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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서글픈 인어공주여

by joolychoi 2008. 10. 6.
그대, 서글픈 인어공주여
김은아  종이등불 님의 블로그 더보기
입력 : 2008.10.06 05:13

단언하건대, 쉰 두 해를 살고 있는 동안

여자가 긴 시간을 몰아의 경지에서 몰두할 수 있는 작업은

섹스와 글쓰는 일밖에 없었다.

어떤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던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흡반처럼 빨아들이는 소용돌이의 심연에 존재하는

깊고, 뜨거우며, 고통스러우면서도 황홀한 늪.

 

섹스와 글쓰는 작업은 늘 고통을 동반한 노동이었음에도

그 고통은 황홀한 희열로 치환되었다.

섹스는 모든 고통의 작은 부스러기까지도 매순간마다 그대로 황홀감으로 즉각 치환되는

반면,글쓰는 작업은 연금술사가 금을 뽑아내는 것보다도 적은 분량으로

황홀감의 정액을 걸러내었을 뿐, 나머지는 고통의 거칠고 투박한 불순물로 출렁거렸다.

 

그게 화산이 폭발하여 용암이 흘러넘치듯 범람하는 황홀감이든

손가락 끝에 묻어 나올 정도로 안감힘 쓰면서 뽑아낸 희열이든

어떤 소용돌이의 심연에 존재하는 늪을 만나기 위해

여자가 긴 시간 동안 몰아의 경지에서 몰두할 수 있는 작업은 섹스와 글쓰기밖에 없었다.

적어도 <춤>이란 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까지는.

 

탱고7.JPG

 

그곳은 깊은 바닷속이다.

심해의 바닷물은 노오랗게 휘돌다가 초록이나 남빛으로 출렁이기도 하고,

붉게 소용돌이치기도 한다.

그 네온의 물결 속을 헤엄치면서 초로의 혹은 잔뜩 늙어버린 남자와 여자들이 춤을 춘다.

그들의 다리가 아무리 노인성 관절염을 지독하게 앓고 있다고 해도

물고기의 꼬리지느러미처럼 음악의 물살을 헤치면서 매끄럽게 유영한다.  

 

여자는 요즘 여유시간이 생기면 <성인 콜라텍>으로 가서 춤을 춘다.

지난 겨울부터 여자가 스포츠댄스를 배우는 학원으로 가기 위해 3층 계단을 오를 때마다

그 건물의 2층에 있는 <성인 콜라텍>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알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여자가  처음으로 그곳의 문을 열기 10 여 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여자가 댄스를 배우고 내려올 때면 적당히 늙은 남자와 여자들이 드나들던 그곳.

그 문을 열던 사람들 중에서 20대 청년과 아가씨는 고사하고 30대의 사람들도 거의 본 적이

없기에 문 앞에 붙은 <성인 콜라텍>이라는 패찰을 볼 때마다

여자는 <성인>이란 노년층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여자의 가족들은 여자가 그곳에서 낯선 남자들의 손을 잡거나

품에 안겨서 춤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여자는 주로 지터벅(지르박)과 트롯, 그리고 블루스를 춘다.

가끔 탱고와 왈츠를 추기도 한다.

음악은 지르박, 트롯, 다시 지르박 그리고 블루스의 차례로

업소의 영업시간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단 1초도 끊기지 않고 반복된다.

지터벅과 블루스가 흘러야 할 순서에 탱고와 왈츠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때 파트너가 운좋게도 탱고나 왈츠를 출줄 알면 여자는 오랜만에 먹는 맛있는 간식처럼

탱고나 왈츠를 추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트롯과 블루스의 모든 스텝은 탱고와 왈츠 스텝과 혼합되어 있기에

여자는 춤을 출 때마다 어떤 스텝이 그들 본연의 스텝인지 분명하게 구별할 수도 없다.

그저 파트너가 리드하는 대로 따라 갈 뿐이다.

