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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감동을 주는 글

마더 데레사와 마더데레사의 좋은 글 모음

by joolychoi 2013. 1. 9.

 

 

 

 
 
 
 
 
  마더 데레사의 좋은 글 모음 
 
 
  •  

♡ 오늘도 그리스도는 필요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

써주는 이 없는 사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 주리고,

헐벗고, 집 없는 사람들 사이에 계십니다.

 

국가나 사회는 이러한 사람들은 없어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하여 시간을 할애할 마음이 없습니다.  

만일 우리의 사랑이 참된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사랑에 응답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이나 내가 이러한 사람들을 돌보며

힘이 되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모두들 누군가가 자기들을 돌보아주지 않나 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 오늘날 고통은 이 세상에 더욱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간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

더 위대한 것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지금 온 세상이 하느님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곳곳에 많은 고통이 있습니다만, 하느님을 향한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사랑에의 목마름 역시 큽니다.  

빵에 주린 배고픔이 있는가 하면, 사랑, 친절한 마음씨,

인자한 마음에 주린 배고픔이 있습니다.

 

돈을 주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돈만으로는 결코 충분치 않으니까요.  

사랑해주는 당신의 마음이 필요한 겁니다.  

먼저 당신의 가정에서, 당신의 자녀들을, 부인을,

남편을, 이웃을 사랑해주십시오.

 

♡ "인간의 따스한 음성이 듣고 싶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정신적인 빈곤, 고독, 쓸모없다고 생각되어지는 가난이 있습니다.

결핵도 나병도 아닌 이것이야말로 오늘의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질병입니다.

가난한 사람이란 어떠한 사람들인지를

더욱더 알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만일 가난한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신이

그리고 내가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손길이 되고 도구가 되어 빵을,

옷을 그들에게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굶주린 사람, 고독한 사람, 집 없는 어린이,

살아갈 집을 찾아다니는 가난한 사람의 모습으로 분장하여 다시

오셨으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 온 세상 사람들의 빛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와 같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온유하며 언제나 이웃사람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인자함은 성성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받은 사명, 그리스도를 본받아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다른 사람에 대하여 인자스러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므로

사랑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사랑 안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하느님의

사랑은 다할 줄을 모릅니다.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것,

상처를 입기까지 다 내어주는 것입니다.

 

얼마큼 했는가가 아니라 당신 행동에 얼마만큼

사랑을 넣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물이 얼마나 사랑에 뿌리를 내린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당신이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계속 예수님을 주십시오.

말로써가 아니라 당신의 행동으로써...

 

♡ 돈을 주는 것만으로 만족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돈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돈이라면 자신이 노력하여 벌수도 있으니까요.

가난한 사람은 보살펴주는 우리의 손을 사랑해주는

우리의 마음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사랑, 그 사랑을 퍼뜨리는 것입니다.

 

♡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이 계신 천국을 갈망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하느님과 더불어

천국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는 지금 이 순간에

하느님과 함께 있어야 행복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사랑하시듯 사랑하고, 하느님이 도와주시듯 도와주고,

하느님이 주시듯 주고, 하느님이 섬기시듯 봉사하고,

하느님이 구하시듯 구하며, 스물 네 시간 동안 하느님과

함께 있으면서, 괴로워하는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계신 하느님을 손으로 만지는 것입니다.

 

♡ 친절하고 인자로우십시오.

당신을 만난 모든 사람이 전보다 더 기분이 좋아지고,

명랑해져 돌아갈 수 있게 하십시오.

 

하느님 친절의 살아있는 표징이 되십시오.

친절이 당신의 표정에, 시선에, 미소에,

부드러운 음성에 드러나도록 하십시오.

 

슬럼가에서는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친절을 전하는 빛이 되십시오.

 

어린이에게도, 가난한 사람에게도, 괴로워하고 있는

고독한 사람 모두에게, 언제나 기쁨에 넘친 미소를 보내십시오.

시중을 들어줄 뿐만 아니라 당신의 마음을 주십시오.

어린이를 도와줄 때, 누군가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상담자가

되어줄 때, 약을 줄 때, 누구에게 무엇을 하든 언제나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도록 하십시오.

 

♡ 침묵의 결과는 기도이고, 기도의 결과는 신앙이며,

신앙의 결과는 사랑이고, 사랑의 결과는 봉사이다.

 

♡ 사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커다란 차이는 없습니다.

