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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유럽 5개국을 다녀와서

by joolychoi 2006. 8. 14.
 

      유럽 5개국을 다녀와서 !

                               

 세계화 정보화를 부르짖으며 모든 분야에서 무한 경쟁에 돌입한 우리나라는 

선진 교육제도와 선진문화를 접하게 하여 교육의 질을 높일 목적으로 해외 시찰

연수를 실시함에 있어 21세기 세계화에 대비한 교육의 저변 확대를 위한 경상남도 교육청  '96 실무공무원 단기 국외시찰 연수단" 의 일원으로 참석하게 된 영광을 

안게 되어 1996년10월4입부터10월13일(9박10일)일정으로 선진 문명국인 유럽의 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로마 및 영국 5개국을 시찰하는 장도에 오르게 

되었다. 그 동안 몇 번의 해외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어 기내 생활이 낮 설지는 않았지만 12시간의 비행시간은 지루하기도 했다.그러나 미지의 나라, 한번도 가 보지 못한 곳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약간의 두려움을 느끼며 온갖 상상에 잠기곤 했다.이번 5개국 연수 중 여러 문화와 생활상 그리고 국가발전의 원동력인 

교육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등 이에 대해 깊이 터득 할수 있는 게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유럽5개국을 다니면서 보고,듣고 느낀점을 교육현장에 다소나마 보탬이 될까하여 소개 하고자 한다.

 

  1. 예술의 나라 프랑스


 BC 2000년경 프랑스 지방에 겔트족이 이주하면서 BC 3-5세기까지 프랑스,영국,스페인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지배하였다.그러나 내분으로 BC 2세기경에는 

로마에 정복 당했다.서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게르만 민족중에 프랑크인이 

세력확대 메로빙가의 클로버스 1세가 왕이 되고 사후에 가톨링가의 Charlemagne 대제가 왕이 되면서 프랑스,독일,이탈리아에 이르는 거대한 왕국을 형성하였다.

사론마뉴대제 사후 분열되어,843년에 베르덴 조약이 체결되므로서 동프랑크(독일),서프랑스(프랑스),이탈리아로 구분되어 현재와 같은 프랑스 영토가 정립되었다.로베르가 후손인 카페가 카페왕조를 세우면서 프랑스왕국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볼수있다.그 후 발루아(Valois)왕조,부로봉(Bourbons)왕조,제1공화국에서 프랑스대혁명을 거쳐 1870년 제3공화국을 수립하여 자본주의가 발전하였고,1946년 국민투표에 의하여 승인을 얻어 제4공화국이 탄생하였으며1958년 국민투표로서 제5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드골이 당선되었다.그 뒤 지스카르 대통령이 1980년 미테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100여년 전에 현재 도시 골격을 갖추었다는 예술과 낭만의 도시 파리는 자연과 문화와 시간이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예술의 도시 다웠다.개선문을 중심으로 한 마로니 가로수가 12거리에 쏟이지는 차량의 물결로 "우회전 차량 우선 원칙"

으로 물 흐르듯이 소통되는 체질화된 질서 의식과 소형 차량들이 대부분인 이 

곳의 차량 문화는 퍽 인상적이 었으며 교통질서 문화에 한 몫을 하고 있었다.

처음 접하는 프랑스의 예술문화는 극치에 달하였으며 지하 하수도 시설은  세계 

최고라고 한다. 모든 도로 밑에 하수도가 있다고 하며 파리 시내에 전신주가 

없는 이유는 전기,통신 선,상수도가 하수도에 부설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 호화로움과 사치가 극에 달한 태양황 루이14세의 궁전 베르사이유(Versilles).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하여 철제로 건설한 현재 높이 320m의 에펠탑(La Tour Eiftrel) 1,2,3층 전망대 274m,엘리베이터를 이용 하여 

전망대에서 파리 시내 전체가 한 눈에 보이며,밤 야경은 극치를 이루며 또한 

세느강의 유람선상 야경은 낭만의 도시 파리 모습을 아주 호화롭게 한다.

유럽 최고의 고딕 양식의 결정체라고 칭송하는 노틀담 사원,프랑스군의 승리와 영광을 칭송키 위하여 나폴레옹의 지시에 의해 세워진 미완성 개선문(높이50m폭45m), 몽마르뜨 언덕,상제리에 거리,소장품이 30여 만점이 넘는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미술관이며,세계 구석구석의 미술품과 걸작들을 총망라 해 놓아 지구촌 미술관이라 할수 있는 루브르박물관은 명작인 밀러의 비너스 상,레오날드다빈치의 모나리자 상 등이 소장되어 있었다.옛 것을 보존하겠다는 마음과 새로운 문화 창조 

및 자동차 문화 등 더욱 노력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할 기회를 가졌다.


