‘봄날의 길은 멀다’에서는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시골 신작로의 광경이 아련한 실루엣처럼 살아난다.

      이난영이 남편 김해송의 납북 후 홀로 자녀들을 키울 때 매를 들고 때려가며 가르쳤던 딸들이 어느 덧 미국으로 진출하여 김씨스터즈란 이름의 여성보컬이 되었다. 그들이 어머니의 노래 '진달래 편지'를 불러서 음반에 담은 것도 들을 만하다. 기회가 된다면 이 봄이 가기 전에 이난영의 이 노래를 꼭 한번 들어보시기를…

      진달래 테마의 노래를 가장 많이 부른 가수는 이미자로 여겨진다.
      '진달래 고개' '진달래 편지' '진달래 고개 사연' 등 3곡을 우선 골라낼 수 있는데, 가사의 전개방식은 대개 떠난 님을 잊지 못하며 언젠가는 꼭 돌아올 것이란 예감 속에 세월을 보내는 한국 여성의 묵묵한 인종(忍從)을 다루고 있다. ?진달래 편지?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병사가 보내온 편지를 읽어가는 아내의 화법으로 펼쳐진다.

      1960년대에 불려졌던 진달래 테마 노래는 또 다른 맛을 지니고 있다.
      김상희의 '진달래 꽃그늘에'는 악곡의 스타일에서 서정적 발라드의 기법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한국의 전통적 풍습과 추억의 아련함을 담아내는 효과로서는 손색이 없다 구절의 반복기법과 전환기법을 적절히 배합하여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작품이다.

      한 잎 두 잎 진달래 한 잎 두 잎 진달래 따모을수록/ 배는 고파 배는 고파 쑥바구니 옆에 낀 채 곧잘 잠자던/ 그 옛 님의 모습이 삼삼하네 삼삼하네

      이 봄에 어디선가 한 번쯤은 반드시 듣게 되는 한 소절의 노래가 있으니 그것은 김용만이 불렀던 '청춘의 봄'(김용대 작사, 작곡)이다. 이 노래는 밝고 경쾌하며 헌걸차다. 봄에 대한 당당한 규정이 조금도 주저함이 없고, 낙관적 전망과 자신감에 차 있다. 1960년대를 거쳐서 산업사회로 접어들던 시기의 그 험하고 가파른 세월 속에서도 새로운 미래시간의 기대에 차 있는 광경은 놀라웁다. 청년기 특유의 아름다운 구가(謳歌)는 새소리와 함께 교직되어 이 노래의 음율적 효과를 극대회시키고 있다.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언제나 즐거운 노래를 부릅시다/ 진달래가 생긋 웃는 봄봄/ 청춘은 싱글벙글/ 윙크하는 봄~ ~ / 가슴은 두근 두근 청춘의 꿈/ 산들산들 봄바람이 춤을 추는 봄봄/ 시냇가에 버들피리는 삐삐비리비리비/ 라~ 라~/ 라 ~ 라 ~ ~ 닐니리 봄봄/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1980년대의 진달래 노래는 갈등과 고통의 힘겨움이 배어있다. 진달래꽃의 표상을 5월 광주항쟁과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서 자신의 몸을 바쳐 헌정했던 젊은 투사들로 바꾸어서 나타내고 있다. 가사의 문학적 표현과 감응력을 고조시키려 한 노력의 흔적이 엿보인다. 마지막 결구에서는 여운 효과를 드높이려 한 흔적도 보인다. 이러한 노래는 민주화운동의 격렬했던 시간 속에서 자주 불려졌던 사례가 있다. 가수 하덕규에 의해서도 취입되었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 일명 ‘노찾사’가 불렀던 '진달래꽃'의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 날 쓰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정미조와 남덕우에 의해서 꾸준히 불려졌고, 대중들의 광범한 사랑을 받았던 가요곡으로 '진달래꽃'이 있다. 이 노래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친근한 시작품인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작곡하여 취입하였다. 홍순관의'고향 진달래'(김일로 시, 황의종 작곡)도 특이한 노래다. 왜냐하면 정감이 듬뿍 느껴지는 피리, 해금, 대금, 소금, 가야금, 장고 등 국악기로 연주하는 장단과 반주에 맞추어서 엮어가는 사설과 음율이 정겹다. 국악전문가 황의종의 특색이 잘 살아나는 작품이라 하겠다.

      송이 송이 피어나는 고향 진달래/ 손을 잡고 한번돌면 둥근 달인데/ 타는 정 가슴에 안고/ 강강수월래 네 가슴에 내가 안기고/ 내 가슴에 네가 안겨사는/ 이 밝은 하늘아래 우리 보람이/ 하나로 둥글게 영근다면 무얼 바라리

      ◇ 필자소개
      이동순=시인`영남대 교수. 동아일보신춘문예 시 당선(1973)으로 문단에 나옴. 현재 대구MBC 라디오에서 ‘이동순의 재미있는 가요이야기’(매주 일요일 오후 7:10- 8:00) 프로 진행중.


      작성일: 2007년 04월 12일
      출처:http://blog.daum.net/ledk1007/477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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