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노세키(下關) 전경
[Ⅱ, 일본 여행기-혼슈(本州)]
* 혼슈 여행기는 1997년, 2000년, 2004년, 2010년 4회에 걸쳐서 한 것을
제1, 2차 배낭여행[1997년, 2000년]을 토대로 구성하여 보완을 한 것입니다.
1 일본의 관문 시모노세키(下關)
1997년 8월, 동기생 네 명이 배낭을 짊어지고 일본 여행길에 나섰다. 나이가 웬만큼 들었는데도 마음은 아직도 젊어서 일본말도 못하면서 배낭여행을 한 번 해 보기로 한 것이다.
쾌속선 비틀 2세호는 9시 정각에 부산항을 떠났다. 부산과 후쿠오카를 오가는 이 여객선은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운항하는 줄 알았는데 배는 일본 국기를 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선장도 선원들도 모두 일본 사람들인데도 승객은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었으니 무엇이 잘못된 것 같다.
옛날에는 일본에 가려면 부산에서 부관연락선을 타고 시모노세키(下關)로 갔지만 지금은 후쿠오카(福岡)로 가는 것이 빠르고 편리하다. 부산에서 후쿠오카까지는 쾌속선뿐만 아니라 항공편도 있고 또 후쿠오카는 신간센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하카다(博多)역에서 탄 히카리호가 순식간에 고쿠라(小倉)역에 닿았을 때 우리는 시모노세키행 기차로 갈아탔다. 시모노세키로 가는 기차는 우리나라 통근 열차와 비슷했지만 그래도 순식간에 칸몬 해저터널을 통과하여 시모노세키 역에서 걸음을 멈춘다.
시모노세키는 옛날에 부산을 출발한 조선통신사들이 열 두 번이나 상륙하여 도쿄를 왕래한 일본의 관문이다. 그 때 통신사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아카마신궁(赤間神宮)을 비롯하여 간몬해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히노야마 공원과 규모는 작지만 일본역사의 자취가 묻어있는 미모스소가와 공원(みもすそ川公園) 등이 있고 에머랄드빛 바다위로 세워진 쯔노시마 대교(길이 1780m), 사무라이 마을, 나카토시장(코리아타운) 등이 있다.
조그만 시모노세키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히노야마(火の山)전망대를 찾는다. 좁다란 시가지를 요리조리 헤매던 버스가 미모스소가와에 멈추었을 때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케이블카를 타고 히노야마에 오른다. 높이가 해발 268m에 불과하니 걸어서 올라가도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시간을 아끼려고 케이블카를 탔더니 순식간에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 올랐다.
히노야마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시모노세키의 전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눈앞에는
물살이 빠르기로 소문난 칸몬 해협의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그 건너에는 규슈 섬이
다가섰는데 거기까지 길이가 1,068m이고 높이가 61m나 되는
칸몬교(關門橋)가 걸려 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만 같다.
다음에 찾은 아카마신궁(赤間神宮)은 1185년에 건립한 것으로 여덟 살 나이로 죽은 안토쿠(安德王:재위1180∼1185)왕을 모시는 신궁인데 옛날에 조선통신사들이 묵어가던 곳이다. 안토쿠왕은 헤이안시대의 무장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淸盛)의 외손자로, 무사집단 겐지(源氏)와 헤이시(平氏) 두 세력이 칸몬해엽을 차지하기위해 전투를 벌인 단노우라(檀の浦) 해전에서 헤이시 일파가 패하자 그들이 모시던 안토쿠왕은 바다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칸몬교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미모스소가와 공원은 규모는 작지만 일본의 역사가
묻혀있는 곳이다. 거기서 바라보면 바다건너 큐슈의 모지항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섰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는 겐페이단노우라전투(源平壇之浦合戦)의 옛 싸움터이자 막부말기에 외국선박에 포격을 가하던 곳이어서 지금도 대포가 전시되어있고 미나모토 요시쓰네
(源義経)와 다이라노 도모모리(平知盛)상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시모노세키 조약 기념관인 슌판로(春帆樓)를 찾는다. 청․일 전쟁 직후인 1895년에 청나라와 일본이 고급 음식점인 슌판로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리홍장(李鴻章)간에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일제는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게 되었고
이것이 발단이 되어 우리나라는 36년 동안이나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대륙 침략의 전진기지였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징병이나 징용으로 끌려가던 상륙 지점이었던 부관연락선 터미널은 '국제 페리 부두'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부두에는 커다란 부관연락선이 화물을 싣고 내리기에 정신이 없었다.
얼마나 많은 우리동포들이 일본으로 끌려가면서 이 부두에서 통곡을 했을까. 나라를 빼앗긴 동포들은 징병으로, 징용으로, 심지어는 정신대로 끌려가면서 피눈물을 흘렸다. 열여덟 살에 일본 홋카이도 탄광으로 끌려간 나의 형님도 이 부두에서 저주의 눈물을 흘렸으리라.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흘러버린 지금은 정적만 흐르고 있고, 국제페리부두 부근에 있는
가이교유메히로바(海峽夢廣場)에는 높이가 153m나 되는 '가이교유메타워',
즉 '해협 꿈의 탑'이 박제상의 화신처럼 긴 목을 빼고 서서 현해탄을 바라보고있다.
아카마신궁(赤間神宮)
히노야마(火の山)전망대
히노야마(火の山)전망대 정원
미모스소가와 공원(みもすそ川公園)
미나모토 요시쓰네(源義経)와 다이라노 도모모리(平知盛)상
미모스소가와 공원-전시된 대포
칸몬 해저터널을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은 슌판로(春帆樓)
옛 영국영사관 건물
가이교유메타워
사무라이 마을
시가지 풍경
출 처 : http://blog.chosun.com/sanha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