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산수화가 이방운 화첩의 그림 현장을 찾아 떠나는 제천, 단양 여행...
가야 이방운(李昉運)이 그림을 그린 서화
'사군강산참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에 나온 풍경을 찾아
창조적 여행을 시작해 보자^^
네 개 군(郡)의 강과 산(江山),
그리고 세 신선의 고사가 얽힌 물과 돌...
1경- 구담봉
천하는 크게 아름다우나 서로 1등이라고 다투지 않는다!
저명한 조선후기 산수화가인 가야 이방운(李昉運)이 그림을 그린 서화첩
'사군강산참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은
제목 그대로는 '네 개 군(郡)의 강과 산(江山),
그리고 세 신선(參僊. 三仙과 같은 말)의 고사가 얽힌 물과 돌'이란 뜻이다.
자, 구담봉 사진과 200년 전에 그린 그림을 비교해 볼까요^^
이방운/구담(자료 출처:국민대박물관)
'사군강산참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의 사군,
즉 네 군은 충북 단양군과 제천군에 속하는
단양(丹陽)ㆍ청풍(淸風)ㆍ제천(堤川)ㆍ영춘(永春)이다.
제천 청풍문화단지에서 유람선을 타고 청풍호를 가르며
처음 본 것은 단양 장회나루 앞...
거북이를 닮았다는 구담봉이다.
유람선 도착지 단양의 장회나루...
주변 풍경들도 한 폭의 그림!
누가, 나의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지 않아도
이름없어도 "나는 비경이다!"
나는 여행이라는 스승을 통해,
삶에 대해 더 낮아질 것을 배운다.
엎드려 고개를 숙이면 더 많은 것이 보이는 것이다.
지독하게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 때는 언제나
더는 내가 나를 낮추고 있지 않을 때였고,
스스로 그 직립이 피로할 때였고,
피로함으로 인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 오소희의《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중에서 -
화첩기행, 테마여행을 방해한 건
유람선을 탈 때부터 울려퍼지던 유행가 가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청평호에서 무슨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노래하냐?
우리나라 관광지마다 뽕짝으로 시끄럽지 ㅉㅉ
이젠, 달라져야 한다.
지역 문화마케팅 담당자들과 전문가, 지역민이 나서 틈새시장을 공략
감동여행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찾고...구전홍보도 열심히 해준다!
아직, 가슴에는 거북 닮은 바위 하나 또아리를 틀고 나가지도 않고 남아 있지요...
너무 무겁다, 움직이기엔^^
단양팔경(丹陽八景) : 충청북도 단양군에 있는 여덟 곳의 명승지.
상선암(上仙巖), 중선암(中仙巖), 하선암(下仙巖), 구담봉(龜潭峯),
옥순봉(玉筍峯), 도담 삼봉(島潭三峯), 석문(石門), 사인암(舍人巖)을 이른다.
2경- 사인암
마음이 큰 그릇을 만든다, 천지가 창조력이다!
이방운 서화첩'사군강산참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은
국민대박물관(관장 박종기) 소장품이다.
지본담채(紙本淡彩)이며 크기는 32.5 ×26.0㎝.
발문 등에 의하면 이 서화첩은 '주문생산품'이다.
조선 순조 2년(1802) 가을,
청풍관아에 근무하던 부사(府使) 안숙(安叔)이
한가한 틈을 이용해 관내 명승들을 탐방하면서 느낀
감흥과 견문을 오칠언율시과 고체시 등으로 노래하고는 그
것들을 행서ㆍ해서ㆍ초서ㆍ예서ㆍ전서 등의 각기 다른 서체로 기록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한 안숙은
그 이듬해에 이방운에게 각 명승을 그림으로 그리도록 하고,
다시 이듬해 정월에는 그의 지기인 김양지(金養之)라는 사람에게 발문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시(詩)ㆍ서(書)ㆍ화(畵)가 삼위일체를 이룬
'사군강산삼선수석'이라는 서화 명첩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방운/사인암
계곡의 푸르고 영롱한 옥빛 물살이
수십, 수백 척의 기암절벽을 안고 휘도는 곳.
