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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기행] 백만송이 해바라기 축제 그의 두손에서 피어났다

by joolychoi 2010. 8. 23.

 

 

 

 

태백기행] 백만송이 해바라기 축제…그의 두손에서 피어났다 

 

 

    

 

 

 

 

 

 

 

 

 

 

 

 

 

 

 

 

 

 

 

 

 

 

 

 

 

 

 

[태백기행] 백만송이 해바라기 축제 그의 두손에서 피어났다

고원자생식물원 원장 김남표

한여름이면 구와우 마을은 해바라기로 환한 공간이 된다. 구릉 안쪽에서 해바라기가 시야 가득 펼쳐진다. 100만 송이다. 여름이면 해바라기 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 단 한 명이 기획했고 그 한 명이 지금도 운영 중이다. 고원자생식물원 원장 김남표(45). 2005년부터 해바라기를 심어 매년 평균 2만명 이상 관광객을 태백으로 불러오는 주인공이다.

본래는 꽃과 거리가 멀었다. 1990년부터 12년간 인테리어 일을 했다. 그가 말했다. "
태백에 있는 점포 중 3분의 1 정도는 내 손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 태백뿐 아니라 강릉·고성·평창 등 일 있는 데는 모두 갔다."

구와우 마을과 인연을 맺은 건 2002년. 친구 손에 이끌려 우연히 찾은 곳이 구와우였다. 땅을 보는 순간 꿈이 꿈틀거렸다. 시골에서 야생화를 키우고 좋은 집도 짓고, 미술관도 해보고 싶은 꿈. 돈을 쏟아 부었다. 사유지만 약 8만6000㎡(2만6000평), 국유지 포함 약 39만6700㎡(12만평).

그는 1억원을 들여 태백과 경기 이천에 있는 농장 두 곳을 통째로 샀다. 거기 있던 꽃을 모두 구와우에 옮겨 심었다. 그해 태풍 루사를 맞았다. 이듬해엔 태풍 매미가 직격했다. 복구를 위해 필요한 돌만 15t 트럭으로 300대가 들어왔다.

2004년 그제야 깨달았다. 자생식물원이 조성되려면 최소 10년이 걸린다는 걸. 그 사이 수익구조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해바라기 축제다.

첫 3년은 헤어나올 수 없는 늪이었다. 2005년 1회 때. 찾는 이는 많았으나 초기 자본이 많이 들었다.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2회째. 해바라기는 잘 컸다. 그러나 큰 게 문제였다. 개막 사흘 뒤 태풍에 몽땅 쓰러졌다. 해바라기들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축제는 나흘 만에 폐막했다. 3회째. 돈이 떨어지고 있었다. 선배와 지인들 도움으로 간신히 축제를 열었다. 축제 한 달 중 22일간 비가 왔다. 찾는 이가 없었다.

4회째. 언론에 축제가 소개됐고,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관객이 늘었다. 2만명 이상이 찾으며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올해 6회까지 축제는 늘 이익을 봤다. 그가 말했다. "자연에 어울리는 미술관을 짓고 싶다. 사계절 내내 다녀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출처:출처:조선닷컴 포토뉴스 (Waple)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