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유파동 직후 대통령은 "수영장에 물을 넣고
하면 돈도 많이드는데 마루를 깔고 배드민턴이나
치도록하자"고 지시해 실내 수영장이 실내
배드민턴 경기장으로 바뀌었다.
환갑을 넘긴 대통령과 배드민턴을 치고 나면
젊은 이 부관도 땀으로 온몸울 적셔야 했다.
이날 대통령은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 행사에
참석 하기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
이 부관은 박 대통령의 양복과 구두를 챙기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2층 거실의 대통령으로부터
인터폰이 울렸다."예, 이광형 입니다" "어제 입었던
그 양복하고 구두, 그거 가져오게." 예 알겠습니다.
"어제 입엇던 양복과 구두"란 허리단을 수선한
곤색 양복과 금강제화에서 맞춘 검정색 구두를
말한다.
한해 전 코 수술을 받은 직후부터 담배를 끊었던
대통령은 몸무게가 60Kg에서 3~4Kg쯤 불었다.
농촌을 방문해 낫들고 모내기 하던 박 대통령
1층 집무실로 출근할 때 자신이 전날 입엇던 양복바지를
든 채 내려온 적도 있었다.대통령은 부관에게 바지를
뒤집어 허리 뒷단을 보여주며 손가락으로 정확히 폭을
재 보이고는"여기 요만큼만 더 늘려주게"라고 했다.
부속실 직원들은 을지로 2가에 있던 "세기 영복점"으로
옷을 보내어 고쳐 오도록 했다.
그날, 대통령의 마지막 양복을 준비했던 이광형은
"바지는 수선해서 입고 구두 뒤축을 갈아 신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이 부관은 평소보다 십여 분 늦게 양복과 구두를 들고
2층 거실로 올라갔다.그때까지 대통령은 거울 앞에서
하얀 와이셔츠에 자주색 넥타이를 맨 차림으로 기다리고
있었다.하체는 반바지 모양의 팬티 차림 그대로였다.
대통령은 이 부관이 들어서자 "어,어, 이리 가져와
"하며 반겼다. 농촌 시찰이 있는 날이면 대통령은
소풍가는 소년처럼 들떠 있곤 했다.
이날도 늦게 올라온 양복을 받아 입으며 연신 어깨를
들썩이면서 알수없는 콧노래를 흥얼 흥얼했다.
권력이란 갑옷을 걸치기 직전 박정희朴正熙 이라는
한 인간의 내면을 엿보게 하는 것은 고독(孤獨),
무인(武人),절약(節約)의 상징물인 효자손, 카빈
그리고 변기 속의 벽돌이었다. 2층 거실과 1층집무실
변기에 벽돌들...그는 양복을 입음으로서 이같은
자신의 내면을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도록 감싸 버렸다.
* 위글은 월간조선 대표이사였던 기자 조갑제씨의
"朴正熙의 마지막 하루"란 책의 머리말에서 발췌했다.*
여름 어느날 박전 대통령이 낮에 점심시간을 이용해
이발을 하면서 상의와 와이셔츠 를 벗고
이발의자에 앉았는데, 이발사의 눈에 런닝셔츠에
구멍뚤린것이 들어왔다.
순간,이발사는 눈이 붉어지며 목이 메였다.
한나라의 최고권력자로서 너무소박하고 검소한
그모습에 감동하였기 때문이다.
잠시후 이발사는 화제를바꿔 오래되어 늘어지고
구멍이 헐거워진 낡은 혁대를 새것으로 바꾸시는게
어떠시냐고 넌지시 여쭤보았다.
박전 대통령은 빙그시 웃으며 임자,앞으로 십년은
더찰수 있는데 왜 바꾸나 절약해야지 했다.
그때만해도 조그만 사무실 을 개조한 이발소라
온수공급이 안되어 내실에서 물을끓여 양동이
두개로 날라서 썼는데 육여사가 직접운반 했으며,
머리감기는것도 육여사의 몫이었다.
하루는 순옥이라는 이발소여직원의 시집갈날을
알게됐다. 며칠이지나 그녀가 청와대근무를 그만둘
날이 오자 이발소로 전화가왔다.
이승만 대통령시절 지은 진해별장(확실한지 ???)
이 너무낡아 여름휴가 전에 박실장과 정회장이
의논해서 다시 개조해 놓았고 박전 대통령의
가족이 휴가가 시작돼 진해로 내려와
별장이 아닌곳에서 하루를 묵게되었고,
조바심이난 박실장은 별장개조건 을 말씀드렸다
대노한 박대통령이 당장 짐을싸 서울로
돌아가자고 흥분하며 왜 너희들 멋대로 일을
처리하느냐며 야단쳤다.
