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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주요인물(主要人物)
13) 인 물(人 物)-[19]
ㅇ상익(祥翼 20世)
일 휘는(一諱)는 상상(祥翔)이며 자는 맹유(孟儒)이고 호는 자암(紫庵)이다.
공은 찰방공 최진호(崔振虎)의 7세 손이며 죽파공 최광남(崔光南)의 이들이다.
공은 총명함과 슬기가 남달라 6~7살에 벌써 글을 지을 줄 알았다. 성격 또한
증후하여 행동에 일정한 법도가 있었고, 말에도 절도가 있었으니 동년배들이
다 공경하고 복종하였다. 장성하여서는 조석으로 부모에게 문안 드리는 일
외에는 문을 닫아 걸고 부지런히 글 공부를 쉬지 않았고, 벗을 사귈 때에는
반드시 단정히 하여 비록 같은 마을에서 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망령되이
사귀지 않았다. 만년에는 작산(芍山) 아래에 집을 지어 연못을 파고 둑을 만들어
국화를 심어 놓고 “국담(菊潭)” 이라 이름 하였는데, 날마다 그 곳에서 시를
읊조리고 산책하며 유유 자작하였고 세상의 영리에 대해서는 담담하여 전혀
마음을 쓰지 않았다. 시를 지어 말 하기를 “ 텅 비고 적막함은 부처를 배우려
함이 아니요, 맑고 한가함은 어찌 신선을 배우려 함이 겠는가. 다만 내 심성을
수양하며 고요함 속에 남은 생을 보내려 한다네.“ 라 하였으니 대체로 공에게는
남들이 알수 없는 정취가 있어 학문을 연마하려는 선비들이 날마다 집에 가득
하였다.공은 향교에 양사재(養士齋)를 열고 도산서원의 역내에 흥학재(興學齋)를
세워 사물(四物)과 숙야(夙夜), 경재(敬齋) 등의 여러 잠(箴)을 사방 벽에
걸어놓고 날마다 학생들에게 자신을 돌아 보게 하였다.
매월 27일에는 여러 서생을 거느리고 이곳에 모여 토론하였는데, 모임이 있는
날에는 먼저 향음례(鄕飮禮)를 행하니 조금씩 한 고을에 떨치게 되었고 여러
차례 고을의 제사를 주관하였다. 본군의 수령인 강필로(姜必魯)가 감영(監營)에
보고 한 것은 대략⌌ 공은 집안에 있을 때에는 효성과 공경의 도를 다 하였고
고을에서는 공경과 근면한 행실을 다 하였다.⌍라 되어 있다.
영남의 수령 김노응(金魯應)이 항상 공을 칭찬할 때마다 “최공은 참으로 선비의
기상을 가지고 있다.“라 하였다. 이 처럼 공은 문학과 행의로 저명하였으며
효제경근(孝悌敬謹)을 천목으로 한 형시에 누차 입격(入格)하였고
초기 철성지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유집 두 권이 있다. (고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