어디를 가나 만나는 것은 사람이니까요.

외모가 다르고, 복장이 다르고, 교육이 다르고,

지위가 다르더라도 다 같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모두 사랑해야 할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받아들임으로써 포도나무인 예수님과

연결되어 참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되도록 합시다. 우리의 가족,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스도가 진리로서 전해지고 생명으로서

살아가고 빛으로서 밝혀지며 사랑으로서 사랑 받고 길로

알고 걸으며 기쁨으로서 주어지고 평화로서 퍼지고

희생제물로서 봉헌됩시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 기쁨은 기도, 기쁨은 힘, 기쁨은 사랑.

예수님의 기쁨만을 당신의 힘으로 삼으십시오.

마음을 다하고 영을 다하여 예수님을 사랑합시다.

언제나 미소를 간직합시다.

괴로울 때에는 예수님께 미소를 던지십시오.

참된 "사랑의 선교사"가 되려면 마음으로부터 기쁘게

희생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고 또 당신에게서

앗아가시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드리면서 하느님 은혜가

당신 안에서 분명히 역사하시도록 하십시오.

 

참 성성은 마음으로부터 미소를 머금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 기쁨은 사람의 마음을 낚는 사랑의 그물.

하느님은 즐겨 내어주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기쁨을 머금고 내어주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많은 것을

주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에게도 사람에게도 감사를 나타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기쁨에 가득 찬 마음은 사랑으로 불타는 마음에서

자연히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기쁨을 잊을 만큼

마음이 슬픔으로 가득차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하십시오.

 

♡ 그리스도께 대한 당신의 사랑은 큰 것이어야 합니다.

언제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빛이 계속 타오르게 하십시오.

그분만이 걸어가야 할 길, 우리가 누려야 할 생명,

사랑해야 할 사랑입니다.

 

♡ '성인이 되자'고 하는 것은 하느님을 드러내지 않는 모든 것을

자기 자신에게서 제거하고 모든 피조물에서의 집착에서 마음을

떼어놓으며 가난과 이탈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의지, 성향, 변덕, 바램을 포기하고 자기를 즐겨 하느님

뜻을 섬기는 노예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 기도하기를 사랑하십시오.

하루 중 자주 기도의 필요를 느끼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실제로 기도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기도는 마음을 넓게 하고

하느님 자신이라고 하는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간구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마음이 넓어져 하느님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하느님에게서 떠나는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 말을 적게 하도록 합시다.

설교를 해준다 해도 그것이 사람과 접하는 장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비를 들고 남의 집을 깨끗이 쓸어 보십시오.

그 행위가 충분히 이야기를 해줍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고 그리고 잠자코 사라집시다.

 

♡ 기도의 사람이 되지 않고는 직접 사도적인 임무와

맞설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성부와 하나라는 것을 의식하고 계셨듯이

우리도 그리스도와 한 몸이라는 것을 의식해야 합니다.

우리의 활동이 참 사도적인 것이 되기 위하여는 그리스도가

자기의 힘과 희망과 사랑을 가지고 우리 안에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시도록 우리가 자신을 내어놓을 때 뿐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져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거룩하다고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자신의 생명을 충만히 누리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섬기고자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사랑 그 자체,

믿음 그 자체, 결백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단 하느님과 하느님의 바람을 찾는 길을 터득하였다면

가난한 사람들과의 접촉은 자신에게 있어서도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도 성성을 찾는 수단이 됩니다.

 

♡ 우리는 하느님을 발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소음과 무엇인가로 들떠 있는 곳에서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고요의 친구이십니다.

대자연 속의 초목, 꽃을 보십시오.

소리없이 조용히 자랍니다.

별, 달, 태양도 역시 조용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슬럼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전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 아닙니까?

죽은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그리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무언의 기도 속에서 많은 것을 받으면 받을수록 일상의

활동 속에서 많은 것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영혼과 접하여 영향을 끼치기 위하여는

우선 우리에게 고요가 필요합니다.

 

본질적인 것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무엇을, 그리고 나를 통하여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 모두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주지 않는 말은 어둠을 더할 뿐입니다.

