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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매화에서 찾은 선비 정신.

by joolychoi 2010. 3. 11.

 

매화에서 찾은 선비 정신

 

 

 

우수가 지나자 낙안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금정산 자락의 금둔사에는

 

일찌감치 만첩홍매가 굵은 눈발 속에서 꽃망울을 터트렸다.

 

겨울 한설, 그 기나긴 세한의 추위를 견디며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분홍 빛 홍매화는 눈보라 속에서

 

 

더욱 고고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옛 고사 속의 문인묵객들은

 

눈 속에 핀 설중매를 찾아 나귀를 타고 설산을 헤매며

 

탐매행각을 떠났던 모양이다.



조선의 선비들도 매화를

 

화중군자(花中君子)로 은유하며 고결한 품격을 높이 샀다.

 

엄동설한 속에서 꽃을 피우는 매화의 모습에서 세속에 물들지 않은

 

강인한 기개와 인내를 초극하는 군자다운 면모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선비 중에서 가장 매화를 좋아했던 퇴계 이황은

 

매화의 청진함을 리(理)의 세계로 일체화 시키며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도덕적 덕성의 표본으로 삼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매화는 퇴계에게 원동자로서의 리(理)이며,

 

깨끗하고 맑은 리(理)이고 우주의 몸체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가 늘 주창해온 절대불변의 존재자로서의 표상인 셈이다.

 

그 만큼 그는 매화를 좋아했고 그래서 그는 매화 앞에서 늘 겸허했다.

 

<매화시첩>에 나오는 91편의 매화시에서

 

매화를 매형, 매선, 매군, 은자로 은유하고 인격화 시켰으며

 

매화 본연의 품성을 순선무악(純善無惡)의 진(眞)으로까지 규정하기도 했다.

 

도산서당에 칩거할 때 퇴계는 그 주변에 매화를 많이 심고

 

매화가 피면 청자로 된 둥근 의자 밑에 불을 넣어두고

 

밤새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매화를 완상하곤 했다.



'뜨락을 거니니 달이 나를 따라 오네

 

매화 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가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길 잊었더니

 

옷깃에는 향기 가득 달그림자 몸에 닿네'



운명하는 순간에도 '저 분매에 물을 주어라'고 마지막 말을 남긴 퇴계는

 

매화를 통해 인간과 자연이 천부의 질서 속에 조화되는

 

천인합일의 성리학적 테제를 몸으로 실천한 진정한 선비였다.



그러나 퇴계가 그토록 사랑했던 매화는

 

애석하게도 지금 도산서원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두향이가 선물했다고 전해지는 녹악매도 이미 없어진지 오래이다.

 

지금 있는 것은 모두 새로 심은 것들인데 가장 오래된 것이

 

50년생 두 그루이다.



작년에 <다인>(茶人)지에 원고를 쓰기 위해서

 

도산서원의 이오호 소장을 인터뷰 했을 때

 

그는 혈통매화를 찾기 위해 많은 애를 쓰고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마쓰시마(松都)의 조선매화이다.



16세기 일본 혼슈의 동북지방 영주였던 다테 마사무네가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했다가 도산서원의 녹악매를

 

미야기현(宮城縣) 센다이(仙台)에 있는 미야기 형무소에 옮겨 심었으며

 

도산매는 또 효고현(兵庫縣) 히메지 미쯔(御津町)의

 

 세계매화공원에도 있었다고 한다.

 

 

다테 마사무네는 창덕궁 선정전에 있던 와룡홍매와 백매도 강탈하여

 

마쓰시마에 있는 서암사(瑞巖寺)와 미야기 형무소

 

그리고 센다이 시민공원에 심어 놓았다.

 

용이 누워 있는 것 같은 미야기현의 명물인 이 서암사 와룡매는

 

바로 우리궁궐에 있었던 조선매인 것이다.



서암사는 1991년에 센다이의 가미농고를 통해 자매고인 수원농생명과학고에

 

서암사 와룡홍매 자목(子木)2본을 기증하였고

 

1999년에는 안중근의사 위패를 모시고 있는 대림사의 사이또 주지가

 

조선 침략을 사죄하는 의미로 서암사 와룡홍, 백매 자목을

 

서울 남산에 있는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기증하였다.



도산서원은 매화공원 조성사업을 시작하며 남산의 자목을 다시 기증 받아

 

작년에 백매 15본과 홍매 8본을 서원 뒷밭에 접목 시켜 놓은 것이다.



이제 남도에는 또 다시 매화가 찾아왔다.

 

섬진강의 매화산천과 구례 화엄사 각황전의 홍매,

 

산청군 단속사지의 정당매와 야매, 남사리의 분양매,

 

620년 된 선암사의 백매와 전통 참매화 군락,

 

전남대의 대명매와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 창덕궁의 만첩홍매,

 

이 모두 수백년 동안 우리 선대들이 지키고 가꾸어온

 

고매이며 명매이고 이 땅의 매화정신이다.


 

홍선웅 화가·국립현대미술관 운영심의위원

출처 : 여러분
글쓴이 : 갑돌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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