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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우는 사연...자웅석(명석)|‥

by joolychoi 2017. 5. 31.

 

 

 

  돌이 우는 사연...자웅석(명석)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에는 명석각이라는 아담한 건물이 있다.

명석각에는 자웅석이라고 불리는 두개의 돌이 모셔져 있다.

돌을 모신 명석각....

예사롭지 않은 사연이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자웅석은 경남 민속자료 제 12호로 지정되어 있다.

설명문을 통하여 그 사연을 보고 나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

 

 

명석(鳴石)을 한문 그대로 해석하면 우는 돌이라는 뜻이다.

돌이 울게 된 사연은 명석각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고려말 왜구의 침입으로 남해안 일대의 백성들의 고초가 심하였다.

나라에서는 왜구의 침입을 방지하고자 진주성을 정비하게 되었다.

진주성 정비를 위하여 백성들이 동원되어 공사에 참여하였다.

 

이 때 두개의 돌이 진주성의 성돌(城石)이 되기 위하여 진주로 향하였다.

이 돌들이 명석면쯤에 왔을때 광제암의 스님을 만났다.

스님이 "영혼도 없는 돌이 어디를 가느냐?'고 묻자

"진주성의 성돌이 되기 위하여 간다"라고 대답하였다.

 

스님은 두 돌에게 진주성 보수 공사가 끝이 났다고 알려주었다.

이 소리를 들은 두 돌은 크게 울며 낙심하였다.

이 광경을 본 스님이 감복하여 "보국충석(報國忠石)이라고 명명하였다.

그 후 이 돌을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사흘동안 크게 울었다.

사람들은 돌이 운다고 하여 운돌(명석)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우는 돌, 명석(鳴石)은 자웅석(雌雄)이라고도 부른다.

즉 암,수 두개의 돌이라는 뜻이다.

하나는 남자의 성기를 닮았고 하나는 여자의 족두리를 닮았다.

 

원래 자웅석은 다산과 풍요를 빌던 선돌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현실적인 고통을 덜어주고

안녕을 가져다 주는 역할로 바뀌면서 운돌의 전설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점에서 이 자웅석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인간의 숭배 대상도

그 기능이 변화되어 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라 할 수 있다.

 


 

지금도 음력 3월 3일이면 자웅석 앞에서

나라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동제가 열린다.

 

 

남해안 일대를 다니면서 왜구들과 관련된 유적을 많이 만났다.

고려시대 왜구들의 침입을 학교에서 배웠지만

600년이 넘은 지금 그 흔적들이 남아 있으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역사의 흔적들을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되면서

내 마음속에는 반가움 보다는 슬픔이 가득 가득 담겨진다.

너무도 모질게 어려운 삶을 이어오신 조상님들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60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전설로 전해지기도하고

때로는 사천 매향비처럼 땅속에 묻혀 있다가 발굴되기도 하였다.

모두가 우리민족의 애환을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Wishing it was you/Connie Francis 외22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