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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속과 문화.전통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

by joolychoi 2011. 5. 13.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1501-1570)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퇴계 사후 6년 뒤인 1576년에 완공된 서원입니다.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경북 안동 도산면 토계리에 위치합니다.

도산서원은 퇴계선생이 거처하면서 몸소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과

퇴계 사후 후진들이 스승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과 서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도산서원의 건축물들은

간결하고 검소하게 꾸며져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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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전경. 맨 앞에 보이는 건물이 도산서당으로 퇴계 선생이 직접 설계하고 지은 건물로

말년에 이 곳에서제자들을 가르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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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도 도산서당에서는 퇴계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배우는 선비교실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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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산서원 앞 마당에 왕버들 고목 두그루가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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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산서원에서 내려다 보이는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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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단(詩士檀).

도산서원 강 건너편에 있는 비각으로 정조 때 지방별과(과거)를 보았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정조가 퇴계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도산서원에 관원 이만수를 보내 제사를 지내고

이곳 송림에서 어제로 과거를 보게 했는데 응시자가 7천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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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종택. 원래 건물은 없어졌으나 1929년 퇴계의 13대손이

옛 종택의 규모를 짐작하여 새로 지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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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退溪) 선생은 나이 50세가 되던 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개울가에 한서암(寒棲庵)이라는 살림집을 짓고

그 바로 아래에 계상서당(溪上書堂)이라는 작은 공부방을 만들게 됩니다.

본래는 두칸방의 초가누옥이었으나 최근 복원하면서 기와집이 됐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윗 건물이 한서암이고 아래쪽 작은 집이 계상서당입니다.

퇴계 선생은 도산서당으로 서당을 확장 이전할 때까지

이 곳에서 10여년을 학문에 정진하며 제자들을 가르칩니다. 

서너명이 둘러 앉아도 좁아보이는 작은 서당이지만

퇴계 사상의 큰 흐름이 완성된 곳이 바로 이 계상서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3세의 젊은 학자 율곡이 퇴계를 찾아와 사흘을 머물며 가르침을

청한 곳도 바로 이곳 계상서당이고

<주자서절요> 등 퇴계의 대표적 저술들이 탄생한 곳이기도 합니다.

 

계상서당 앞에 흐르는 작은 개울이 퇴계(退溪)입니다.

그 개울 이름이 큰 학자의 호가 된 것입니다.  

 

/바람처럼/

 

 4개

 광해대왕2011/05/12 06:18
율곡이 퇴계를 만나러 왔다는 것은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가요....
그런적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요....
 바람처럼2011/05/12 13:06
율곡이 16세 되던 해 어머니 신사임당이 죽고 시묘살이를 합니다. 시묘후 금강산에 들어갔다 나와 곡산노씨와 결혼했으나 곡산노씨의 건강이 좋지않아 성주 처갓집에 갈 기회가 생기는데 이 때 성주에서 멀지않은 퇴계선생의 서당(계상서당)으로 퇴계를 찾아갑니다. 율곡의 나이 스물셋, 퇴계는 학문적 성숙기였던 58세 때 일입니다.
 바람처럼2011/05/12 13:11
이 때가 명종 13년(1558) 2월이었으니 율곡이 이틀밤을 보내고 계상서당을 떠나던 날 아침, 진눈개비가 눈으로 바뀌어 온천지가 하얀 매화꽃이 핀 것 같았다고 합니다. 비가 많이 와서 개울이 넘쳐 이틀밤을 보냈다는 말도 있으나 당시 율곡은 정신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무척 방황을 했던 시기였고 퇴계와의 만남이 율곡의 학문적 성장에 큰 영향을 준 것도 틀림없을 듯 합니다.
 jasmine2011/05/12 22:02
도산서원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이황의 연보에 1558년(명종 13년-58세) 23세의 율곡 이이가 계상서당을 찾아와 도학을 논함이라고 나오네요.

   출 처 :Pictory 사진과 이야기의 만남

와플(Waple)은 현명한 사람(Wise People)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