지르박 음악에 맞추어 자이브를 춰도 좋겠지만 자이브를 추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자는 블루스와 왈츠를 가장 좋아한다.

블루스를 출 때면 한 때 긴 세월 잊지 못했던 옛 사랑을,

혹은 오랫동안 가슴에 담고 있던 이를 만난 것처럼 간절해진다.

왈츠를 출 때면 옛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속의 무도회에 참석한 기분이다.

탱고와 트롯은 여자를 스페인의 짚시로 만들어 준다.

여자는 플라멩고도 몹시 배우고 싶었지만 강사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쩌면 강사가 플라멩고를 출줄 몰랐던 것은 아닐까?

<신경질적인 벌레>라는 이름처럼 빠르고 경쾌한 음률과 동작을 가진 지르박은

너무 경박한 것 같아서 여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무척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다.

 

탱고5.JPG

 

"나 같은 늙은이도 춤을 배울 수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

대학교수의 부인 선영은 남편의 제자 춘호에게 물었다.

선영과 손춘호의 시대만 해도 상류층의 부유하고, 젊은 지식인들의 문화였던

일명 사교댄스(Social Dance)는

흔히 제비족과 유한마담이라 불리는,

젊고 반반하게 생겼으나 적당한 직업이 없는 젊은이들과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시간의 여유가 많은 가정주부들의 문화로 바뀌었다가

50여년이 흐른 지금, 거의 서민층의 노년문화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곳을 드나드는 남자들은 거의 대부분 퇴직한 공무원을 비롯하여

직업이 없거나 직업이 있다고 해도 개인택시 기사 정도다.

중산층 이상의 남자들은 골프나 테니스를 즐긴다.

 

여자는 자신이 스포츠 댄스를 배울 때까지만 해도  

쇼셜댄스란 것을 발정난 암코양이처럼 바람나기 직전의 여인들과

그 여인들의 지갑을 노리는 젊은 사내들이 추는 타락한 춤일 것으로만 생각했다.

여자가 너무나 배우고 싶었던 블루스와 탱고와 왈츠.

그것들이 여자가 사교댄스라는, 타락하거나 타락하기 일보 직전의 남녀가 뒤엉킨 듯이

부등켜안고 추는 춤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한심한 춤이란 것을 알고 의아했다.

  

대학교수 부인 오선영이 춤바람이 나서 불륜 직전까지 이르는 내용을 담은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은 1954년 1월 1일부터 8월 29일까지 <서울신문>에 연재

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의 인기는 대단해서 연재 기간 동안 <서울신문>은 가두에서만

5만 부가 더 팔렸고, 단행본 상편(上篇)을 서둘러 출판한 정음사는 10만 부 이상을

팔았다고 하니당시의 인구로 볼 때 얼마나 화제가 되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자유부인>이 화제가 된 데에는 소설을 둘러싼 논쟁과 논란도 큰 역할을 했다.

연재를 시작하고 3 개월 후에 서울대 법대 교수 황산덕은

교수를 모독하고 성욕을 부추긴다고 비난했으며,

작가 정비석은 황교수의 문학에 대한 무지를 지적하면서 창작의 자유를 내세워 반론을

펼쳤다고 한다. 그 논란 이후 많은 세월이 흘러 정비석은 

"어떤 여성단체에서는 '여성 모독죄'로 시경에 고소장을 내는 바람에 시경에도 불려

다녀야 했고 치안국에서는 남한의 부패상을 소설로 폭로하여 공산도배들에게 이적행위를

한다는 이유로 나를 치안국에 연행해다가 취조까지 했다."고 회고했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정비석의 자유부인을 비난했던 황산덕 교수는 10년 후에

"그간 우리 사회는 정비석씨가 예측했던 것보다 빨리 부패하고 말았으므로,

닭 쫓던 개 모양으로 정씨와 나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 '신동아' 1965년

8월호에서 후일담을 남겼다고 한다.

