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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世德叢覽(全州崔氏 按廉使公 宗會)

3.사적(史蹟) - 1)古蹟

by joolychoi 2010. 12. 8.

 

 
세덕총람 (世德叢覽) 

 

3. 사 적 (史蹟)
   1) 고 적(古蹟)
 
ㅇ 굴등바위(窟巖)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 육영재(育英齋) 뒤에 있다.
길이가 100발이나 되고 높이가 8~9척이 된다.
모양은 마치 성문 같다.처음 들어갈 때는 몸을 구부려야 하나
점점 들어가면 설 수가 있고 깊이 들어가면 그 높이를
알 수가 없으나 누구도 끝까지 들어가 보지 못하였다.
(환여승람.고성지. 고성문화재 총서.소가야의 숨결)
 
ㅇ 담티진터(담峙陣墟)
고성군 구만면 당산과 개천면 청광 경계 고개인데 임란 때 최소호공
(崔蘇湖公)균(均)이 진을 치고 석축을 쌓던 곳으로 그둘레가
약 10리 이다.자호(自號)를 풍운(風雲)이라는 깃발을 세우고
줄(三列)로 잪단 횃불을 밝혀 많은 군사로 가장하여
응전하니 적이 감히 핍박해 오지 못하였다.
(환여승람.고성지.소가야의 숨결)
 
당산쌍정(堂山雙亭) 
고성군 구만면 화림리 당산 앞에 있다. 가선대부 첨지 중추부사공인
전주최씨 광섭(光燮)이 집 앞에 나무를 심고 날마다 그 밑에서 시를 읊었다.
몇 해 후 다른 곳으로 이사하였고 지금은 나무 몇 그루만 남아있다.
(소가야의 숨결)
(주) 촤광섭(崔光燮 19世) : 찰방공 최지노(崔振虎)의 6세 손
 
ㅇ 사장(射場)
고성군 하이면 사곡리에 있다. 전주최씨 통덕랑공 최홍호의 7 세손인 선전
관과 강령(康翎) 현감을 지낸 상악공(祥岳)과 아들 하동 부사공 섭(涉),
손자 부사과공(副司果) 선열(璿烈) 3대가 활을 쏘던 곳이다.
(고성문화재총서.소가야의 숨결)
(주) 강령현(康翎縣) : 지금의 경기도 옹진군
 
ㅇ 의성 터(義城墟)
고성군 구만면 낙동 마을 앞에 조그마한 독산(獨山)이 있는데 이 독산 봉우리에
의성 터(義城墟)가 있다.지금은 대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매실나무로 숲을
이루고 있으며 큰 구덩이로 되어 있었던 이 의성터는 경작등으로 자연히 매립되어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전주최씨 시조 문성공 휘 아(阿)의 11세손인 균공(均)과
게공( ) 그리고 강공(堈) 3형제가 이곳 곤계봉 아래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모두 기상이 비범하고 자라서는 유행이 갖추어져서 모든 면에 밝지 않는것이
없었다. 특히 소계공 강(堈)은 무과 급제후 한 동안 이곳에서 말도 달리고 활도
쏘면서 무예를 닦던 곳인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소계공이 창의 할 것을 주장하자
백형 소호공도 동참하여 자제와 가정(家丁)을 훈독하고 향병 수백명과 함께 창의
하였던 곳인데 후세인들이 이곳을 의병을 일으킨 성 터라고 하여 "의성 터
(義城墟)" 라 불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의성 터는 구만동(지금의 구만면)일원에 침입하였던 왜군을 물리치고
담티 재에 방어벽을 쌓아 항전할 수 있었던 터전이 되었다.
그러나 1597년 정유재란 때왜적이 그 해 7월에 갑자기 구만동으로 쳐들어
와서 이 독산(獨山)의 의성 터에 방루(防壘)를 구축하는 것을 소호,소게
양공이 이를 쳐부수고적을 남김없이 주살시켰던 곳으로 지금도소공,소계
양선조의 숨결이 생생하게 요동치는 듯 하다. 소계공의 10세손인 계강공
영렬(桂岡公永烈)은 문집에서 창의하신 성터에는 대나무 푸르지만
오랑캐 몰려 올 때 막아내신 장사일세, 천고의 굳은 절개 대처럼 변함없고
한결같은 단심으로 그 맹약 지켜냈소.(義城 竹 綠深深風雨當年壯士
臨竹不變兮千古節壯盟應星一丹心」라 읊고 있어 의성 터(義城墟)를
실증하고 있다. (계강집. 최성림)
 
ㅇ 황산수정(皇山樹亭)
고성군 하이면 사곡리에 있다. 반석이 층대를 이루어 수십명이 놀수가 있고
예장나무(樟木) 8~9 그루가 둘러 있는데 그 둘레는 수십 발이 되며 그 연대를
알 수가 없다. 전주최씨 통덕랑공 흥호(興虎)의 8세손인 남호공 최익(南湖公
崔瀷)이 시를 욾던 곳인데 지금도 보호되고 있다.
(고성지. 고성문화재총서. 소가야의 숨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