 프랑스의 기후는 해양성과 대륙성 기후의 중간 정도로서 남부는 지중해성 기후로 전역이 혹서나 혹한은 없으나 습기가 많고 잦은 비가 내린다.우리나라 10월말 

또는11월초 일기로 우리나라 보다 4-5°C 낮은 기온으로 약간 싸늘하다고 한다.

프랑스는 엄격한 의무 교육제도이며,그 기간은 6세-16세 까지이다. 교육연한은 우리와 달라 우리 초등학교 기간에 해당하는 초등교육이 5년간 실시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기간을 합친 중등교육은 1단계4년,2단계 3년으로 나누어 진행되는데 

이1단계가 끝날 무렵 장래 진로 결정을 하게 되는데 대학 진학 희망자는 "바카로레아"라는 입학자격고사에 합격해야만 대학 진학이 가능하고 기회는 두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그 나머지는 곧 바로 사회 진출을 하기 위한 실무교육 코스를 선택

한다.재미있는 것은 초등학교에서는 숙제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생루이 고등학교(Louis Vsrand)는 명문 학교로 학교의 도서관 장서 및 고서적 보관 수를 기준으로명문 학교가 구분된다고 하며,학교시설은 도로에 접하도록 하여 학교교사가 건축 되였으며,APT,건물등 구분이 없었으며 주변이 전원 도시이고 교수방법,교수내용이 각각 다르다고 한다.


  2.샤머니(CHAMONIX) 를 잊을수 없는 스위스


 교육열이 높고 대학까지 무료로 공부할 수 있지만 10%정도만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지는 개인의 적성에 맞게 각각 다른 길로 이끌어가는 그들의 교육정책은 매우 알차며 현실성이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프랑스 파리에서 떼제베(T.G.V)를 타고 스

위스 레만 호수가의 불란서 문화권 도시이며 국제 회의장인(국제연합등 국제기구)제네바에서 숙박케 되었으나 사정이 변경되여 샤머니(CHAMONIX)숙박하게 되어 아쉬

웠다.샤머니는 해발1050m알프스 산맥의 마을로서 주민 350명 정도 살고있으나,스키관광이 유명하여 4월-11월 사의 1일10만명 정도 스키관광객이 운집하고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만연설인 알프스 몽블랑 최고 영봉 등정으로서 몽블란산 높이4807m이며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으며 케이블카를 타고 높이3842m  "에귀다미디"에 도착한다.

여기서 최고 영봉4807m 몽블랑의 장관을 감상할수 있으며 몽블랑의 지하로 불량수 계곡의 지하통로,전망대,Pelerins 빙하의 줄기가 절벽에 드리워져 있으며 계곡과 절벽에 매달리다 시피 붙어있는 빙하는 장관이다.

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계곡은 천해의 절경이었다.잘 사는 나라의 특징은 

국민의 교육 수준이 높고, 사회보장 제도가 잘 이루어져 있으며 간접 자본 투자가

많아 도로,교통,통신 등 국토를 잘 관리하고 있었으나 기계산업의 발전상을 볼수 없어 아쉬웠다.


   3.3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럽관광의 진수 이탈리아


 고대 로마제국의 역사를 그대로 보는것 같은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유적과 소박

하고 정렬적인 이탈리아인들의 생활속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성격은 낙천적이었다.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페렌체,수도는 로마,면적은 30만㎢로서 한반도의 약1,4배이며,종교는 90%이상이 로마 케톨릭인 이 나라는 북위36-47°에 걸쳐있으며 

일년 내 내 지중해성 기후로서 맑은 날이 많다.이 나라는 도덕의 나라 역사와 

전통,도덕성을 자긍심으로 하는 민족이다.고풍의 미를 지녔으며 로마의 거리는 

일반 통행이 많고 우리나라 티코 및 프라이드 같은 소형차가 주종을 이루었으며,

그 나름대로 교통 소통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옛 

말과 같이 번영했던 로마제국의 문화유적이 많았으며 년간 약5,000만명 이상 

방문하는 최대의 세계관광 도시이다.


 성 베드로 성당은 카톨릭 총 본산인 세계 최대의 성당으로서 건축학적 완전한 

구조의 작품이다.바티칸 박물관과 시스타나예배당(APPELLA SISTINA)의 천정벽화, 

미켈란제로의 "최후의 심판"은 7년에 걸쳐 제작 되었으며 "천지 창조"는 4년

5개월 만인 1508년 5월10일 시작하여 1512년에 완성 하였으며 27m높이 

천정 벽화이다.내부는 안쪽 길이가 185m이며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다.