내가 사실을 확인하진 않았지만

황교수가 <자유부인>을 읽지도 않고 그렇게 비난했다니 더 재미있다.

 

두 교수가 예측했던 것보다 빨리 부패했던 사회에는

온 나라의 시장골목 마다 댄스홀(무도장)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가정주부들의 <춤바람>은 불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가정을 파탄시키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 여자들에게서 성을 미끼로 경제적 착취를 하던 남자들에게 <제비족>이라는 신조어가

붙으면서 우리 사회는 <사교댄스>를 올바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무허가 업소에서 춤을 추던 사람들이 구속되는 기사는 자주 신문의 지면을 차지했다.

 

탱고6.JPG

 

춤바람 난 오선영의 시대에서 50년이 흐른 지금.

성인콜라텍으로 이름이 바뀐 과거의 댄스홀에서

이미 오래 전에 젊음과 함께 할 일을 잃어버린 남자들이 오로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리고 운동 삼아 춤을 춘다.

그들은 입장료로 남자 2,000원 여자 3,000 원만 지불하면

낮 1시부터 5시, 그리고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낮에 입장료를 내면 저녁을 먹고 다시 왔을 때는 무료다.

 

제비가 무도장에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여인들을 상대로 하는 룸싸롱이나 고급레스토랑과 호텔바로 가지나 않았을까?

 

<행복한 왕자>의 제비는 지난 여름, 강가의 갈대와 사랑에 빠졌기에

그 사랑과 헤어지기 힘들어서 친구들이 모두 강남으로 떠난 후에도

하루, 하루를 미루면서 홀로 남아있었다.

이곳 <콜라텍>에도 사랑에 빠지지 못할 정도로 늙고 지친 제비 몇 마리.

떠날 곳을 찾지 못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을 아닐까?

여자는 가끔, 심해의 물고기가 유영하듯 화려한 불빛의 물결을 누비면서 춤을 추는

초로의 혹은 충분히 늙어버린 남자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하곤 한다.

 

지터벅을 추면서 돌 때마다 꽃잎처럼 화려하게 펼쳐지는

촌스럽게 화려한 드레스를 걸치고 자신보다 늙어버린 남자들의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초로의 혹은 충분히 늙어버린 여자들을 바라보면서

여자는 늘 서글프게 웃는다.

몸매를 관리하지 않았기에 가슴과 허리와 배를 흐르는 곡선이 마모되어

굴곡이 없는 육체를 최대한 요염하게 움직이면서 춤을 추는 여자들.

 

인어공주는 사랑하는 왕자님의 곁으로 가기 위해 목소리를 내어주고 다리를 얻었다.

걸을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이 고통이 엄습해 왔는데 춤을 출 때의 고통은 더욱 날카로

웠다. 그 고통 속에서도 왕자님과 춤을 추는 시간은 마냥 행복했다.

그들 중에는 노인성 관절염을 심하게 앓으면서도

고통 속에서 춤을 추는 여인이 혹여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대, 서글픈 인어공주여.

 

쉰 두 해를 살고 있는 동안

여자가 긴 시간 동안 몰아의 경지에서 몰두할 수 있는 작업은

섹스와 글쓰는 일밖에 없었다.

적어도 <춤>이란 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까지는.

 

춤을 추는 동안 여자는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으면서 그저 황홀했다.

고통이 없는 황홀은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달콤하면서 편안했기에 여유시간이 생길

때마다 <성인 콜라텍>으로 가서 지터벅과 트롯과 블루스와 탱고와 왈츠를 춘다.

아주 가끔은 고통의 댓가를 지불하지 않은 황홀이 싱겁고 무의미하여,

설혹 긴 시간의 고통을 동반한다고 해도

연금술사의 손끝에서 작게 반짝이는 금조각이 그리워져서

오늘처럼 이렇게 글을 쓰기도 한다.

 

그림의 출처 

Dancing Island - 댄싱아일랜드 -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