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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 포옹할까요? 프리허그에 숨은 감동과학

by joolychoi 2007. 2. 9.

 

우리 포옹할까요?

-프리허그에 숨은 감동과학

 

 

길거리 한복판, 커다란 피켓이 등장했다. 무관심과 냉소에 찬 눈빛 가운데 머뭇거리며 다가오는 발걸음 하나가 느껴진다. 숨을 죽인다. 갑자기 36.5℃의 체온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얼굴에는 웃음이 번지고 흑백의 세상은 환한 빛을 되찾았다.

 

2006년 말 세계의 화두는 UCC(User Created Contents, 사용자 제작 콘텐츠).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는 매일 올라오는 비디오클립이 1억개가 넘는다. 여기에 올린지 나흘만에 70만회의 조회수와 6000개의 댓글을 기록한 동영상이 하나 있다. 바로 호주 시드니에 사는 후안 만의 프리허그 동영상이다. 처음 보는 사람과 아무런 조건 없이 껴안는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진한 감동을 불러왔고 유튜브를 통해 세계로 퍼져나갔다.


경계를 허무는 포옹

  

 지난 10월 우리나라에도 프리허그 운동이 상륙했다. 포옹으로 사람 사이의 연대감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거세졌고 서울 명동과 인사동 거리에는 쌀쌀한 날씨에도 피켓을 들고 나온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곧 프리허그 운동본부가 생겼고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이나 네이버에는 수천명의 회원이 모인 허그카페가 꾸려졌다. 전통적으로 신체접촉의 기회가 적은 문화권이기에 프리허그에 대한 저항감이 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말 그대로 기우에 불과했다.

 부산에 살고 있는 직장인 정우정 씨는 주말에 시간이 날 때면 프리허그를 한다. 가끔은 프리허그를 하고 있는 자신이 더 위로받는다는 그는 “프리허그는 단순히 두 팔을 벌려 기계적으로 껴안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행위예요. 말없이 껴안는 동안 행복하고 기쁜 감정이 솟아나죠. 진심어린 포옹은 백마디 말보다 강력한 힘을 가져요”라며 프리허그의 매력을 조목조목 늘어놓는다.

낯선 사람을 껴안는 행동은 가장 적극적인 비언어적 의사소통이다. 이화여대 생명과학과 최재천 교수는 “포옹은 상대를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을 줘 금세 경계심을 허물게 만든다”며 “동물의 세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자주 관찰된다”고 말한다. 인간과 98% 이상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침팬지의 경우 격렬하게 싸운 암수침팬지가 잠시 후 다른 장소에서 만나 껴안고 키스를 나누며 기분을 푼다. 보노보 사회에서도 접촉은 중요한 친화의 수단이다. 먹이를 눈앞에 둔 보노보들은 으르렁대기보다는 몸을 비비며 긴장을 풀고 서로가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인간을 닮은 영장류가 보여주는 현상을 통해 서로를 껴안고 어루만지는 행동은 이성의 너머에 있는 원시적이고 친밀한 감정의 영역에서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접촉의 본질 실험대 위로

평생 독신을 고집하던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피그말리온. 그의 눈에 비치는 세상 모든 여자들은 결점투성이였다. 결국 피그말리온은 상아를 다듬어 완벽한 여인을 조각하고 매일 그 조각상을 어루만지며 세월을 보낸다. 노총각의 마음에 싹튼 사랑의 기운을 읽기라도 한 걸까. 뜨거운 키스와 부드러운 손길에 차가운 조각상이 쿵쿵 뛰는 심장을 가진 여인으로 살아난다.

그렇다면 과연 신체 접촉은 우리 몸과 마음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걸까. 1950년대 미국 위스콘신대 심리학과 해리 할로 교수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접촉의 본질을 실험대 위로 끌어올렸다.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이른바 ‘헝겊 대리모실험’은 사랑과 접촉이 얼마나 중요한지 밝혔다.

원숭이는 보통 15마리에서 100마리까지 대가족을 이루고 산다. 갓 태어난 새끼 원숭이를 가족에서 격리시킨 뒤 행동을 관찰하자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났다. 새끼 원숭이의 눈앞에는 두 마리의 가짜 원숭이가 놓여있다. 한 마리는 온몸을 철사로 두른 채 우유병을 들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젖병은 없지만 따뜻한 헝겊으로 몸을 감싸고 있다. 배고픔을 달래줄 ‘철사 엄마’와 따뜻하게 몸을 감싸주는 ‘헝겊 엄마’, 새끼는 둘 중 어느 쪽을 택했을까.