그때 연락을받고 정회장이 들어와 한시간을 얘기한
끝에 화가 풀렸다고한다.
나라돈을 사사로운 개인을 위해서 쓰는것에는
엄격했다는 박전 대통령 이었다.
지난해 3월 22일 내방에 올렸던 목련꽃을 닮앗던
그분이 그리워 *** 중에서 발췌.
박대통령이 경부 고속도로 공정 점검차 헬기를
타고 지방으로 향하던중 엔진고장으로 수원의
밭에 불시착을 하지요.
헬기가 노후해 부속이 낡았기 때문이지요.
측근들이 새로운 헬기 도입을 수차 권하였으나
달러를 쓸수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 합니다.
그리고, 그는 찝차를 타고다니며 민정시찰을
했습니다. 십여년이 넘도록 서너대의 찝차만을...
1964년엔가 독일 방문을 했을때 한국 교민인
광부와 간호사들 앞에서 울고 말지요.
가난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그들의 고생에 목이
메였기 때문에... 미처 말도 다 끝내지 못하고서...
돌아오는 승용차 안에서 그가 또울자 독일의
뤼브케 대통령이 자신의 손수건을 건네며
위로하고...
파월 장병을 월남에 보내놓고 밤새 담배를 피웠던
박전 대통령 이었습니다...
독일과 월남에서 벌어들인 달러로 이 나라의 경제
개발은 힘을 받아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지요...
해진 혁대.
궁정동에서 총상을 입고 국군 서울지구병원으로
달리는 차안에서 김계원 비서실장이 안고 있는
중에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김 실장은 그 사실도 모르고 빨리가자고 외치고만
있었다.
두 정보부 경비원 유성옥과 서영준은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 권총을 일부러 보이면서 둘러선 군의관과
위생병들에게 "꼭 살려야 해요" 라고 위협조로
말했다.
정규형 대위는 이우철 일병에게 심장 마사지를
하라고 지시했다,
이 일병은 환자의 가슴 위로 올라가 두 손을
포갠뒤에 왼쪽 가슴을 몇차례 강하게 눌렀다.
동시에 정 대위는 수동식 인공호흡기 "암부"를 환자의
입과 코에 덮어씌워놓고 공기주머니를 눌러 공기를
허파로 밀어 보냈다.
정 대위는 심장을 자극하여 박동 시키는 강심제
에피네프린 20cc를 가슴에 주사했다.
심장 마사지도 다시했다.
한 20분간 응급소생법을 실시했으나 결과는
회생불능이었다.
말년에 근혜씨 근영씨 두딸과 청와대에서
정대위는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라고 했다.
곁에 버티고 있는 두 감시자에게 송계용 소령은
"돌아 가셨습니다. 라고 이야기했다.
"이 사람이 누구십니까?" 송 소령의 물음에
두 감시자는 대답이 없었다.
며칠 뒤 군의관 정규형 대위는 합수부(合搜部)에서
조사를 받을 때 "얼굴을 보고도 왜 각하인 줄
몰랐는가"란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했다. "병원에 들어왔을 때는 얼굴에
피가 묻어 있었고 감시자들이 응급처치 중에도
자꾸 수건으로 얼굴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시계가 평범한 세이코였고 넥타이핀의
멕기가 벗겨져 있었으며 혁대도 해져 있었습니다.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약간있어 50여 세로
보았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각하라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던 것 입니다."
盧대통령 내외용 옷걸이 132만원
[조선일보 2006-03-29 11:31]
김희정의원 밝혀… 청와대 “정상회담 위한 외빈용”
[조선일보 권대열기자] 청와대와 국회의장실 등이
현 정부 출범 후 관저, 공관을 수리하거나 가구·
집기를 바꾼 내용이 밝혀졌다.
청와대 등이 한나라당 김희정(金姬廷) 의원에게
28일 제출한 자료에서 확인됐다.
자료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 내외용으로
지름 34㎝ 길이 165㎝의 132만원짜리 옷걸이를
2003년 11월에 산 것을 포함, 옷걸이 5개를
총 418만원에 샀다.
2003년 이후 청와대가 대통령 내외가 사는
관저용 집기 구입에 쓴 비용은 총 5060만원이다.
청와대는 또 2003년 1346만원을 들여 거실용
응접 의자·탁자 세트를,2004년 7월에 추가로 527만원
짜리 거실용 의자 세트를 산 것으로 돼 있다.
수영장 수리와 도배·보일러 공사 등 관저를
수리하거나 고치는 데 들어간 공사비는
2003년 이후 총 6억3148만원으로 집계됐다.
청와대측은 132만원짜리 옷걸이와 관련, “각종
정상회담 등에 사용하는 외빈용이고 개인용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쓰는 ‘행거형’”이라고
해명했다.