 클로세움은 원형극장 겸 투기장으로서 로마 유적중 가장 위대한 건축물로서 

수용인원은 5만명으로 기원후 80년에 축조되었다고 한다.중앙의 일러나에서는 

검투사와 맹수가 생명을 건 싸움을 해 많은 사람이 죽어간 검투장으로서 이 

경기를 보고 로마인 즐겼다고 하는 비운의 역사 현장이다.또한 고대 로마 

유적중 최고로 손꼽히는 고대 로마의 영화를 한눈에 보는듯 했다.여기에서 잊혀

지지않는 조그만한 사고를 남기지 않을수 없다.한번 돌이켜 봐야 할 이야기다.

클로세움 답사후 출발시 인원 점호가 있었다.연수 인원 35명중 1명이 모자란 

34명이 였다.확인해 보니 일행 중 거제교육청 연수생 1명이 없음을 일행 

중에서 확인할수 있었다.일행이 복잡한 장소여서 찾기도 어려웠다.비상이 걸렸다.함께 온 것인지 어디에서 부터 함께 동행하지 아니 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대화도 어렵고 일행 찾기가 어려우니 걱정은 말 할수 없었다.그러나 사전 연수생에게의 교육의 효과를 기대할수 있었다.일행을 놓쳤을 때 움직이지 말고 놓친 그 장소에서 찾아 올 때 까지 무조건 기다리고 있으라고 강조했기에 안심하는 부분이였다.안내자의 안내에 따라 현지 승차차량 주위에서 3.4명씩 3개조를 짜서 일정 위치에서 기다리며 찾기로 하고, 연수생은 승차하여 기다리기로 했다.인솔한 가이

드는 국내여행객 안내자(가이드)에 각각 연락하면서 우리가 지나 온 코스로 역으로 추적, 찾기로 하고,코메스틴의 성모마리아 성당 현관에 있는 대리석상  "진실의 

입"으로 찾아갔다.30-40분 후에 안내자와 함께 나타났다.연수생 모두 환호하면서 반가워 했다.안내자끼리 연락한 결과 위 장소에서 찾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 올테니 그 장소에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도록 당부하였다고 했다.성모마리아 성당 앞에서 만났다고 했다.본인 이야기를 들어보면 코메스틴 성당 안을 둘러 현관에 있는"진실의 입"관광한 후 나와보니 일행이 없어 어리둥절 하였으며 국내 관광

객 안내자에 물어 찾아 오도록 기다렸다고 했다.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겠다는 교훈과 여행지에서의 기본 상식을 배울수 있었다.그 후에는 꼭 일행과 함께 하여 무사한 여행이 되였다.

 

 1세기에서 4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카타콤베(CATA COMBE)지하 공동묘지는 

기독교인의 평민,천민의 묘지로 AD 250년 테시크 황제 박해 시절까지 사용하

였고 지하통로가 복잡하여 기독교인의 기독교 박해로 신자들의 집회 장소로 활용 되었으며,지하5층으로 시신들은 지하 수백미터,무덤 안에는 토양이 석회질로 되어있어 공기에 노출되면 시멘트처럼 굳어버려,천연적으로 고층의 구조물은 형성되어도

붕괴되지 않는다고 했다.내부는 많은 유골들이 내장되어 등골이 오삭할 지경이다.그리스도인들의 성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트레바(愛泉)분수에 동전을 던지는 방법은 동전을 오른손에 잡고 트레바 분수를 뒤로 하여 왼쪽 어깨 너머로 던지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한다.

첫 번째,동전은 로마에 다시 돌아오기 위하여 두 번째,동전은 사랑할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세 번째,동전은 그 사람과 결혼 할수있게 소원을 빌며 던진다고 하였으며,

 

  진실의 입(PLAZZA BOOCA DELLA VERITA)은  강의 신 홀르비오의 얼굴을 조각한 대리석상으로 평소 거짓말을 한 사람은 이 동상의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 오고 있다."로마의 휴일"의 명화에서 오드리헵번과 그레고리팩과의 환상적인 장면이 파노라마 처럼 스쳐간다.(연수생 찾은 장소)


  세계3대 미항의 하나인 나폴리(NAPOLI)는 가난한 남이탈리아의 제1의 도시로서

그리스에서 부터 시작하여 비잔문명과 프랑스등 차례로 외국의 지배를 받아온 뼈아픈 역사속에서 그들의 독특한 풍습과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있는자의 전원별장,

요트등이 즐비하여 빈부의 차가 심하며,빈민가의 건물과 건물 사의로 줄로 연결하여 만국기 처럼 펄럭이는 세탁물 들,자동차 경적소리,인도까지 차지한 자동차,

빨간 신호등에서 횡단보도에서 대수롭지 않게 건너는 보행자 등,재미있는 광경이 인상적이다

 

 깍아놓은 듯한 소렌토(SORRENTO) 해안의 암벽 도시의 절경은 잊혀지지 않는다.바다를 낀 해안도시는 한 폭의 그림 같기도 하다.우리는 그 아름다운 해안을 

바라 보며 마음의 고요를 찾는다.

