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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제 및 40년대 사진

by joolychoi 2006. 12. 14.

1905년 경부철도 개통식 광경. 경부선은 서울에서 경인선, 경의선, 경춘선, 경원선, 서울교외선, 중앙선 및 수도권지하철 등 주요 본선 및 지선과 연결되는 한편, 천안에서 장항선, 조치원에서 충북선, 대전에서 호남선, 김천에서 경북선, 부산에서 동해남부선과 연결되면서 육로교통망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경부선은 1901년 8월 20일에 서울 영등포에서, 같은 해 9월 21일에 부산 초량에서 일본자본의 회사인 경부철도주식회사에 의해 기공되어 4년 후인 1904년 12월 27일 완공되 었고, 1905년 1월 1일을 기하여 전선(全線)의 영업이 개시되었다. 출처 : 월간철도( http://webzine.korail.go.kr/






002.몽양 여운형의 글씨 "血 濃 於 水"  血(피 혈), 濃(짙을 농)  결국 '피는 물보다 진하다.'





박통 만주군관학교 예비생도 졸업사진. 졸업식에서 박통은 우등상을 받고 부상으로 부의 황제 명의의 금시계를 하사받았다. 생도 대표로 인사하는 사람이 박통이다. (만주일보 1942.3.24)

 







대한민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실. (1932년)1904년 12월 텐마크 코펜하겐의 우체국장이어었던 아이날 홀벨은 당시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결핵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던 중 크리스마스 날 우체국에 쌓이는 엄청난 양의 우편물을 보고는 우표와 함께 붙일 수 있는 크리스마스 실을 생각해 냈다.

이후 크리스마스 실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결핵퇴치를 상징하는 모금운동이 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32년 12월 일제시대 캐나다의 선교의사인 셔우드 홀(Sherwood Hall)이 처음으로 씰 운동을 시작했다. 남대문을 소재로 도안한 1종의 실이었으며 당시 가격 1전에 판매되었다.

그는 1932년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하면서 발행동기를 “첫째 한국 사람들에게 결핵을 올바르게 인식시키고, 둘째 만인을 항결핵운동에 참여시키는 것, 즉 씰 값을 싸게 해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 모두 사도록 하고 셋째는 재정적 뒷받침을 필요로 하는 결핵퇴치사업의 기금을 모으기 위해서다”고했다.

이후 1940년 까지 크리스마스 실은 9차례 발행되었으나, 일제시대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발행이 중지 되었다가 1953년 대한결핵협회의 창립과 함께 다시 발행하기 시작하여 올해로 52회를 맞이했다.







잊지말자 친구여. 강제 징병을 학생들이 기념으로 찍은 사진으로 추정된다. 소화 19년 (1944년) '잊지 말자 친구여'라는 글에서 식민지 청년의 비애가 느껴진다.








이쾌대의 '마부', 종이에 잉크, 1940년대, 19´19.5cm . 1940~50년대 월북작가 이쾌대와 문자추상의 달인 이응노가 종이에 연필로 스케치한 그림들이다.





일제강점기<朝鮮の話> 소형 리플렛. 조선총독부 철도국 간행. 크기: 47.3cm*18cm(5단 접지형).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철도국에서 발행한 5단 접지형  <朝鮮の話> 소형 리플렛. 소형 리플렛은 당시 조선지역 내의 명소와 유적, 여관등의 간략한 소개를 달아 일한문 혼용으로 제작 간행하였으며 간행했다.










우정사업 최초의 책 "대조선우정규칙". 조선체신의 망한 날인 12월 4일을 우리나라 우편사업의 효시인줄 알고 '체신의 날'로 정해 기념식을 해왔던 굴곡된 역사를 바로잡은 숨은 공로자가 있다.

원로우취가이자 前광주체신청장을 지냈던 석산(石山) 진기홍(92) 선생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2일 제50회 정보통신의 날을 맞아, 지난 수십년간 수집하고 소장해왔던 근대우정에 관련된 자료 177점을 우정박물관에 기증한 진기홍 선생.