 

♡ "사랑이 참되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랑은 상처를 받아야 하며 자기 지신을 비워 내야 하는 것입니다,"

희생, 순종, 고통,,,,,,,이런 것들은 오늘날 인기 없고

매력 없는 주제들이겠지요,

 

오늘날의 문화는 우리 스스로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다고 믿게 하고,

권리를 주장하게 만들며, 과학기술이 모든 고통과 문제들을

다 해결해 줄 있다고 믿게 만듭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아주 다릅니다,

 

하느님의 사람들이 그분께 기꺼이 승복하고, 희생을 바치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려는 노력이 없이는

이세상의 어떤 고통도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의 시초부터 인간은 어떤 희생제물을

바칠 필요를 느껴 왔습니다,

 

적합한 제물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세상을 대신하여

바쳐지는 것,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좋은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 하여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를 위한 하나의 빛으로 존재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깡그리 태워 없애려는 갈망의 불꽃으로

우리 안에서 타올라야 합니다,

 

사랑이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희생, 특히 자기희생으로

양분을 취해야 합니다.

 

고통은 고통 자체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함께하면, 경이롭고 아름다운 선물,

사랑의 표징이 되기도 합니다.

 

♡ 겸손이 아닌 것은 굴욕을 받았을 때와 잘못을 바로잡아야

되었을 때 궁상을 떠는 것, 자신에 대해 언제나 변명하는 것,

자신의 잘못에 대해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것, 칭찬을 받으려는 야망,.

모든 것을 도맡아서 하려하고, 모든 것을 정하려고 열망함.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겸손의 몇 가지 방법은, 자신에 대해

가능한 한 적게 이야기할 것, 자신의 일에 전념할 것,

다른 사람들의 일에 간섭하지 않을 것, 호기심을 피할 것,

모순과 교정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 다른 사람의 실수들을

너그럽게 보아 넘길 것, 모욕과 상처들을 받아들일 것,

무시당하고 잊혀지고 미움을 당하는 것을 받아들일 것,

특별히 사랑 받고 존경받기 위해 애쓰지 말 것,

약이 오를 때에도 친절하고 온순할 것,

사람의 품위를 짓밟지 말 것, 자신이 옳을지라도

토론할 때에 양보할 것, 항상 가장 힘든 것을 택할 것.

 

<마더 데레사의 글 중에서>

 

마더 테레사 (1910 ~ 1997)

 

이름 : 마더 테레사

· 출생 : 1910년 8월 27일 ~ 1997년 9월 5일

· 국적 : 유고슬라비아

· 직업 : 수녀

· 기타 : 1949년 노벨 평화상

 

 

열성적인 카톨릭 신자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교리 공부를 열심히 했던 테레사는 선교활동에 관심을

갖고 1928년 로레토 성모 수녀회에 들어간다. 수녀회에서 학생을

가르치다가 인도의 캘커타 빈민가에서 가난한 사람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을 헌신하는 열망으로 '사랑의 선교회'을

열고 집을 마련한다. 나환자들이 자립해서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재활 센터를 마련하기도 하고, 빈민굴에서 부모를 잃고 고생하고

있는 고아들을 데려다가 돌보기도 한다. 세계 곳곳에 분원을

설치하여 가난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돌보는가 하면, 걸프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조지 대통령과 후세인 대통령을 찾아가 전쟁을

중지시키도록 호소하기도 한다.

 

전쟁이 일어난 지역이 있으면 그곳으로 달려가 부상자를

돌보기도 한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는 사람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해 온 마더 테레사는 1949년 받은 노벨 평화상 외에도

수많은 상을 받는다. 그렇지만 테레사의 정신과 활동은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상으로도 평가할 수 없다. 1997년 죽기 전까지

심장병과 말라리아에 걸려 고생하면서도

자선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요한 19,27

 

1910: 유럽 남동부에서 태어난 아녜스 곤히아 브약스히야

(마더 네레사)는 캘커자의 빈민굴에 버려진 사람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수녀가 된다. 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사업은 전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가장 존경받는 여성의 한 사람이 된다. 노벨 평화상과

종교의 발전을 위한 템플턴상을 포함해 많은 상을 수상한 그녀는

교황님과 대통령, 귀족들과 개인 친분을 쌓는다. 그녀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비천한 일을 하는데 결코 주저한 적이 없으며

자주 반복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가 겸손의 필요성이다.

오늘날 사랑의 선교회가 설립한 107군데 수도원은 국제적으로

4천 명의 수녀와 수사들이 있다. 하느님의 충실한 일꾼으로

묘사한 시편은 그녀에게 꼭 들어맞는 내용이다. "야훼님 집안에

심어진 그들은, 하느님의 뜰에서 꽃피리이다. 늙어서도 그들은

열매를 맺으며 진기있고 싱싱하오리니 그들은 주께서 얼마나

바르심을 내 바위, 당신께는 하지 없으심을 널리 알리리이다.

