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농부들은 새벽 일찍 아침을 먹고 해질 무렵
저녁을 먹었다. 보리밥에 묽은 된장국, 나물 따위가 식사
내용이었다. 노동량이 많은 농번기에나 새참을 낮에 먹었다.
점심은 ‘마음(心)에 가볍게 점을 찍는다(點)’는
본뜻처럼 먹을 수도, 먹지 않을 수도 있는 가벼운
식사 또는 간식이었다.
하루 두 끼 식사는 왕이나 양반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의 왕들이 하루 다섯 번 먹었다지만,
정식 수라는 오전 10시경 아침 수라와 오후 5시경
저녁 수라 두 번이었다. 두 끼 식사는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일부에선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있게 된 건 보릿고개가
사라진 1970년대 이후라고 말한다.
유럽의 사정도 그리 낫지 않았다. 중세 농부들은 아침에 일어나
거의 먹지 않고 밭에 나가 대여섯 시간 일하다 오전 10~11시쯤
집에 돌아와 식사했다. 가장 풍성하게 먹은 게 이때였다.
그러곤 다시 일하다 오후 4~5시쯤 대충 먹고 일찍 잠을 청했다.
홍차에 과자나 샌드위치 따위 스낵을 곁들여 먹는
영국의 티타임(teatime)도 두 끼만 먹었기에 탄생했다.
아침과 저녁 사이에 허기를 참지 못한 베드포드(Bedford)
공작 부인이 1840년쯤 시작했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랍 문화권도 식사 시간은 비슷했다. 다만 과학이 발달했던
지역답게 인간에게 가장 이상적인 식사 시간을 연구했고,
그 결과 ‘2일3식’ 즉 이틀에 세 끼를 먹거나 16시간마다
조금씩 먹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고 주장하는 의학자들도 있었다.
하루 세 끼 식사가 보편화한 건 19세기부터였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식사 시간은 자연이 아닌 ‘공장’에
의해 규정되었다. 노동자들은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는
생활을 하게 됐다. 온종일 일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했다.
아침 일찍 식사하고 출근해 일하다가 점심을 간단히 먹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는 식사 시간이 정착됐다.
가장 여유 있는 저녁 식사가 자연스럽게
가장 중요해지고 풍성해졌다.
하루 세 끼 식사가 절대적으로 옳거나 이롭거나 지켜야 하는 건
아닌 듯하다. 미국 예일대의 음식 사학자 폴 프리드먼은
“인간이 반드시 하루 세 끼를 먹어야 할 생물학적 근거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1식’ 또는 ‘2식’이란 숫자에 집착하면 위험하다.
짧다 해도 수십 년 이상 하루 세 끼 식습관에 익숙해진 몸을
다이어트를 위해 갑자기 한 끼, 두 끼로 줄이면 폭식·과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번만 먹더라도 열량만 높고 영양이 고르지
못한 패스트푸드 따위를 먹는다면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
1일1식 유행의 주인공 나구모씨도 “소식(小食)하는 게
중요하지 하루 한 번만 먹으란 게 아니다”고 강조한다.
외할머니는 과식하는 손자에게
“모자란 듯싶게 먹으라”며 절제를 강조하셨다.
옛 어른들의 지혜는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