"현직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통신역사를 캐고 바로잡는게 숙명처럼 느끼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지금까지 가장 영광된 일은 일본 강점기에 만들어졌던 12월 4일 체신의 날을 근대 우정총국이 설립된 날인 4월 22일로 바로 잡은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961년을 끝으로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그의 통신역사 바로세우기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체신의 날을 바로 잡은 것은 물론이고, 근대 우정사업을 시작하면서 최초로 나온 책인 '대조선우정규칙'을 구하기 위해 일본을 무려 다섯차례나 건너갔을 정도다.

선생은 "이 책 하나 구하려고 일본에 5번 방문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일본 잡지에 이 책을 소장하고 있는 분이 있으면 100만엔을 주고 사겠다고 광고까지 했다"면서 "당시 일본 돈 100만엔이면, 우리 돈으로 1000만원인데 매우 큰 액수여서 그 돈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며 웃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구한 귀한 책을 내놓게 된 이유에 대해 진 선생은 "평생 모았던 자료를 내놓는 것은 나이먹어서 죽으면 이것이 모두 휴지가 될 듯하기도 하고, 큰아들(진영 한나라당 의원)이 기증하라고 매일같이 졸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884년 고종 21년에 국왕 칙資막?우정총국이 설립된 그해 발간된 '대조선우정규칙'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체신법령을 담은 책으로, 우리나라에서 현대식 금속활자로 인쇄한 최초의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이 나온 이후 구한말까지 3번의 우정규칙을 담은 책이 나왔다는게 진 선생의 말이다.

이날 진 선생은 대조선우정규칙 외에도 홍영식 선생이 규장각에 근무할 당시의 친필 2점, 국내우편규칙 등 국내에서 구할 수 없었던 자료가 대부분이어서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진 자료들이다.

진 선생은 "아직 소장하고 있는 자료가 좀 있는데, 진대제 장관이 약속한대로 정보통신박물관을 짓는다면 그때 요란하지 않게 나머지 자료를 모두 정리해서 기증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귀중한 자료를 기증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고 거듭 감사를 표했다.

한편 정통부는 진기홍 선생이 기증한 177점의 우정 자료를 오는 8월 3일~5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에서 특별전시할 계획이다. 특별전시 이후에는 우정박물관에 상시전시실을 마련할 방침이다. 윤미경기자 mkyun@moneytoday.co.kr [ 출처 : 머니투데이 2005. 4.22. ]

 





1949년, 뚝섬에서 정주영일가. 한여름의 정주영 일가. 무더운 여름이면 정주영은 가족들을 이끌고 뚝섬에 나와 수영도 하며 피서를 즐겼다. 사업 때문에 집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던 정주영이기에 이런 시간은 소중하기만 했다.






1945년 9월 9일 서명된 일본과 미국간의 통치권 이양 문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아나운서 마현경(1927년)

 





우리나라 최초의 광석 라디오(1927년)

 





조만식선생 최후의 사진. 45년 9월 평남 인민정치위원회 위원장 시절의 조만식선생.




 

일본군 항복식에서의 조만식선생. 고당 조만식선생이 1945. 8. 18.에 평양에 진주한 소련군 제25군 사령관 치스코포 대장과 함께 평남도청에서 거행된 일본군 항복식에 입회하고 있는 모습, 왼쪽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분이 고당선생이고 가운데가 일본군 후루카와 중장, 오른쪽이 치스코포 사령관이다.








여순반란사건때의 희생자와 유족.

 




임시정부 요인 환영 꽃전차







광복후 마포나루의 모습 (1945년)








1945년 9월 하순 평양에 도착한 소련군 고위 정치장교들은 박헌영에 대해 오류와 결함이 많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지만 그는 여전히 조선공산당의 ‘중앙’이었다. 그러나 소련군의 후원으로 김일성이 부상하면서 박헌영의 위상도 달라진다. 1946년 9월 미군정청의 지명수배 직후 월북한 박헌영(오른쪽)이 평양에서 김일성과 만나는 장면

출처 : 풀향기
글쓴이 : 慧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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