김원기 국회의장은 한남동 의장 공관 수리비로
2년간 1억6443만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장의 전임자들인 박준규(3907만원),
이만섭(6166만원), 박관용(5421만원)
전 의장 때 사용한 액수도 이번 자료에서
함께 드러났다.
(권대열기자 [ dykwon.chosun.com])
지금 노무현씨는 멀쩡한 전용헬기를 놔두고
1200억원 이란 막대한 국민의 혈세를 쏟아부어
한대에 400억가는 헬기를 3대나 도입 합니다.
부자 나라이며 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부시
전용헬기도 10년이 넘었지만 운항을 하고있는데요.
최고급 독일제 BMW 승용차를 5대씩이나
들여오고. 대통령 임기가 고작 5년인데도...
그동안도 무능하고 쓸데없는 일에 치우쳐 민생과
경제를 팽겨치고 모든일에 대해서 강건너 불보듯
하고 있는 그는 도대체 어느나라 사람이며
어느나라 대통령인지요.
빨리 임기나 끝났으면 좋으련만 왜 그렇게 긴지...
한번 잘못 선택한 사람 때문에 온 나라가
흔들거리고 정신을 차릴수가 없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서거한지 27년이나 된분에게 싸움을 걸고, 결국은
죽은사람에게 지고만 노정권과 그 수하들이 안스럽네요.!
내가 그동안 박 대통령에 관한책을 읽은것만도
대략 20권이 되는데 현재 나와있는 책들까지는
참 많지요.그 많은 내용을 어떻게 다 올리겠습니까.
지금 서너장 올려도 이렇게 길어지는데 말입니다.!
이미, 레임덕은 시작되었고 5월의 선거와 내년의
각당 대통령후보 경선. 후년에 대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제발 노무현씨는 더이상 깜짝쑈를 멈추고
퇴임 할때까지 조용히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1962년에 미국을 방문해 케네디를 만나던
박정희 국가 최고회의 의장
대통령의 장부.
박 대통령 부속실에서는 세가지 장부를 유지하고
있었다. "가족장부"는 대통령을 제외한 두 딸과
한 아들의 잡비 씀씀이를 다룬 것이었다.
1979년 10월에는 27만 9,388원이 지출됐다.
2층 내실 담당 가정부 미스 원에게 10만 원,
신당동의 대통령 사저를 관리하고 있던 박환영
비서관과 아주머니에게 월급 이외의 보조비로
2만원씩, 선물인 듯한 동양란 구입비 3만 2,000원,
지만志晩생도의 콘텍트렌즈 구입비 5만원, 세탁비 2만여 원
등이었다.
본관에는 식당이 있었다. 본관 근무자와 대통령
가족이 식사하는 곳이었다.
저녁에 대통령이 주관하는 수석비서관 회식,
특별보좌관 회식도 여기서 했다.
이 식당의 식료품 구입비는 1979년 8월에
80만 8,765원이었다.
박 대통령의 개인지출을 기록한 장부에 따르면
그는 1979년에 약 70만원을 양복, 허리띠,구두구입비로
썼다.
10월 3일에 구두 세켤레 11만 2,200원,
8월 5일에 흰색 반바지 두벌 3만원, 허리띠(반바지용)
2만원. 5월 28일에 잠옷 네벌 2만원.....
박 대통령 개인 잡비는 대통령 이름으로 된
통장에서 빼쓰고 입금해 두기도 했다.
1979년 초에 9만 9,830원이 전년도에서 이월?
다가 10월 26일 현재 9만 7,330원이
잔고로 남아 있었다.
이렇게 절약에 절약을 거듭하며 검소한
생활을 했던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 이었다....
지금 노씨의 부인 권씨는 강남의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의 옷(한벌당 기백만원)을
한번에 서너벌씩 구입해입는다한다.
남편의 봉급에서, 아니면 증권에 투자해
번돈으로.???
설마 판공비로 쓰지는 않기를 바랄뿐...
지금도 석연치 않게 규명이 제대로 안되는
서너건의 게이트 사건들..
제발 퇴임해서 법의 심판없이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기를 나 개인적으론
바란다.
어찌 될지는 시간이 흘러야 알게되겠지만.
지금도 늦지않았다.
박 대통령이 서거했어도 전, 노, 김대중,
김영삼, 전대통령과 현직인 노무현씨 보다도
압도적인 차이로 인기순위 1위를 몇년째 고수하고
있슴은, 국민들의 평가가 제대로 올바르게 내려졌
다는 것을 의미 하지요.
그는 개인적인 사심없이 애민, 애족, 애국
하였던 청렴했던 진정한 이땅의 단 한사람의
지도자 였습니다.
1968년도에 외대에 특강을 하러온
육 여사가 방명록에 사인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