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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德叢覽(全州崔氏 按廉使公 宗會)

9. 효. 열부(孝.烈婦)-3) 정렬(貞烈)[9]- 崔氏- 崔氏- 崔氏-崔氏-崔氏-崔氏

by joolychoi 2013. 9. 24.

 

 

 

 

  

세덕총람 (世德叢覽)  
 
  
  9. 효.열부(孝.烈婦)   

3) 정렬(貞烈)[9] 

 

ㅇ 최씨(崔氏)

최씨는 이름이 성남(聖南)이고 전주인 최주순공(崔鑄淳公)의 딸이며 함안인

이보환(李寶煥)의 처이다. 16살에 출가하여 시부는 인자하였으나 시모는 성품이

까다로웠고 남편은 7남매중 장남인데 성질이 급한데다 귀가 어둡고 어눌하였다.

집안이 가난하여 20여 식솔들의 의식을 해결하다 보면 최씨의 의복은 조각조갇

대 입고 조석끼니도 제대로 찾아 먹을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밭에서 일하다 피로에 겹쳐 쓰려졌는가 하면,얼굴은 누렇게 붓고

허기져서 눕는 날이 한두 번이 안니었다.때로는 품 팔고 틈틈이 가축기르기.

춘추로 양잠하기,삼베 무명 베짜서시장에 내다 팔았다. 빙이 좁아 발을 뻗지 못하여

밤 새운적이 많았다.그러니 이 같은 고난을 여기지 않고 한평생 심혈을 기울려

정성껏 시부모 봉양과 말 ㅁ못하는 남편을 이해하고 공대하여 마음을 편하게

해 드렸다.그 밖에 시 남매와의 돈독한 우애와 슬하의 9 남매를 바르게 기르치자니

그 노고는 눈물겹도록 측은 하였다. 이 같은 효 열행에  고성군수로 부터 감사장이

내렸다. 이 사실이 고성문화유적지와 대한충의 효열록상에 등재되었다.

(주)최주순(崔鑄淳 23世): 통덕랑공 최흥호의 후이고 최광묵공(崔光默公)의 현손

 

 

ㅇ 최씨(崔氏)

본관은 전주이고 사과 최필홍공(崔必弘公)의 딸이다. 계림군 곤(鷄林君梱)의 후인

경주 김봉조(金鳳祚)의 처이다. 시부모에 효도하고 남편을 공경함은 부도(婦道)를

 지킴이라 하였다. 남편이 병이들자 하늘에 지극정성으로 축원하였으나 상을

당하자 유복자를 생각ㅎ하여 따라 죽지 못하고 자식을 기루어 집안을 일으키니

그 아들이 김완수(金完洙)이고 문행을 겸비하였다.(환여승람)

(주)최필홍(崔必弘) : 족보 등재 불명

 

 

 

ㅇ 최씨(崔氏)

본관은 전주이고 최동기공(崔東冀公)의 딸이며 제동식(諸東寔)의 처이다.

부도(婦道)가 극진하여 남편이 여러해 동안  병이 깊어 최씨는 백방으로 구환을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었다.손가락을 끊어 구환해도 효험이 없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떼 내어 넉였으나 끝내 구하지 못하였다. 함께 죽으려고 했으나 아비없는 어린자식을

생각하여 마음을 고쳐 먹었다.최씨는 자식을 가르치는 방법이 있고, 집을 다스리는

법도가 있었으니 종족들이 감동하여 그 어짊을 칭송하였다.(고성지. 고성문화유적지)

(주)최동기(崔東冀): 의민공 최균의 후이고 죽파공 최광남(崔光南)의 증손

(주) 고성지 : 崔東驥는 崔東冀의 오기임.

 

ㅇ 최씨(崔氏)

본관은 전주이며 사인(士人) 최백순공(崔伯淳公)의 딸이고 사인(士人) 진양 하용도

(河龍渡)의 처이다. 시부모를 예로서 섬기더니 남편이 병에 걸려 일어나지

못하자 최씨는 살아서 의지할데가 없음을 애통히 여겨  즉시 따라 죽고자 하다가

이르기를 " 자식이 없는 상인데 내가 어찌 예를 다하지 않겠는가? " 라 하고 담제를

당하여 스스로 몸에 부칠  여러가지 도구를 만들고 제사를 끝낸 후

세상을 마쳤다.(진양지)

(주) 최백순(崔伯淳 23世) : 진양지에는 최영순(崔永淳)으로 표기 되었으나 족보상

통덕랑공 최흥호의 후이고 최광걸공의 현손인 최백순(崔伯淳)으로 등재 되어있다.

 

ㅇ 최씨(崔氏)

전주인이며 사인(士人) 최취연공(崔就淵公)의 딸이며 이곡(伊谷) 김희준(金希俊)의

처이다.임진왜란에 노자암에서 피신 중 적에게 잡혀 배를 타고 가닫가 강물에 투신하여

자살 하였다.(구미의 역사와 인물,문향금오)

(주)최취연(崔就淵 10世):검재공 최수지(崔水智)의 증손

 

ㅇ 최씨(崔氏)

전주인 최상대공(崔祥大公)의 딸이며 허휘(許暉)의 처이다. 남편이 우연히 나쁜 병에

걸린지 겨우 며칠만에 임종을 하니 최씨는 발을 굴리며 통곡하다가 손가락을

끊어서 그 피를 남편의 입에 넣으니 얼마 후에 다시 깨어나서 최씨에게 일러 말하기를

"부모님 잘 섬기기를 부탁한다." 하고 갑찌기 세상을 떠났다.

최씨는 습렵과장제(葬祭)를 예법에 따라 행하고 3년 동안 머리를 감거나 빗지

아니하고옷을 갈아 입지 아니하며 이를 드러내어 웃지를 아니하고 남편이

임종 때에 부탁한 말을 종신토록 지켜서 아내로서의 직분을 다하였다.(고성지)

(주)최상대(崔祥大) : 족보 등재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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