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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여행

[스크랩] 대마도 여행기

by joolychoi 2007. 2. 3.

가깝고도 먼 일본나라

그중에 대마도는 지리적으로도 우리나라 외딴섬 제주도나 울릉도 보다 1/3정도 가깝다(49.5km)

그렇지만 일본 본토 보다도 가기 힘든곳

경남 사람들중에 여유있는 사람들이 낚씨하러 간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특별한 경우이고 관광을 목적으로 한 정기선 운항을 개시한지 6년여 남짓하여 일부러 가기도 힘들다

킬리의 해외산행 금년 스케쥴에 일본 대마도의 시라타케(519) 및 아리아케(559) 등산이 계획되어 있어 관광을 겸하여 가기로 하였다

당초 계획은 1월 19~20을 잡았으나

갑작스런 선박 수리명령 때문에 일주일이 지체되어 45명 예약자중 절반이 날아가고

일주일만에 다시 42명 까지 체우느라고 회장님이하 의장님 그리고 신생 공총무등 밤잠을 못잤다 한다

 

내가 아는 대마도는 고구마같이 생긴게 고구마를 우리나라에 전해 주었다는 것과 과거에는 왜놈들의 소굴로 노략질을 일삼는 해적의 집단 이었다는 것과,

세종1년(1419) 이종무 장군이 점령을 하였다는 정도.

그리고 “독도는 우리땅” 노래에 대마도가 나오면서 막연하게 대마도가 우리땅이 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이다.

 

오전 5시 일어나 준비를 하고 있는데

4시 45분경에 총무님 콜이 벌써 들어와 있다. 여권 챙기고 어쩌구 하라면서..

6시 중마동에서 합류하여 부산을 향하면서

일본에 대해서 공부를 한다

특히 그들의 사상중심이 되는 화(和:와)에 대해서 공부한다

남에게 폐를 안 끼치기 위해 할말을 안하고 산다는 것

심지어 부부간에도 그것이 적용되어 지극히 순종적인 일본의 아내가 정년퇴직후 보따리를 싼다는 것

그것이 과연 진정한 화인지??

아니면 성질나면 집어 던지고,꼬집힘을 당하고 쌩지랄을 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끌어안는 우리네가 좋은건지….. 

부산항 도착이 08:20

출국수속후 승선하여 출발이 10:00

오륙도를 돌아가는 여객선의 앞바다는 잔뜩흐리고 파고는 1m 내외라 했다.

이만하면 아주 양호한 편

출항후 1시간 여만에 상대마도가 보이기 시작하지만 이배는 하대마의 이즈하라 항구 까지 더 내려가서 약 3시간만에 도착한다

 

비좁은 입국 심사장으로 오르는 통로

 

 

 

 이즈하라시내

 

 

항구는 국제선이 드나드는 항구 답지 않게 조그만 소도시의 어촌같다

좁은 건물의 입국 심사장은 축소지향의 일본문화답게 답답하기 그지 없다

한국인이 당연 많아서 한글로 “요즘 시절이 하 수상하여 세심하게 하니 양해” 해 달란다

통과후 우리를 기다리는 가이드가 부산아가씨(?)인 부영순씨

본인이 여기서 민박집도 운영하고 있다 한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특유의 경상도의 걸걸한 말솜씨가 아마도 염의장을 이겼으면 이겼지 못하지는 않을 것 같다

 

대마도는 동경 129도, 북위 34도의 큐슈(九州)본토에서 132㎞, 한반도에서는
불과 50㎞의 거리에 있는 큐슈 최북단 국경의 섬으로. 맑은 날이면 부산에서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섬이라 한다
섬의 전체면적은 709㎢로 거제도보다 조금 크고 제주도 보다는 작은 섬이다.
대마도 전체 인구는 2000년 조사에 4만6천명 이었으며,대마도의 수도인 이즈하라에 1만7천명이 살고 있었다는데 지금은 더 줄었으면 줄었지 늘지는 않않았을 거라는 가이드의 견해
행정구역상으로는 나가사키현에 속해 있으며 크게 상도와 하도로 구분한다,
6개의 쵸(町:정)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중심지는 이즈하라쵸이다.
대마 본섬 외에 109개 부속섬을 갖고 있으며 그 중 사람이 사는 곳은 5곳.
전섬의 88%가 산악이고 원시림에는 일본 본토에서 볼 수 없는 많은 대륙계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산해진미 또한 풍부해 인심이 좋기로도 소문나 있다지만 그것은 경험 할수 없었고....

