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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참사 현장을 가다] "10만명 사망"… 통곡의 아이티 '행정 붕괴'

by joolychoi 2010. 1. 15.

 

도로·통신 등 기능 마비 "지옥의 땅 벗어나자"
도미니카로 탈출 행렬 한국인 70명 모두 안전

포르토프랭스에서 도미니카로 국경을 넘는 길은 '아이티 엑소더스'의 행렬이었다. '지옥'을 벗어나는 사람들은 얼이 빠져 있었다. 선두에 선 도미니카 현지인 차량은 앞이 막히면 뒷길로 돌았다. 재주를 부린 덕에 2시간 반 만에 국경을 통과했다.

현대중공업 자회사 데코의 강돈일(49) 상무. 아이티 발전소건설에 토목공사를 맡고 있던 그는 아이티 지진이 휩쓸고 간 포르토프랭스에서 '지옥의 24시간'을 보냈다. 꼬박 하루 만에 아이티를 육로로 탈출해 13일 오후 도미니카로 빠져나왔다.

아이티·도미니카 국경 근처에서 일본기자들이 일본사람인 줄 알고 그를 붙잡고 물었다. 그도 나중에 알았다. 아이티는 모든 통신·교통이 사실상 두절되고 행정도 공백상태였다.

13일까지 종적이 묘연했던 르네 프레발(Preval) 대통령은 14일 수도 포르토프랭스 국제공항에 레오넬 페르난데스 도미니카공화국 대통령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지진과 빵.’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임시 수용소에서 14일 한 어린이가 눈물범벅이 된 채 어른 품에 안겨 있다. 지진에서 살아남은 이 어린이는 먹던 빵을 놓치지 않고 있다. 12일 발생한 강진으로 폐허가 된 포르토프랭스 거리는 이재민과 부상자들로 넘쳐나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레발 대통령은 "이미 집단 매장지에 7000명의 시신을 묻었다”고 했지만, 정확한 사망자 집계는 되지 않고 있다. 이에 앞서 장-막스 벨리브(Bellerive) 총리는 "사망자 수가 10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추정했고, CNN도 '10만'으로 보도했다. 유리 라토르튀(Latortue) 상원의원은 AP에 "50만명이 숨졌을 수 있다"는 말도 했다.

도미니카 군인들은 국경에서 아이티인이 도미니카로 넘어오는 것을 막았다. 오후 3시 반. 천신만고 끝에 강 상무는 마침내 산토도밍고 땅을 밟았다. 호텔에 도착한 그는 아직 충격을 벗지 못하고 있었다. 구정물을 먹는 빈곤의 땅, 지진이 휩쓸어버린 땅을 빠져나왔다는 게 실감이 안 났다. 한 직원은 "저주받은 땅"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현지 교민 및 체류 한국인 70명은 모두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이티에서 발전소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한국인 17명도 산토도밍고로 모두 철수했다. 유엔은 피해가 컸다. 중남미 최빈국인 아이티는 유엔원조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에 상주 인력이 많았다. 지금까지 사망 16명, 부상 56명, 실종 150여명이다.

강 상무는 끔찍했던 이틀 전 지진 순간의 악몽에 대해 가까스로 입을 뗐다. 지난 12일 오후 4시 20분. 갑자기 책상이 바닥에서 튀어 가슴 높이로 올라왔다. 거대한 굉음을 내는 지진은 마치 전쟁의 개시 같았다. 도면을 놓고 상의하던 프랑스인도 깜짝 놀랐다. 담으로 둘러친 블록 벽이 무너져 컨테이너사무실 한쪽 면을 덮쳤다. 밖으로 나와 보니 사람들이 중심을 잃고 모두 쓰러졌다. 산 중턱에서 내려오다 이를 목격한 직원은 갑자기 모든 사람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길이 마치 파도를 치는 것처럼 좌우로 흔들리며 몰려왔다.

오후 4시 55분. 직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포르토프랭스 북서쪽 카르푸에 있던 직원은 산이 갈라졌다고 말했고, 도심 쪽에 있던 직원은 포르토프랭스의 계곡이 무너진 산으로 메워졌다고 전했다. 아이티는 산꼭대기로 올라갈수록 부자동네이고, 안전하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산 중턱에 있는 한 직원의 집에 모두 모이기로 했다.

약탈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14일 한 주민이 지진으로 파괴된 수퍼마켓에서 약탈한 식품을 머리에 이고 황급히 이동하고 있다./로이터 뉴시스

지진은 꼭대기부터 무너뜨렸지만, 산기슭 빈민들의 고통은 컸다. 빈민촌인 시티솔레이를 차로 지났다. 치안 부재라 가까이 갈 수 없는 이곳을 멀리 돌아가는데 땅이 다시 흔들렸다. 여진(餘震)이다. 시티솔레이에서 철새 울음이 들렸다. 사람이 내는 소리였다. 땅이 흔들릴 때마다 빈민촌에서는 절규하는 철새 울음이 퍼졌고, 먼지는 구름이 되어 도시를 덮었다.

오후 9시쯤. 17명의 직원이 한 집에 모였다. 어떻게 이 도시를 빠져나갈지 머리를 맞댔고, 궁리는 날짜를 넘겨 다음 날 새벽 3시까지 계속됐다. 침대에 누웠는데 자꾸만 바닥이 흔들렸다. 아이티인들은 집에 못 들어갔다. 지붕이 무너질 염려가 없는 길바닥에서 밤을 보냈다.

13일 오전 11시 반. 도미니카로 빠져나가기에 위치가 좋은 직원의 집으로 다시 헤쳐모였다. 차량 5대가 모이는데 애를 먹었다. 주유소마다 차량들로 바글댔다. 벌써 기름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기름을 채우는데만 1시간이 걸렸다.

아이티에서 외국인이 걸어 다니는 것은 자살행위다. 돈을 노리는 아이티인은 총으로 무장되어 있다. 짙은 선팅을 한 자동차를 타야 그나마 조금 낫다. 창문 너머로 집들은 무너지고, 병원 앞에는 수백m씩 시체가 쌓였다. 다시 산토도밍고. 아이티 카르푸의 공장에는 아직 기름이 남아 있다는 게 생각났다. 약탈당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역사 뒤집었던 '탕산 대지진'을 파헤치다
[핫이슈] 아이티 7.0 강진 대참사 "전쟁보다 참혹"

 

아이티 대지진, 발생 순간 화면
중앙아메리카 아이티에서 12일 오후(현지시각) 200여년만에 최악의 강진이 발생, 대통령궁을 비롯해 정부기관 건물과 의회, 병원, 가옥이 붕괴되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

인명피해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무너진 건물더미에 상당수의 사상자가 묻혀 있으며 최대 수천명이 매몰돼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