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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600년만에 첫 여인 능참봉(왕릉 관리인) "선덕여왕님, 한잔 받으소서"

by joolychoi 2012. 2. 10.

 

 

 

 
 

  
 

  [오늘의 세상] 600년만에 첫 여인 능참봉
 "선덕여왕님, 한잔 받으소서"

경주=허윤희 기자

이메일ostinato@chosun.com

정월대보름날 새벽 4시, 김영숙씨 산으로 올라가다
옛날엔 9품 벼슬이라도 했지 요즘은 보수는커녕 제사음식·100만원

관복까지 능참봉이 직접 마련해야
"캄캄한 새벽, 남편 없으면 혼자서 못올라가지만… 조상 모신다는
사명감에 나도 모르게 남 흉도 안봐… 선덕여왕, 날 돌봐주시는 듯"

 
숭혜전에서 다른 능참봉과 함께 분향례를 지내는 김영숙씨. /남강호

'나이 일흔에 능참봉 되니 거동이 한 달에 스물아홉 번'이란

속담이 있다. 그것도 벼슬이라고 하나 맡았더니 생기는 건 없고

바쁘기만 하다는 뜻이다. 능참봉은 조선시대 능(陵)을 관리하는

일을 맡던 종9품 말단 벼슬이지만, 책임은 막중했다.

능 주변의 큰 나무 하나라도 손상시키면 3년 유배를 가야 했다.

이 직책은 당연히 남자의 몫. 그러나 지난해

우리나라에도 '여성 능참봉'이 생겼다.

 

 

"아이쿠야, 이렇게 캄캄합니더.

무서워서 남편 없으면 혼자 절대 못 올라옵니더.

넘어지지 않게 잘 따라오이소."

정월 대보름인 6일 새벽 5시 경북 경주시 보문동 낭산(狼山) 끝자락.

칠흑같이 어두운 산길을 오르며 김영숙(55)씨가 낭랑하게 말했다.

남편 이부원(55)씨가 한발 앞에서 손전등을 비추며 길을 만들었다.

푸른 관복을 차려입은 부부의 양손엔 촛대 2개와 향(香), 술,

밤·대추·땅콩과 제기(祭器), 술잔, 돗자리를 담은 보따리

서너 개가 들려 있었다. 목적지는 낭산 남쪽 능선 정상부에

자리 잡은 선덕여왕릉(사적 182호). 신라 최초의

여왕이자 27대 왕인 선덕여왕(재위 632~647)의 무덤이다.

지난해 12월 '최초의 여성 능참봉'인 초대 선덕여왕능참봉에 선임된

김씨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이면 삭망제(朔望祭)를 지내기 위해 능에 오른다.

능에 도착한 시각은 5시 30분. 부부는 왕릉 앞 제단 위에 제수를 차리고

향을 피운 뒤 4번 절하고 일어나 왕릉 주위를 천천히 돌며

봉심(奉審·능을 보살핌)했다. 그 사이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새벽 봉심을 끝낸 능참봉 12명이 모여

숭혜전(崇惠殿·신라 최초의 김씨 임금인 미추왕, 통일의 과업을 이룩한

문무대왕,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 위패를 모신 곳)과 계림세묘(鷄林世廟·

경주김씨 시조 김알지를 배향하는 사당) 분향례까지,

이날 김씨의 능참봉으로서 '대보름 일과'는 오전 8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캄캄한 새벽 4시 기상해 4시간이 훌쩍 지났다.

 

 

"말도 마이소. 이렇게 힘든 자리인 줄 미리 알았으면 절대 안 맡았을 겁니더.

오늘은 그나마 날이 풀려서 견딜 만했지, 설이랑 동지 때는 추워서

귀가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어요."

 

 

신라숭혜전릉 보존회가 관리하는 능은 미추왕·내물왕·법흥왕·진평왕·

선덕여왕·무열왕·문무왕 등 11개. 각각의 능마다 능참봉이 있고,

숭혜전 전(殿)참봉 1명이 따로 있다. 임기는 2년.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날 자신이 관리하는 능에 올라 봉심한 후

숭혜전에 모여 분향례를 치르는 등 매년 행사만 60여회.

보수는 커녕 교통비에 제사 음식 비용 등 나가는 돈만 많다고 했다.

김씨의 경우 관복을 마련하는 데도 100만원쯤 들었다.

 

정월 대보름인 6일 새벽 동이 트기 전, 경북 경주시 보문동 선덕여왕릉에서 '홍일점 능참봉' 김영숙씨가 삭망제를 지내고 있다. /경주=남강호 기자 kangho@chosun.com
 

조선왕조 500년 동안 능참봉은 남성 전유물. 신라왕릉의 경우도 이번에

원성왕릉참봉이 함께 관리하던 선덕여왕릉을 따로 분리해 참봉 자리가

생기면서 여성이 맡게 됐다. 경주 토박이인 김씨는 3년 전부터

경주김씨종친회 부녀회 총무를 거쳐 사무국장으로 활발히 일하다

어르신들의 눈에 '낙점'됐다.

 

 

"저 빼고 다른 능참봉들은 평균 70대 후반 고령입니다.

새벽에 봉심하고 내려오다 넘어져 앓다가 돌아가신 분도 있고

마땅히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임기가 끝났는데도

1년 넘게 더 하고 있는 어른들도 있어요."

  

그런데도 이 힘든 일을 왜 할까. "조상을 모신다는 사명감으로

한다 아닙니까. 왕릉을 직접 모셔서 그런지 능참봉 하신 분 중에

잘된 분들이 진짜 많아요. 미신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어디 조상도 보통 조상입니까. 작년에 양봉업 하는 한

능참봉은 사업이 진짜 잘돼서 좋은 꿀 많이 얻었다 카대요.

나 스스로도 남 흉보는 데 함부로 안 끼려고 하고

몸가짐을 조심하게 됩디다. 이게 다 선덕여왕이

돌봐주셔서 그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김씨는 이날 새벽 봉심 후 "선덕여왕께 드린 술"이라며

기자에게도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고 음복(飮福)을 권했다.

 

☞능참봉

조선시대에 능을 관리하는 일을 맡아보던 종9품 말단 벼슬.

현재 조선왕릉의 경우 문화재청이 사실상 능참봉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신라 왕릉 관리는 경주시에서 맡고 있지만, 신라숭혜전릉 보존회 등

3개 단체를 중심으로 능참봉 25명이 능제를 지내고 있다.

사실상 왕릉의 ‘명예관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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