 

엣날 통신사 행로

 

 

 

 

 

 

 

순조 11년(1811년) 마지막 12회째의 조선통신사 일행 500명이 다녀간 이후 188년만인 1999년 7월14일 한국 관광객이 처음 대마도 이즈하라에 발을 내딛은 이후 꾸준히 관광객들이 증가하여 얼마전에 30만을 돌파하여 기념행사도 했다 한다.

아마도 앞으로는 약 한국국민 절반은 다녀가지 않을까 싶다

 

대마도는 우리민족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섬이다.

12회에 걸쳐 일본에 문물을 전한 조선 통신사 일행이 이 섬을 거쳐 지금의 동경인 에도로 들어갔고 조선시대에 우리나라 남부 해안지역을 노략질하던 왜구의 근거지로 수회에 걸쳐 조정에서 정벌에 나섰던 곳이기도 하다.

이 섬에는 우리민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숨쉬고 있어 일본의 섬이지만 일본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우리 조상들의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을마다 있는 신사건물이나 일본식 가옥구조를 빼면 우리 제주도나 울릉도 쯤에 와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먼저 수선사에는 구한말 대유학자이며 항일운동가인 최익현선생의 순국비가 있다. 최익현은 쓰시마에 유배된뒤 일본에서 경작한 식량을 거부한 일화로 유명하다. 끝내 쓰시마에서 죽은 최익현의 유해는 백제의 비구니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슈젠지, 즉 수선사에 나흘 동안 안치된후 부산항으로 이송됐다.

이러한 선생의 넋을 기리기 위해 순국비가 건립돼 전하고 있다.


이 외에도 신라시대 불상과 신라사신 순국비, 조선국 역관사 조난 위령비 등 우리 역사와 관련된 유물, 유적들이 즐비해 역사관광 코스로 손색없는 곳이다.

 

다음으로 나가사키 현립 대마역사민속자료관을 간다.

자료관 입구에는‘조선통신사지비(朝鮮通信使之碑)’라고 새겨진 커다란 비석을 만나게 되고 이 역사자료관에 보관돼 있는 유물들에서도 우리 선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는 조선에서 간행된 ‘훈몽자회’가 보관돼 있고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인상적인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16.58m의 두루마리에 채색으로 그린 조선통신사의 행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에는 관복을 갖춰입은 우리 통신사가 8명의 일본인이 들고가는 가마에 올라 앉아 있고 그 뒤를 따라 말을 탄 통신사 일행들이 뒤를 따르고 있다.

또 각각의 말에는 두사람씩의 일본인들이 경마잡이를 하고 있다. 이 그림 한장만 보아도 일본인들이 우리 통신사를 얼마나 융슝히 맞이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인들로서는 우리 통신사들이 그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지대한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에 이같은 칙사대접을 하지 않으면 안됐을 것이다.

 

이외에도 여러 자료에서 심지어 일본 자료에도 대마도가 조선땅이라고 표기 되어 있었지만,

우리가 이땅을 지키지 못하고 이제와서 우리땅 운운 하면 뭣하리

가이드 말씀 처럼 우리국민이 한평씩 사들이면 어떨까 하지만 팔기나 하겠는가?

 

덕혜옹주!!