(시편 91편 14-16)

 

1910년 8월 16일: 마더 테레사는 1900년에 결혼한 니콜

브약스히야와 드라나 베르나이의 막내딸로 마케도니아 알바니아

공화국의 수도인 스코페에서 태어나다. 언니 아가는 1905년에

태어나고, 오빠 나자르는 1907년에 태어나다.

 

1910년 8월 27일: 예수 성심 성당에서 아네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는다. 부모는 열성저인 가톨길 신자로,

특히 어머니가 헌신적이었다.

 

1919년: 니콜 브약스히야는 정치적인 회의에 참석한 뒤 독살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강력한 국수주의자의 신념을 갖고 있는

시의원이었다.

 

1915-24년: 아녜스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오빠 언니와 함께 아녜스는공립학교에 다닌다. 건강이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잘했다. 그녀는 본당 교리공부반에 나가는

한편 본당 성가대원으로, 마리아의 딸이라고 불리는 가톨릭

청녀단체에 속하게 된다. 그는 선교사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성인들에 대한 책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마더 테레사는 어린

시절과 사춘기의 가족생활을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는 특히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매우 화합된

가족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서로를 위해 살았으며,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기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우리는 매우 단결된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외아들이니 나자르는

어머니와 누이들의 종교생활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예수 성심

성당 바로 옆집에서 살았습니다. 때때로 어머니와 누이들은

집에서보다 교회에서 더 많이 사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언제든지 성가대나 봉사난 선교에 관한 토론 문네에

늘 관여하곤 했습니다." 또한 나자르는 어머니의 관대함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집으로 찾아오는 그 많은 가난한 사람을

빈손으로 가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들이 우리와 피를 나눈

친척도 아니고 또 비록 저렇게 가난하지만 우리 형제라는 것을

마음속에 간직해라.'"

 

아녜스는 열두 살 때 선교사의 삶에 대한 부르심을 느낀다.

그러나 그후 몇 년 동안 이 소명은 그녀의 마음속에서 잠을 잔다.

그 사이에 그녀는 마리아의 딸들회의 활동당원으로 일한다.

예수회 사제인 본당 신부님의 권유로 그녀는 선교사에 대한

관심을 키워간다. 아녜스의 오빠 나자르는 기병장교가 되기

위해 사관학교에서 공부하려고 오스트리아로 옮겨 간다.

   

1928년: 아녜스가 스코페의 수호성인 재단 앞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그녀의 선교사에 대한 관심이 수도생활로 이끄는 명백한

소명임을 깨닫는다. 그는 "우리의 성모님께서 나를 중재하시어

나의 소명을 찾도록 도와주셨습니다."라고 했다. 유고슬라비아

예수회의 지도와 도움으로 아녜스는 (아일랜드의 성모라고 볼리는)

메리워드가 16세기에 설립한 로레토 성모수녀회에 입회를 신청한다.

그녀는 인도에서 하는 그들의 선교사업에 큰 매력을 느낀다.

 

1928년 9월 26일:입회 허락을 받고 아녜스는 더블린으로 간다.

그녀는 기차를 타고 유고슬라비아,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영국 등을 거쳐 로게토 성모수녀회 본원에 도착한다.

 

1928년 12월 1일: 두 달 동안 집중적인 영어공부를 한 후 아네스는

배로 더블린을 떠나 37일 후인 1929년 1월 6일에 인도에 도착한다.

아녜스는 캘커다에 1주일만 머물고 곧 히말라야 산기슭에 있는

다질링으로 가 수련기를 시작한다.

 

1931년 5월 24일: 수련기 2년을 보내고 아녜스는 세례명을

테레사로 바꾸고 로레토 성모수녀회에 유기서원을 한다.

"저는 수도서원을 할 대 테레사라는 이름을 택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석은 아빌라의 대 테레사의 이름이 아닙니다.

나는 리지외의 소화 테레사를 택했습니다."

 

1931-37년: 유기서원을 한 후에 테레사 수녀는 캘커타에 살면서

로테토 성모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성 마리아 학교에서 지리와

역사 선생님으로 일한다.