실험 결과 새끼 원숭이는 평소에는 헝겊을 두른 원숭이의 곁에 머물다 배가 고플 때만 철사가 감긴 원숭이를 찾아갔다. 특히 갑작스런 공포 상황에 놓였을 때 새끼 원숭이는 본능적으로 헝겊을 두른 원숭이에게 달려가 안겼다. 어미의 품에서 자라지 않은 원숭이는 어른이 돼서도 공격적으로 변했고 자기가 낳은 새끼에 대해서도 애정을 보이지 않았다.


껴안으면 기분 좋아지는 이유

다른 감각기관과 달리 촉각은 피부 전체가 자극을 받아들인다. 누군가 나를 만지면 피부의 신경세포는 그 느낌을 빠르게 뇌로 전달한다. 피부와 뇌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이뤄져 분열할 때 외배엽에서 함께 만들어진다. 태생이 같은 셈이다. 그래서 피부를 제2의 뇌라고 부른다. 고려대 의대 나흥식 교수는 “촉각은 태어난지 1주일 안에 집중적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이때 피부 자극을 주면 뇌의 감각신경이 발달하고 심리적으로 안정돼 성장도 촉진된다”고 말한다.

1992년에 세워진 미국 마이애미의대 접촉연구소는 신체접촉이 인간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있다. 저체중으로 태어난 미숙아들에게 부드러운 손길로 마사지를 해주자 체중이 40% 이상 증가했고, 마사지를 받지 않은 아이보다 일주일 정도 빨리 퇴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몸을 꾸준히 마사지했더니 내장기관의 운동이 활발해지고 소화능력이 향상됐다. 연세대 의대 소아과 정기섭 교수는 ‘엄마 손은 약손’은 배앓이하는 자녀의 배를 문지를 때만 하는 말이 아니다. 어린 시절 부모와 자주 접촉한 아이는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자신감을 얻게 된다”고 조언한다.

접촉연구소는 그 밖에도 당뇨나 류머티즘, 유방암, 파킨슨병, 에이즈, 우울증과 식욕부진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마사지요법을 시험하고 있다.

마사지의 효과를 한마디로 단정짓기는 힘들지만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예전보다 걱정이나 불안을 덜 느끼고 명랑해졌다. 에이즈나 암환자의 경우 마사지를 받은 뒤 면역기능이 강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접촉연구소는 이 모든 결과가 마사지로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가 줄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누구나 황홀한 기분을 경험한다. 프리허그를 한 사람들의 입에서는 공통적으로 ‘너무 기분 좋았다’는 말이 쏟아져 나온다. 그렇다면 피부를 접촉할 때 행복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2002년 7월 28일 영국의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에는 포옹의 비밀을 풀어줄 의미심장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스웨덴 살리렌스카대학병원 신경생리학부 하칸 올라우손 교수는 어루만지는 자극에 기분좋게 반응하는 신경망이 피부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촉각은 주로 고속 신경조직망에 의해 초속 60m의 빠른 속도로 뇌에 전달된다. 외부의 압력이나 자극에 재빠르게 대처해야 적절히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피부에는 초당 1m밖에 이동하지 못하는 느린 신경망도 존재한다. 이를 CT(C-Tactile)신경계라고 하는데, 올라우손 교수는 “신경계가 파괴돼 촉각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환자도 부드러운 피부 자극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CT신경계가 무의식적인 느낌을 뇌에 전달한다”고 말했다.

피부가 서로 닿으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옥시토신은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자궁을 수축시키고 젖 분비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걸로 알려져 애정호르몬이라 부르기도 한다. 올라우손 교수는 “기분 좋은 포옹이 CT신경계를 자극하면 옥시토신이 분비된다”며 포옹하며 느끼는 행복을 근거 있는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새해에는 사랑을 표현해볼까

타임지가 선정한 2006년 최고의 발명품에는 허그셔츠도 있다. 디자인회사 큐트서킷이 개발한 이 티셔츠는 심장박동과 체온을 전달하는 특수센서를 달아 멀리 떨어져있는 연인과도 언제든지 포옹하는 느낌을 나눌 수 있다. 포옹도 디지털이라는 옷을 입고 진화한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포옹이 갖는 의미는 다르지만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며 “오늘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어쩌면 ‘접촉결핍증’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저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 프리허그를 시작했다는 후안 만. 그가 두 팔 벌려 실천한 사랑바이러스는 강력한 전염성으로 세계에 전파됐다. 낯선 이들과 포옹은커녕 눈 한번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사는 지금, 치명적이지만 놀라운 치유력을 가진 사랑바이러스에 감염돼보는 건 어떨까. 마음만 먹는다면 한번의 포옹으로 행복이라는 덤을 얻을 수 있다. 

 

 

 

| 글 ㆍ 신방실 기자 weezer@donga.com |

[ 기사제공 : 과학동아 2007년 1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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