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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프리카의 한국식 정자를 구해 주세요.

by joolychoi 2007. 1. 20.

오랫만에 조용한 오전 시간을 만끽하고 있는데,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케이프타운 인터네셔널 스쿨의 교장선생님이셨습니다. 워낙 평소에도 말이 빠르고, 영국식의 독특한 유머감각을 보이시는 분이라 고난이도 듣기시간이 되겠구나 하고 약간 긴장을 해 봅니다.

 

 

말씀인즉슨, 학교 정원에 있는 성북정이 무너질 지경에 처했는데, 대사관이나 한국 교민회나 어디 아는 곳에 연락해서 가져가 줄 수 없겠냐는 것입니다. 올 초에 광산업을 하는 부유한 사업가에게 팔려서 조금만 있으면 다시 못보겠구나 하고 아쉬움을 달랬던 것이 얼마되지 않았는데, 이게 어쩐 일???

 

댓글을 보니, 정자가 만들어지게 된 경위에 대한 설명이 좀 필요한 것 같아서 조금 설명드리겠습니다. 원래 모 정유사 지사장으로 한국에서 근무하셨던 분이 한국의 아름다움에 반했다고 합니다. 

 

케이프타운으로 근무지가 변경되면서 한국에서 전통건축물을 짓는 분(장인)을 초청하고, 재료를 다 실어와서 하나 하나 지어 올렸다고 합니다. 정자의 이름이 성북정이 된 연유는 그 분이 서울에서 사시던 동네가 성북동이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아마 그 장인분께서 케이프타운의 기후 환경이 얼마나 다른지, 연 중 대부분 맑고 뜨거운 날씨에 겨울 두어달 동안 내내 비가 많이 오는 지중해성 기후가 한국 목재에 미칠 영향을 어떻게 다 예측하고 반영하여 지을 수는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한 두해 살아서 알 수 있는 것이아니니까요. 그리고 나름대로 학교측에서도 유지 관리를 한다고 하지만, 전문가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식 건물의 관리를 현지식으로 정원가구용 방수,방부 처리제로 한다는 것도 무리가 있구요.

 

그래서 관리를 할 여력이 되는 사업가에게 팔았던 것인데,  그 부유한 사업가가 얼마전에 돌아가셔서 유산을 물려 받은 가족들이 원래 계약했던 비용은 지불했지만, 정자를 더 이상 가져가고자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계속 유지 관리를 해야 되는 건축물이니까 어지간한 애정이 없다면 쉽게 가져가겠노라고 말하기는 힘든 것이겠지요.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운영되는 빠듯하게 운영하는 사립학교에서 돈이 남으면 학습 재료 하나 사는 것이 급하지 한국식 정자를 유지 관리하는 것은 아무래도 우선순위에서 빠질 수 밖에없겠지요. 그래도 아름다운 건축물이 상해가는 것을 안타까워 하셔서 교장선생님이 여기저기 도움을 수소문 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 들어 부쩍 4개의 기둥이 기울어지기 시작하여 점점 위험해져서 학생들이 근처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오늘은 드디어 빨간줄까지 둘래에 둘렀다고 하시길래, 잠깐 시간을 내어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정말 멀리서도 기둥이 기울어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유사의 남아공 연수원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이후 인터네셔널 스쿨이 사용하게 되면서 그대로 정자까지 물려받게 된 것입니다. 기둥은 옆으로 조금씩 기울어 졌는데, 아직도 처마선의 아름다움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석구석 조금만 살펴보면 관리의 손길이 얼마나 부족한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관리를 잘 해줄 수 있는 분이나, 기업이면 누구나 정자를 가져가도 좋다고 합니다. 다만 정자를 가져갈만 한 큰 집을 가진 교민이 케이프타운엔 거의 안 계시고, 한국 대기업의 남아공 지사나 상사는 다 여기서 멀리 떨어진 요하네스버그나 프레토리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아는 분이 안 계십니다.  그리고 기업이 영리가 아닌 이런 문화 사업에 예산을 집행하는 것이 아무래도 간단하지가 않다는 점도 있겠지요.