수려한 절경을 간직한 덕분에 운선구곡(雲仙九曲)이라는 이름을 얻은 그곳에
단양팔경의 제5경 사인암이 있다^^
사인암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 보았다.
사인암 옆에 그림처럼 자리잡은 청련암...^^
사군강선참선수석... 서화첩에서 언급한 4곳의 강산(명승)이란
도화동ㆍ수렴폭ㆍ한벽류ㆍ금병산ㆍ부용벽ㆍ도담ㆍ석문ㆍ구담ㆍ사인암ㆍ
북벽, 그리고 의림지를 말한다.
단양팔경 중 다섯 곳이 포함돼 있다.
삼선은 단양팔경에 속하는 하선암(下仙岩)ㆍ중선암(中仙岩)ㆍ상선암(上仙岩)을
말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현존 화첩에는 누락됐다.
한때, 술 소비량이 전국제일이라는 곳...녹색쉼표 단양!
이런 명품절경에 술맛이 절로 날 것 같으니 그러했겠지^^
사인암을 보며
추사 선생이 쓴 사야(史野) 글씨체를 떠올렸다.
'사야'란 논어에 나오는 군자의 모습으로 '세련됨과 싱싱함'이란 뜻...
당신이
명확한 주요 목표를 선택할 때,
주변의 친구나 친척들이 '공상가'라고 불러도 기죽을 필요가 없다.
인간의 모든 진보에서 선구자
역할을 한 사람은 모두 공상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꿈을 꾸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 말고,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그에 근거하여
꿈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 나폴레온 힐의《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중에서 -
사인암 정상에는 추사의 세한도의 소나무가 자라고 있더군요^^
사인담 주변 풍경도 절경이 수두룩하다^^
3경- 도담삼봉
우중충한 날씨, 도담삼봉은 나에게 웃지 않았다.
어쩔거나?
저 아파트가 눈에 또 밟힌다.
제천에서는, 열정적인 문화관광 담당 공무원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지역과 차별화시켜
유아독존은 아니더라도...
나날이 홀로 독야청청하는 문화마케팅이 필요하다.
그 지역을 찾지않으면 볼 수 없는 '유일무이'가 답이다!
그 성공 키워드는 지역의 역사성, 정체성과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스토리, 문화예술, 디자인 등을 활용한 창조성 아닐까?
퀄리티, 디테일, 휴머니즘 등도 양념으로 치면
지역의 문화관광 식탁은 풍성해 질 것인데...
글로벌 경쟁력도 갖추고^^
이방운/도담
화첩기행이 '도담삼봉 + 아파트'가 조합된 풍경에 놀라
잠시 삐딱선을 탓지만...
그대가 사는 그 곳이 천하제일 금수강산임을 알고
'자연환경 지킴이'가 되어 주시길^^
풍류남아...화첩 그림처럼
빠른 요트가 아니라
느릿느릿 노젖는 배를 타고
강물 위를 노닐고 싶지만
그런 배도 없고, 시간도 없고^^
다리를 보다가...문득,
백년도 못 사는 인간들이
천년, 만년이 만든 자연의 예술품에
이런 낙서나 하다니!
만대를 생각하고,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고 물려줄 문화정책!
"크게 포기하면 크게 얻는다"
캘커타 초링기 지역에서 만난 한 거지는
내가 몇 푼을 줄까 망설이자 그렇게 충고했다.
- 류시화의《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중에서 -
도담삼봉 옆 등산로를 걸어올라가면 나오는 석문...
단양8경 중 하나인 석문에서 바라본 풍경...
단양팔경 중 제4경인 사인암과 5경인 구담봉,
6경인 옥순봉 아래 부용벽, 7경인 도담삼봉, 8경인 석문의 풍광 또한
이방운 서화첩에 생생하게 담겨 있어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 볼 수 있었다^^
장군봉은 푸른 갑옷을 걸치셨군요?
개국공신의 개혁정치,
정도전의 꿈은 피빛으로 절명했는데...