 

1937년 5월 24일: 몇 번에 걸쳐 유기서원을 갱신하고 테레사

수녀는 로레토 성모수녀회 수녀로서 종신서원을 한다.그리고 마힘내

성 마리아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된다. 마더 테레사는 수녀회에서의

삶을 이럿게 총망라한다. "나는 로페토에서 제일 행복한 수녀였습니다.

가르치는 에 나 자신을 완전히 헌신했으니까요.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수행하는 진정한 사도직이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그 일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1946 9월 10일: 하느님께서는 그녀를 가난한 이에게 봉사하도록

부르시다. 마더 테레사는 그날을 '영감의 날'이라고 부른다.

"내가 대피정에 참석하려고 캘커다에서 다질링으로 가는

기차 속에서 조용히 기도를 하고 있을 때, 선명하게 나의 소명 안에

또 다른 소명을 느꼈습니다. 그 메시지는 명백했습니다.

나는 우리 수오회를 떠나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그들을

도와주는 데 헌신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명령이었습니다.

나는 가야 할 목적지는 알았지만 가는 방법은 알지 못했습니다."

 

1948년:로레토 성모수녀회를 떠나는 석은 테레사 수녀에게는

어렵고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로마로부터 그녀의 수도회로

보래주는 특별한 허락이 필요했다. 마침내 그녀가 수도회 밖에서도

수녀로서 살도록 허락이 떨어진다. 8월 16일, 그녀는 로레토

성모수녀회 수녀복을 벗고 인다아에서 가장 가난한 여자들이

입는 흰 사리로 갈아입고 수도회를 떠난다. 사리에는 그녀가 동정

마리아를 닮고 캘커타를 떠나 기초 간호학 3개월 속성과장을

이수한 후 곧 돌아와 캘터타의 빈민가에서 가난한 사람 중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을 헌신한는 열망으로 일을 시작한다.

그해 그녀는 인도의 시민권을 신청하는데,

곧바로 평생 인도 시민권을 받는다.

 

1949년 3월 19일: 첫번째 지원자가 마더 테레사와 합류한다.

마더 테레사가 가르치던 제자 슈바시니 다스가 어느날

예기치 않게 그녀를 방문해 함께할 것을 원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아직 형성되지 않은

수도회의 첫번째 수녀가 된다.

 

1950년 7월 10일:사랑의 선교회가 로마로부터 승인을 받는다.

상당수의 젊은 여성들이 뒤를 이어 들어온다. "1949년 이후 나는

젊은 여성들이 한 명씩 도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부분 옛날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녀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드리고 싶어했고, 매우 신속하게 그 일을 했습니다."

 

1950년 10월 7일: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에서는

사랑의 선교회를 승인한다.

10명의 수녀가 2년간의 수련기를 시작한다.

 

1952년: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임종자의 집을 연다.

수도회에 회원이 30여 명이 된다. 그 중에 12명은 종신서원자이고

12명은 수련자, 나머지는 청원자였다. 아직도 수녀들은 자기들의

수도원이 없었다. 그들은 마이클 곰스가 제공한 셋집에서

'손님'으로 지낸다. 구녀들은 빈민가에 버림받은 아이들과

죽어가는 사람들을 돕는 한편 수도자 양성과 공부에 열중한다.

마더 테레사는 캘커타 중심가에 있는 힌두교 사원인 칼리하트에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얻는다. 그 집은 8월 22일,

복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에 문을 여는데

열자마자 정원까지 꽉 들어찬다. 이러한 현상은 끊임없이

퇴소시키는데도 불구하고 몇 년 동안 계속된다. 항상 새로운

지원자가 뒤를 이어온다. 그 집의 이름은 힌두어로 니르말

리다이인데 '순수한 마음을 가진 집'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대부분 이 집에 오는 사람들이 힌두인이기 때문이었다.

 

1953년:사랑의 선교회 본원이 창립된다. 끊임없는 기도 덕택에

하늘의 선물로 사랑의 선교회는 그들의 수도원을 위해 캘커타

54번가에 있는 집을 살 수 있었다. 그 집은 필요한 수도원과 임시로

쓸 수 있는 집을 살 수 있었다. 그 집은 필요한 수도원과 임시로

쓸 수 있는 공간까지 제공할 수있는 편리한 곳에 위치해 있다.