 

전문가는 아니지만, 제가 유심히 살펴본 바로는 눈속임식으로 어설프게 지어진 정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대강 쇠 못으로 탕탕 박아 지은 건물이 아니라, 나무 조각 하나하나 끼워 넣고 채워 넣는 방식이으로 정성껏 지었습니다. 단청의 색도 잘 관리된 한국의 사찰이나 전통 건축물에서 보던 그 색감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만 유지관리를 어설프게 하면서 새로 박은 나사못이 마치 제 가슴에 박힌 듯하여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 겠기에,프레토리아에 위치한 주 남아공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제가 조금 흥분해서  두서없이 막 설명을 했는데도 담당 사무관께서 차분하게 들어 보시더니, 현재 상태등에 대해 몇 가지 더 물어 보십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현재 우리나라 대사관이 건물을 임대해서 쓰고 있는 형편이라 대사관에 가져다 놓기는 어렵고, 또 실제 전통 건축물을 하나씩 분리하고 이동하여 다시 지어 올리는 일이 비용도 많이 드는 일이라 좀 힘이 들것같다는 솔직한 말씀도 덧붙여 주십니다. 그러나, 일단 문화 담당관과 협의하여 내일까지 연락주겠노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대사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교민회 대표 몇 분과 지, 상사 협의회 등 몇 곳에 더 전화를 해 보았지만,전화 연결이 되는 곳도 많지 않고, 연결이 되는 분도 개인 자격으로 뭘 어떻게 해 줄 입장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평소에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거절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그리고 거절당하는 것이 너무너무 싫기 때문에 애초에 부탁이란 것을 잘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제 하찮은 자존심이나  기분상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문제, 즉 아마도 아프리카 유일의 한국 전통 건축물일지도 모르는, 그래서 간혹 뭔가 아시아적인 요소가 필요할 때면 중국풍도, 일본풍도 아닌 한국 양식의 건물로서 당당히 광고나 사진의 배경으로 쓰이고 있는 성북정의 존폐가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 저기 전화를 걸어서 아쉬운 소리를 해 보지만, 아무래도 제 설득력이 부족한 탓인지 아직 좋은 소식이 없습니다.

 

제가 부자도 아니고,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아주 가끔 아쉽습니다.

오늘도 그런 날 중의 하나였습니다.

 

성북정을 구해 주세요.

외롭고 쓸쓸하게 쓰러져가는 성북정을 구해 주세요.

어쩌면 그것은 단순히 정자가 아닌, 사소한 문화적 가치도 소홀히 하지 않는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구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아고라 네티즌청원] 아프리카의 한국식 정자 살립시다 

 

 

성북정에 대해 부디 한 분이라도 더 많이 알게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작은 힘을 조금씩 모아서라도 남아공 유일의 한국식 정자를 보수,관리를 할 수 있게 되길 한가위 보름달에도 간절히 빌어 봅니다.

 

댓글로 응원해 주신 많은 분께 감사드립니다.

 

 

 

 

의연하게 운명을 기다리고 있는 성북정

 

 

 

아직 이렇게 아름다운데......

 

 

10월 8일 속보입니다.

북한 핵 실험 관계로 일정이 밀려서 10월 12일(월요일) 낮 1시 KBS 1TV의 시사 프로그램 "세상의 중심" 에 성북정 관련 내용이 약 2분간 방송될 예정입니다.  다 읽어 주시고, 댓글 달아 주시고, 관심을 가져 주신 여러분의 덕입니다. 다시 한번 마음 깊이 감사 드립니다.  

 

10월 9일 속보입니다.

 

한국 식당을 하시는 분이 댁으로 가져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가지 개인적으로 걸리는 것은 한국 건축에 정통한 목수가 오지 않아도,

남아공인 목수가 작업을 해도 문제가 없을까 하는 뒤늦은 걱정이.....ㅡ.ㅡ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출처 : 케이프타운에서
글쓴이 : 심샛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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