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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스크랩] 경주 문화재 탐방 [사진응모]

by joolychoi 2007. 1. 7.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때 만들어진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관측대이다.

화강석을 가공하여 기단 위에 27단의 석단을 원통형 곡선으로 쌓아 올려 그 위에 방형의 장대석을 두 겹으로 우물 정자와 같이 얹혀 천문을 살피도록 시설하고 있다.

정남을 향해 밑에서부터 제13단과 제15단 사이에 감실과 같은 사각문이 뚫려 있다.첨성대의 규모는 밑변의 지름이 5.17m, 높이가 9.4m 이며 석조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30년만에 가 본 경주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고 내가 정말 가기는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서 다니기 조금 힘들었지만 마음 먹고 간 경주의 문화재를 놓칠수는 없었다.

가장 먼저 간곳이 첨성대이다.

숙소에서 가깝다는이점도 있으나 자랑스런 우리의 문화재를 놓칠수는 없었다.

비가 와서 안내를 해주시는 분은 없었으나 찬찬히 둘러 볼 시간이 되었다. 

 

 

석빙고의 내부사진이다.

일본 관광객들이 유심히 살피며 보던 곳이다.

 

 

석빙고는 얼음을 넣어두던 창고로, 이 석빙고는 경주 반월성 안의 북쪽 성루위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남쪽에 마련된 출입구를 들어가면 계단을 통하여 밑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은 경사를 지어 물이 흘러 배수가 될 수 있게 만들었으며 지붕은 반원형이며 3곳에 환기통을 마련하여 바깥공기와 통하게 하였다.
위로 올라가게 하지는 않아서 3개의 환기구는 멀리서만 보고 말았다.

하지만 석빙고가 있다는 것으로도 우리 문화의 우수함을 알수 있는 일이다.

 

 

포석정지이다.

이 포석정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 진 것이다.

신라 임금의놀이터로 만들어진 별궁으로서 건물은 없어졌으나 역대 임금들이 잔을 띄우고 시를 읊으며 놀이 한 것으로 생각되는 전복 모양의 석조 구조물만 남아 있다.

지금은 건물은 하나도 없고 저 구조물 한나만 남아 있다.

책에서 배우던 모습 그대로이지만 그리 큰 구조물은 아니었다.

고목들만이 역사를 말해 주고 있었다.

 

 

포석정지 내의 다리...

경애왕이 잔치를 베풀고 놀이하고 있다가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붙잡히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고 하는데 저 다리를 보며 그 역사를 되새겨 보게 된다.

 

 

 

안압지는 신라 문무왕14년에 큰 연못을 파고 못가운데 3개의 성과 북쪽과 동쪽으로 12봉우리를 만들엇다고 하는데 이것은 동양의 神仙사상을 배경으로 삼신산과 무산십이봉을 상징한 신라원지의 대표적인 곳이다.

못가에 임해전과 여러부속물을 만들어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하면서 나라의 경사스러운 일이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 연못을 바라보면서 연회를 베풀던 곳이기도 하다. 

가장 큰 건물인 임해전의 정면 모습이다.

안에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사방으로 둘러 볼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임해전에서 바라본 부속건물

연못에 비치는 그림자가 아름답다.

연못에는 비단 잉어들이 놀고 있었다. 

 

 

 

 

 

출처 : 문화유산 답사기
글쓴이 : 다사랑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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