13살 나이에 유학이라는 미명으로 일본에 끌려와서

마음에도 없는 대마도 영주의 아들과 결혼 한다

이를 기념하여 이곳 주민들이 세웠다는 “결혼봉축기념비”를 비를 맞으며 감상하는 기분은 진짜 꿀꿀 했다

 

 

 

 

비좁은 대마도 호텔에서 일박을 하고

시라타케산(白嶽)으로 등정을 시작한다

이곳은 국립공원지역으로 산림(삼나무:스기목)을 보호하기 위한거라고 보면 되겠다

멀리서 보면 꼭 마이산의 그것처럼 말의 두귀가 뽀족히 올라와 있다

정상으로 오르는 중간에 민속신앙 같은 작은 굿당 같은 모습의 신궁이 자주 만난다

등산객은 우리나라 사람밖에 없는듯 오가다 만나는이도 한국 사람이요, 등산길에 매어둔 리본도 모두 한국산악회 표시들이었다

정상부는 뾰족한 바위로 10명도 서있기 힘들정도로 좁고 안전장치도 없어 서둘러 하산한다

날씨가 받쳐주지 않아 아름다운 해안을 볼수 없어 아쉬웠다

하산길은 빽빽한 삼나무 숲을 2시간여를 횡단하여 카미자카 전망대에서 점심으로 지급된 도시락을 까먹는다

 

 

 

 

 

 

 

 

 

 

 

 

 

 

오후에는 아리아케산을 등정할 팀과 시내관광팀으로 나누었다

시내관광 이래야 신사(神社)인 팔번궁과 면세점 정도이다

오후 산행팀이 하산후 합류하여 해수 온천탕으로 피로를 푼다

그런데 관광지의 해수탕의 시설이라는게 한국의 동네 목욕탕 수준이다

목욕이 일상이라는 일본에서 대단위 목욕시설은 이러한지 아니면 여기가 대마도 이기 때문에 투자를 아니 하는 모양

그러나 물은 좋다는 평

목욕을 끝내고 가이드가 운영한다는 민숙집으로 이동하여 해변에서 해물 바베큐 잔치가 벌어지고 흥겨운 아소만 바닷가는 추억이 쌓이고 있다

방은 정통 일본식 다다미방 이었는데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는 추워서 이불을 두채나 덮고 잤다

일출보기를 기대 하였건만 흐린 날씨탓에 어두운 새벽에 아침을 먹고 7시에 출발한다

해안을 돌아오는 버스에서 바라다보는 바다는 이것이 호수이지 바다냐 싶을 정도로 고요하고 주위 산들이 너무나 가까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바다에 진주나 오징어가 일본에서 최고로 많이 생산된다 한다

 

 

 

 

 

 

 

 

 

 

 

 

 

대마도가 원래 하나의 섬이었는데 러일전쟁때 아소만에 정박한 군함을 빠르게 조선바다로 내보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짜르고 운하를 만들어 그위에 다리를 만든게 만관교(萬關橋 만제키바시)이다

내려다 보니 물쌀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에보시타케 전망대나 한국전망대는 모두 한국을 바라볼수 있는곳으로 맑으면 부산이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 휴대폰이 터지는곳

우리가 뭐 이산가족도 아니고 몇시간 후면 한국으로 갈것인데 부산을 바라보면서 눈물지울 일도 없어 오히려 아름다운 대마도의 해안을 감상 함이 좋았다

한국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곳에 일본 자위대 부대시설이 있어 기분이 좀은 그랬다

이곳 한국전망대는 통신사와 동해하다 배가 침몰하여 죽은 역관사 200명의 순국비가 있었다

 

 

 

 

 

 

 

 

와타츠미 신사는 바다신을 기리는 해궁으로 도리(天자 비슷한 문: 새)가 바다속으로 두개나 뻗어 있는데 그방향이 신라 쪽이라 한다

그럼 그 신은 신라신 이라는 말씀?

 

 

 

 

 

 

전망대에서 일정을 끝내고

북쪽 히타카츠항에서 제공된 도시락을 마지막으로 까먹고 12:30에 귀국하다

 

 

 

 

 

 

 


출처 : 길손의 안식처
글쓴이 : 카라 원글보기
메모 : 대마도에 대한 자료들은 찾아 봤지만 현장의 생생한 기록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