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할머니의祈禱![](https://t1.daumcdn.net/cfile/cafe/1344791C4CF8FC0C07)
20세기의 마지막 해 1월 21일 아침 11시,
서초동 법원 5층 복도에는 한겨울의 싸늘한
기운이가득차있었다.법정으로바쁘게들어서던
나는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몸집이 작은할머니 한분이
문잠긴다른법정앞에서절을하고있는것이었다.
뼈가시릴만큼차가운바닥위에서홑겹의바지를입고,
잠시도쉬지않고엎드려절을하는할머니의모습은
곧 쓰러질 것 같이 위태로워 보였다.
내심 아마도 죄지은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거라고 짐작했다.
“할머니무슨일이신데이렇게추운데서기도하세요?”
나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었다.
할머니는 조금은 불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는우리아들을감옥에집어넣은못된에민기라요.”
할머니의눈에는금방이라도쏟아질듯눈물이고였다.
할머니가눈물을흘리면서호소한내용은이랬다.
할머니의아들내외는둘다약대를나와함께약사시험을쳤는데
며느리만합격해하는수없이며느리이름으로서울변두리에
조그만 약국을 열었다.
그 뒤 아들은 공부를 계속하고 며느리는
약국을 경영하면서 생활을 꾸려갔다.
하지만여자혼자약국을경영한다는건쉽지않은일이었다.
늦은 밤 젊은 며느리 혼자 약국을
지키다가 동네 불량배들한테 봉변을 당 할 뻔했고,
이따금씩 술취한 손님들이 희롱하며 덤벼들기도 했다.
부산에 사는 할머니는 오랜만에 아들집에 다니러왔다가
이런 며느리의 모습을 보고 속이 무척 상했다.
한편으론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아들에게 전화가나기도 했다.
할머니는 집에서 공부만하는 아들을
다 그쳐 약국으로 내보냈다.
아내와함께약도팔고조제도해주라고몰아세운것이다.
아들은 어머니의 말을 따랐다.
그리고얼마안있어아들은세번째도전한약사시험에합격했다.
이제 면허증을 받으면 흰 가운을 입고
당당히 약사 노릇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행운이 다가올 때 늘 악마가 먼저 시기하는 법일까.
갑자기무면허약사를적발하는단속이나와아직약사면허가
나오지 않은 아들이 그만 구속되고 말았다.
법은 국민건강을 위해 엄격한 약사법을 규정하고 있다.
약사 면허증이 없으면 약국을 개설하지 못하고,
의약품을 판매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위반할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전과자가 되면 있던 자격도 박탈 된다.
“아들을 맨날 구박만 했어요.
며느리는 약사인데 아들은 약사가 못되었으니까요.
그 것 만해도 녀석은 마음고생이 심했을 텐데….
이제 에미 때문에 감옥살이까지 하는 기 라요.”
할머니는 오열 했다.나도 모르는 사이에 콧잔등이 시큰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 변호사는 선임하셨어요?”
“우리 며느리가 변호사는 댔어요.”
다행이었다.나는 그 변호사가 이 할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어떤 면에서 재판은 기계적이고 냉혹할 때가 있다.
사법경찰관리가 작성한 수사기록 안에는
위법만 있을 뿐 온정은 없다.
검사의 공소장 역시 자격 없이 약을 팔았다는
몇 줄의 생명 없는 보고서인게 현실이다.
이럴때 어떻게든 재판장의 피를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요소가 필요하다. 그게 뭘까.
몇 년 전이었다. 상습 절도범으로 구속된
한 소년의 어머니가 나를 찾아왔다.
사십대 초반인 그녀는 수원역 광장한모퉁이에서
핫도그를 파는 노점상인이었다.
그녀는 하얀손수건속에 꽁꽁뭉친 백만원을 내게 내밀었다.
얼굴에 가득 낀 기미와 누런 피부는
그녀를 칠십 노파처럼 보이게 했다.
찌든 삶이 그녀를 늙게 만든 것이다.
나는 그 돈을 만들기 위해
핫도그를 몇 개 팔아야했느냐고 물었다.
한개 팔면 백원짜리 동전 네개가 남으니까
핫도그 2천5백개를 팔아야 남는 돈이라고 했다.
그녀는 훔친돈으로 놀기에 바빴던
못 된 아들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상습절도범인
아들에게는 아무런 정상 참작의 사유가 없었다.
나는법정에서그소년의어머니가비가오나눈이오나
단속 원 눈치를 보며 팔아야했던 핫도그 개수를 이야기했다.
어머니의 눈물겨운 희생과 사랑을 강조 했던 것이다.
마침내 그 어머니의 정성으로 소년은 석방됐다.
어머니의 치열하기 까지 한 사랑은 자식이 어떤 음침한
골짜기에 있더라도 살려낼 힘이 되는 것이다.
그일을떠올리면서나는할머니의담당변호사가기도하는
이모습을꼭보았으면하고마음으로희망하고있었다.
“할머니,아드님은 잘 될 겁니다.만약 재판이 끝났는데도
아드님이 나오지 못하면 저를 찾아주십시오.”
나는 명함을 꺼내어 할머니에게 조심스럽게 건네 주었다.
"선생님 요, 정말 고맙습니다.”
한마디 위로에 할머니의 얼어붙은 얼굴이 조금 풀어지는 듯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다시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기도를 시작했다.
할머니의 작은 어깨가 가냘프게 떨리고 있었다.
한시간이 지나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데 할머니는 아직도
법정앞에서 얼어붙은 망부석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슬며시 걱정이 됐다.
--<옮 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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