단양 도담삼봉(丹陽 島潭三峰): 절경이 특이하고 아름다워 단양팔경 중 으뜸으로
손꼽히며 단양군수를 지낸 이황을 비롯하여 황준량, 홍이상, 김정희, 김홍도, 이방운 등이
많은 시와 그림을 남긴 곳이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개국공신인 정도전 탄생에 관련한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데 정도전은 자신을 삼봉이라 자호할 정도로 이곳을 사랑했다고 전한다.
도담삼봉은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원추 모양의 봉우리로 남한강이 휘돌아
이룬 깊은 못에 크고 높은 장군봉을 중심으로 세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그 형상이
기이하고 아름다우며 남한강과 어우러져 뛰어난 절경을 보여주고 있다.
4경- 의림지
창조적으로 혁신하라! 그럼 꿈을 이룰 것이다!
청풍명월의 본향, 충북 제천의 의림지(義林池)는
그 역사가 적어도 천년 이상을 헤아리는 유서 깊은 인공 저수지이면서
주변과 어우러진 훌륭한 명승지이다.
이런 면모는 200년 전에도 여전해
이 일대는 시인묵객이라면 빠뜨릴 수 없는 대표적 팔도유람지로 지목됐다.
이방운/의림지
가족의 행복한 모습이 포착되는 순간...
고구려 유리왕의 '황조가'가 퍼득 스쳤다 ㅎㅎ
"펄펄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
외로와라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국민대박물관 박종기 박물관장은
서화첩 수록 그림 중에서도
의림지를 주목할 것을 요구했다.
200년 전 화폭에 담긴 그 모습이 현재에 이르러서도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는 것이다.
아쉬운 것 몰입할 수 없는 풍경...
전봇대, 현대적 건물 등 1000년 전의 의림지로 여행하기에는
'몰입'이 안되는 점.
전봇대 만이라도 지중화 작업하고,
경북 경주처럼 주변 가게들... 한옥으로 짓게하면 안되나?
의림지는 현재, 수리시설보다는 유원지로서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는데
경승지로 호수 주변에 순조 7년(1807)에 새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
그리고 수백년을 자란 소나무와 수양버들,
30m의 자연폭포 등이 어우러져 풍치를 더하고 있습니다.
특히, 겨울철 및 해빙기에 잡히는 공어(빙어)는
담백한 맛의 회어로 각광받고 있는 명물이며,
순채는 임금의 수라상에 올릴만큼 유명했단다.
200년 전, 화첩 속의 소나무는 지금 이 노송이겠지^^
의림지(義林池): 원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저수지로 본래의 이름은 임지(林池)였다.
고려 성종 11년(992)에 군현의 명칭을 바꿀 때 제천을 의원현(義原縣) 또는 의천(義川)이라
불렀는데, 그 이유로 저수지의 이름에 ‘의(義)’자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 때의 음악가인 우륵이 만들었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으며,
또 다른 이야기로는 현감인 박의림이 만들었다고도 한다. 문헌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에 충청도관찰사인 정인지가 고쳐짓고,
다시 세조 3년(1457) 체찰사가 된 정인지가 크게 보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뒤 1910년부터 5년간에
걸쳐 3만여명이 참가하여 보수하였고, 1972년 대홍수로 서쪽 둑이 무너져 이듬해에 보수
하였다. 저수지의 둘레는 약 1.8㎞, 면적은 158,677㎡, 수심은 8∼13m이며, 주위에는
순조 7년(1807)에 세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세워진 경호루가 있다. 제천의 의림지는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원삼국시대의 수리시설로서,
당시의 농업기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상상력과 예술적 지성의 만남이 필요한 대한민국 지역마케팅...^^
멋진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술적 지성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예술적 지성이란 현실과 상상력 사이의 점들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상상력은 가능성을 파악하고,
지성은 그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가공한다.
- 스탠 데이비스의《예술가처럼 일하라》중에서 -
우륵대 주변 풍경^^
충주 탄금대처럼 의림지에도 우륵 선생의 설화가 전한다.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분이며 가야금의 대가인 우륵 선생이
노후에 여생을 보낸 곳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가야금을 타던 바위 우륵대(일명 제비바위, 연암, 용바위)와
샘물을 마시던 '우륵정(于勒井)'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