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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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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갱

by joolychoi 2006. 12. 23.

타이티에서는 모든 것이 유럽과 반대다.

 

유럽에서 성은 억제되어야 했고 부지런함은 권장되었다.

 

타이티에서 성은 자유로웠고 게으럼이 미덕이었다.

 

 

 

 

 

 

 고갱의 자화상

 

 

 

"저 뒤에 앉은 검은 옷의 여인이 귀찮게 따라붙는 장모?"

 

 

 

 

19세기 말 문명권 바깥의 원시사회를 동경한 일단의 예술가와 낭만주의자와 사회부적응자들이 남태평양으로 떠났다.


새로운 이상향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의 행렬 중에서도 유독 이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사람은 고갱이었다.


대칭적이고 기하학적이며 논리적이고 사실적인 서양미술의 기법 뒤에는 그리이스 미술의 영향이 있다.


사실주의라는 이름 아래 점점 사진으로 변해가는 19세기 서구 미술은 예술적 영감을 통한 자연의 완전성과의 소통이라는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 있으며 그리이스 미술의 영향이 근대미술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아챈 것이다.


타이티에서 고갱은 관습법적인 아내로 삼은 어느 어린 소녀에게서 완벽한 원주민의 모습을 찼았다고 생각했다.


타이티의 내륙지방을 여행하고 있을 때 어떤 여인이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내로 삼을 사람을 찾고 있나요? 그렇다면 내 딸을 데려가시오.”


15분 후 13살 쯤 되어보이는 소녀가 나타났다. 소녀의 이름은 테하아마나였다. 고갱이 말했다.


“너는 내가 무섭지 않니?”

“예.”

“앞으로 내 오두막에서 살래?”

“예”

“병 걸린 적 있어?“

“아뇨.”


고갱은 소녀와 함께 귀가길에 올랐고 곤혹스럽게도 그가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거의 내내 소녀 가족이 함께 따라왔다.

 

출처 : 달마실..!!
글쓴이 : 솔숲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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