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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청광초등학교 제7회 동창 부부 모임 하루 나들이 가다.

by joolychoi 2011. 6. 15.

 

 

 

 

  
 

 
 청광초등학교 제7회 동창 부부 모임 하루 나들이 가다.  
 
 
 

청광초등학교 제7회 초등동창 부부모임(청칠회) 5월 월례회에서 대구 인근관광지에

하루 봄나들이 하기로 결정한바 있었다. 동창 청광 김용대 화백(달마대사)회원이

지난해 대구 동구 봉무동에 연락사무소 개설했으나 방문하지 못한 일이 있어 화실 방문한 후 안동지역으로 나들이를 결정하고 지난 6.8.(수) 마산에서 07시 출발해 부산 동래경유부산 동창부부 승차한 후 부산대구 고속도로 진입해 대구 팔송산IC → 우회전→ 불로동 → 봉무동(5분거리)→ 청구아파트 앞 하차→ 건너편 도로건물 3층 청광화실 연락사무소에 방문하다. 고속도로가 많이 밀려 늦게 도착하니 청광화백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화실은 40여평의 사무실이 였고 화실 안 벽에 화백작품 게시되고 있었다. 청광화실은 경남 고성군 개천면 청광리에 있으나 연락 사무실에는 화백에게 연락이 오면 수시 와서 일을 처리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여유 공간도 있고 아담하게 꾸며진 사무실이 었다.동창끼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며 다과한 후 청광화백과 동행자와 함께 안동지역으로 나들이 하게 되었다. 화실의 발전을 우리 모두 기원해 주면서...오늘 계획은 지역을 잘 아는 청광화백과 협의하여 안동 영호루(새마을 사업시 박정희 대통령께서 확터이게 바라보이는 안동시 새마을 사업을 독려하며 한 사발 탁주마셨다는 장소)안동 할매군복식당(중식)→천등산 봉정사→

화해마을→병산서원 으로 계획했으나시간이 없어 병산서원을 가보지 못하고 대구 경유→

언양휴게소 저녁→ 양산 지하철터널 부산동창 하차→ 마산 도착이

밤 10시가 훨씬 넘어 도착해 하루를 보내다

 

초등 동창 부부의 마즈막 특별 여행이 될지도 모를 여행이 였다.

여행 도중 몸의 불편헤 참석 못한 회원도 함께 갔으나 걷기가 힘들어 함께

동행하지 못한 분이 있어 몹시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즐거운 하루 나들이 였다. 

 

※청칠회(청광초등학교 4283년도졸업)

1980년도 부터 동창모임 조직 운영해 오다가 후에 동창 부부모임으로 변경운영

(마산 -부산에서  격월제로 월례모임을 운영해 오고있다)

 

화실에서 즐겁게 환담하는 동창 회원들

안동가는 차중에서 모습

 

 

 

영호루(映湖褸) 중건 기념비

영호루(映湖褸) 바라본 안동시가지

강이 잘 정비되고 있었다(4대강 사업)

 

 

전외항 선장을 지냈던 전한제 부부

계단에 오르는 이 여사 물끄럼이 바라본다

청광화백 동행자와 안동시를 엎고...

영호루(映湖褸) 에 게시된 포은 정몽주 선생의 게시글

 

박정희 대통령이 쓰신 영호루 현판 

天燈山鳳停寺 오르는 숲길..

봉정사 일주문

 

 

 

 

150년된 소나무(몸살을 앓고 있다)

봉정사 만세루

 

봉정사 대운전은 국보 311호이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불상을 중심으로 문수보살.보현보살 좌우로 모시고 있으며

1962년 해채 수리때 발견한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중기 건물로 추정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팔작지붕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며 밖으로 뻗친 재료의 꾸밈없는 모양이

고려말·조선초 건축양식을 잘 갖추고 있고 앞쪽에 툇마루를 설치한 것이 특이하다

보물  제448호인 화엄강당이다.

화엄강당은 스님들이 불교의 기초 교학을 배우는 곳이다.

양법당중수기등의 기록에 따르면

같은 경내에 있는 극락전과 대웅전을 17세기에 고쳐 지었을 때

화엄강당도 함께 고쳤을 것으로 추정한다.

 

 

 

▲ 봉정사삼층석탑(경북유형문화재 제182호)

고려시대의 작품이며 상륜부의 모습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 봉정사 극락전은 국보 제15호이다.

 

원래 대장전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72년 보수공사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하였는데 우리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건립연대를 1200년대

초까지 올려볼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

수덕사의 대웅전은 1934년 해체공사때 1308년에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나왔다.

그리고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1916년 해체시

1376년에 중건되었다는 묵서명이 발견되어 수덕사 대웅전보다 100년

앞선 것으로 추정했으며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1972년 9월 봉정사 극락전을 중수,해체시에 기문장처에서

1363년 대선사 축담이 와서 중수했다고 전해진다.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일단 13년은 앞서고

중수라는 기록에서 보듯이 훨씬 앞 서 지어진 건물이라는것을 알 수 있다.

 

 

 

봉정사 만세루 입구

 

일행이 봉정사에서 내려오고 있다

 

1999.4.21. 영국 에리자베스여왕이 하회마을 방문시

봉정사에 둘러보시고 그 기념으로 싸인을 남겨 회회마을 여왕방문 전시관에

진열되여 있었다.

화회 마을 가본적도 무척 오래되였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님도 다녀가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유명한 하회마을...

오래전에 한번 다녀간 경험이 있는 나는 많이 변해버렸을 것 같은 기대에 한결 부풀었다.

그 가치를 인정받은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 600년전통을 이어 내려오는 마을이다.

하회마을엔 옛날에는 마을 앞까지 차가 들어갔으나 지금은 상가도 만들어 졌고

마을까지에는 매표소에서 마을뻐스를 타고 들어 갈수 있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입구에 도착해 마을입구에 세워둔

안내판을 보고 마을 길에 들어섰다.

 

작은 골목길을 지나 눈길을 끄는 큰 집이 바로 하회마을의 가장 부잣집인 북촌댁이다

단순한부자에 그치지 않고 마을에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부를 나누고 베풀었다고 한다.

하회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양진당, 서애 유성룡 선생의 종가인 충효당, 이 두 건물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고 아직까지 후손이 살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 올때는 종가인 충효당. 북촌댁등 고가개방되어있어 방문하여 설명도 듣고

우리 한옥의 아름다움과 교육자료도 볼수있었으나 가옥 모두 폐쇄시키고 포장된 마을

도로를 지나 마을 낀 강둑 길을 따라 회향할 수밖에 없었다.물론 보존 관리를 위한조인지

모르나 고댁,종가등에 방문할 수 없고 도로따라 관광하라는 안내판도 없어

관광객으로서는 큰기대를 갖고 왔으나 실망스러워 할 뿐이다.

 

도로 따라가며 종가 길이란 조그만한 표시만 있었다

길 따라가며 마을을 바라보는 민속마을로 변하고 있어 실망스럽기도 했다.

우리가 갔던 날은 수요일 평일이 였지만 많은 관광객이 있었다. 좀 친절하게 이런 내용을

안내해 주는 당국의 친절과 그 주관하는 부처에서의 상세한 안내가 절실할것 같았다.

 

하회마을 포장된 마을길로 일행이 들어가고 있다.

마을 뒤편 강둑에 공지에 설치해 둔 그네에 일행이 소녀적 꿈을 실어본다.

 

 
무척 무더운 날씨 였으나 하루를 즐겁게 나들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