본원은 사랑의 선교회 총사령부가 된다. 수녀들은 버림받은 비민굴의

고아들을 위해 같은 거리에 있는 집에 세를 들었다가 후에 그 집을

사게 된다. 고아들은 대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임종의 집에서

죽은 부모들의 어린이들이다. 수녀들은 자신들이 돌볼 나환우들의

집을 열기를 원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기 때문에

우선 나환우들을 위한 '이동 병실'부터 시작한다. 후에 수녀들은

캘커타 외곽지대에 티타가르와 산티나가르라 불리는 나환우들이

자랍할 수있는 재활 센터를 연다.

 

1962년: 마더 테레사는 인도 정보가 수여하는 파드나 스리상을

받게 되며, 동남 아시아의 시토(SEATO) 국가들이 수여하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다. 그녀는 아시아에서는 알려져 있지만

아직 서구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1965년 2월 1일: 사라의 선교회가 더한층 인저을 받는다.

이제 15년이 된 이 수도회는 놀랄 만큼 성장을 거듭하게 된다.

3백 명의 수녀와 여러 개의 틈이 생긴다. 유럽 여러 나라

수녀들이 포함된다. 그때까지 사랑의 선교회 수녀회는

지역 주교의 관할하에 인도에만 위치하게 된다. 몇몇 주교의

후원으로, 교황 바오로 6세는 사랑의 선교회가 전 가톨릭 교회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인가하는 칭찬교령을 내리낟.

이 교령은 베네수엘라의 바르키시메토 대주교 초청과 아울러

사랑의 선교회 선교 사업의 확장을 가능하게 한다.

 

1965-71년:존세계에 새로운 분원이 문을 열게 된다.

베네수엘라에 있는 분원이 마더 테레사의 첫버째 해외 분원이 된다.

그 다음해 지역 바톨릭 주교들의 초청으로 더 많은 분원이

아프리카에도,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버른과 애들레이드,

유럽의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문을 연다. 사랑의 선교회

로마 분원이 교황 바오로 6세가 로마의 주교 자격으로 일을

찬미하고 그녀의 후원자가 되며, 선교회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그녀에게 바타칸 시민권을 수여한다.

사랑의 선교회는 1971년에 50여 개의 분원를 갖게 된다.

 

1969년 3월 3일:교황 바오로 6세가 협조자의 회칙을 인정하여

그들도 사랑의 선교회에 공식적으로 병합된다.

 

1969년 3월 26일:사랑의 선교회 협조자회가 공식적으로 설립된다.

마더 테레사의 협조자들은 국제적으로 일반 평신도인 남자와 여자로

구성된 단체인데, 이들이 영성의 실체이며 사랑의 선교회 일을

더 넓혀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학을 한다. 그 수는 매년 끊임없이 증가하기

때문에 확실한 숫자 파악조차 힘들 정도이다.사랑의 선교회가

최초로 설립된 이래 협조자들은 끊임없이 생겨난다.

 

1970년:마더 테레사는 국제적인 중요한 상을 받는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맬컴 머거리지가 펜과 전파를 통해

마더 테레사를 서방 세계에 알림으로써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다. 그 결과 그녀는 미국에서 착한

사마리아상을 받았고, 영국에서는 종교의 진보상인

템플턴상을 받았으며, 바티칸에서는

요한 바오로 23세 평화상을 받았다.

 

1972년 7월 12일: 마더 테레사의 어머니 드라나 베르나이가

알바니아에서 영면하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시칠리아에

있는 아들과 마더 테레사를 보고 싶어했지만, 알바니아 정부에서

그녀의 출국 허가를 거절한다.

 

1974년:마더 테레사의 언니 아가 브약스히야가

오빠의 여동새을 보지 못한 채 알바니아에서 죽다.

 

1979년 10월 17일:마더 테레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노벨 평화상을 받는다. 그렇지만 그녀의 일상생활의

단순성이나 겸손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1979년 12월 10일:마더 테레사는 자신의 삶을 모두 헌신한 가난한

사람의 이름으로 노르웨이 왕 올리프 5세로부터 노벨 평화상을 받는다.

 

1980-85년: 사랑의 선교회는 여러 곳에 새로운 분원을 열고,

많은 새로운 성소자의 축복을 받는다. 1980년에는 레바논, 서독,

유고슬라비아, 멕시코, 브라질 ,페루,케냐,아이티, 스페인,에티오피아, 벨기에,

뉴기니아,아르헨티나 등 14군데에 분원을 연다. 노벨 평화상을 수여한 뒤로

사랑의 선교회는 놀라운 속도롤 뻗어 나간다. 1981년 한 새만도 8군데난

새로운 분원을 열고, 82년에는 12군데, 83년에는

14군데로 늘어난다. 사강의 선교회는 축복 속에 지원자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는 시기에 참으로 예회적이라고 할 수 있다.

 

1986-89년:사라의 선교회는 다른 선교사에게는 닫혀 있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사랑의 선교회는 에테오피아와 남예맨에 분원을

열 수 있는 허가를 받는다. 또 그들은 나카라과와 쿠바와 러시아에서도

분원 허가를 받았느데, 이들 국가는 정책에 의해 무신론주의가

활발한 나라다. 소련의 경우,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의

결실의 하나로 마더 테레사가 모스크바에 분원 허가를 받는다.

 

1986년 2월:요한 바오로 2세가 캘커타를 방문한다.

마더 테레사를 방문한 교황은 사랑의 선교회가 이룬

여러 가지 일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

 

1988년 5월 21일:사랑의 선교회는 로마의 바타칸에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보호소를 연다. 마리아의 해를 기념하기 위해

'마리아의 선물'이라고 이름지어진 보호소에는 어른을 위한 72개의

침상과 2개의 식당이 있는데 한 식당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다른 한 식당은 잠깐 들르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 요양소에는 휴게실과 진료실이 각각 하나씩 있고,

교황 바오로 6세의 알현실 쪽으로 난 정원이 있다.

 

1988-89년:마더 테레사는 두 번째 심장마비로 입원한다.

육체가 완전히 지칠 때까지 과로해 입원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교황님조차도 건가에 좀더 유의할 것을

요청할 정도였다. 주치의들은 그녀에게 전기 자극으로

심장 박동을 지속시키는 페이스메이커를 장치한 후

6개월 동안 안정을 취하도록 권한다.

 

1990년 4월 16일:건강을 이유로 마더 테레사는 총장직에서 물러난다.

책임에서 자유로원지자 그녀는 여러 수녀원을 방분하며

여행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1990년 9월:마더 테레사는 80고령인데다가 건강이

나쁜데도 불구하고 정년퇴직에 기각되어 다시

사랑의 선교회 총장직에 재선출된다.

 

1991년 1월:마더 테레사는 걸프 전쟁을 중지시키기 위해

두 정상에게 호소한다.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조지 대통령과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죄없는 자들의 이름으로 정열적으로 호소하는

마더 테레사의 요처을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두 팀의 수녀들이

전쟁으로 약탈당한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바그다드로 간다.

 

1991-93년:마더 테레사의 건강이 또다시 약화되어 처음엔

멕시코의 티후주아나에서, 다음엔 인도 델리에서 쓰러진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무릅쓰고 1993년 10월에

베이징의 초청에 응한다.

 

1993년 8월 30일:건강이 약화되자 마더 테레사는 사랑의 선교회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만을 협조자로 부를 수 있게 하라고 지시한다.

그 외에 사랑의 선교회에 이름만 걸어놓은 사람들은 해체된다.

 

1994년 2월 3일:미국 워싱턴 DC의 조찬 기도회에서 클린턴 대통령

부처와 고어 부통령 부처 옆에서 마더 테레사는 수천 명의 관중이

넋을 잃고 듣고 있는 메시지에서 생명의 중시와 평화를 촉구한다.

후에 대통령은 마더 테레사에게 '그가 진정으로 살고 있는

의탁의 삶'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

 

1996년 4월:마더 테레사는 사랑의 선교회 본부 침대에서

떨어져 골절상으로 병원에 잠깐 입원한다.

 

1996년 8월:마더 테레사는 캘커타에 있는 병원에 말라리아로

입원한다. 장기간의 열벼이 심장 상태를 약화시킨데다 오랫동안

인공호흡용 마스크르 사용해 폐에까지 감염된다. 몇 번의

입퇴원을 반복하다가 일터로 되돌아온다.

 

1996년 10월:빌 클린턴 대통령이 마더 테레사를 미국의

명예시민으로 추대하는 헌장에 서명한다. 헌장에 서명하면서

클린턴 대통령은 마더 테레사가 전세계 수백만 명의 고아와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생명과 사랑과 희망을 주었다고 말한다.

 

출처 : http://cgi.chol.com/~kimgm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