 

 폼페이(POMPEI)는 AD 79년8월24일 베수비오(VESUVIUS)화산 폭발로 매몰된 

후 1748년 발굴되기 전까지 흙속에 뭍혀 있었는데 발굴 당시까지 인간을 

비롯한 생물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었다고 한다.특히 목욕 문화와 

성문화는 그 당시 로마 왕족,귀족들의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향락을 즐겨 신이

놀라 로마가 멸망하였다고 하는 설이 전해 지고 있으며 여기가 바로 성문화의 

발생지라고 한다.그러나 현재 이태리 목욕문화는 샤워가 일반화 되어있으며 

공중목욕탕,사우나탕 등은 아예 찾아 볼수 없다고 한다.


   4.아침안개에 덮힌 전통의 도시 영국의 런던(LONDON


 영국은 오래된 것을 사랑하고 내 핍으로 내실을 기하는 나라이며 신사의 니라라고 여겨졌다.현재 도시의 주요 건물은 200년 전에 건축되었으며 알고 있던 

스모그의 런던은 맞지 않는 표현이 었다.

주연료가 석탄에서 석유와 가스로 바뀌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공익을 우선하기 때문에 줄서는 질서는 체질화 되어있어 오히려 여유가 있어 보였으며 과거의 영광을 잊자않고 자존심을 지키고 있었다.가는 곳 마다 종류별로

박물관,미술관을 지어 그곳에 이루워지는 학생들의 현장 교육을 보면서 우리와 

다른 실용주의를 느끼며 묘한 흥분 마져 생겼다

 의회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의사당은 1852년에 재건되었으며 테임즈강을 배경

으로 한 고딕양식의 건물로서 하원의 탑 위에 빅벤(높이98m)이라 불리는 대형 수동시계가 설치되어 있으며,그 육중한 자태에 여행자들은 압도 당한다.

 

 버킹검궁전은 1700년 버킹검 공작의 사저로 지어졌으나 1762년 왕실에서 

매입하여 재 개축 및 증축하여 1837년 빅토리아 여왕 즉위시 궁전으로 사용 

되기도 했다.궁전 안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으며 오전11시30분에 행해지는 

근위병 교대식을 관광하기 위해 각국의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곳이다.버킹검 궁전 앞 광장에 대리석으로 된 빅토리아 여왕의 입상이 인상 깊었다.

 

 트리폴가 광장에 56m의 넬슨 제독동상이 있었으며 그 밑에는 트레팔카해전,체인트틴센트 해전,나일강 해전 및 코펜하겐 해전 모습이 조각 되어 있다.


  파리의 루블박물관,로마의 바티칸박물관,대영박물관이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

이며,1933년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해 1751년 대영박물관을 개관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1828년에 개축된 것이다.이 박물관은 도서부,고대 미술부,인류 

박물부 및 인쇄와 스케치 미술부등 네 부분으로 나누워져 있으며,1층 왼쪽에는 

이집트 조각관이고 내부 중앙에는 500명 이상을 수용할수 있는 대관람실을 갖춘 왕실 도서관이 있어 800만권의 도서를 갖추었다고 하며 관광객들을 위해 무료 

개방하여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1층 서재에는 세계 최초의 활자본인 우리나라의 직지심경과 대헌장 원본(Magna-Carta),춘추경전대전1434년 제작 전시되어 있고,맞은편에 구텐베르크 활자본이 세계 제1위로 진열되어 있었으며 고려청자 수점도 일본인이 약탈해 간 것을 영국에 기증하므로서 진열되어 있었으나,우리나라에서 

어쩔수 없다는 사항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합천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던 불교미술[탱화]의 사천왕 2점이 벽에 진열되어 

있어 마음이 흐뭇하였다.역시 대영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이집트관의 미이라실이며 대영박물관에 진열된 작품들은 세계 각국에서 수집하여 보관되고 있었다.


 영국의 교육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에 있다고 한다.우리는 영국의 명문

학교인 하로스쿨(Harrow School)을 방문하게 되었다.이 학교의 교지는 26만평 

규모로 한 단지를 대 전원 마을로서 이루고 있었다.공립학교 이면서도 사립학교로 운영되고 있는 명문 학교이다.처칠 수상등 역대 7명의 수상이 배출된 자긍심이 

있고 전통있는 학교로서 자랑이 대단하였다.전직 교장(MASTER)로서34년 재직하다가 정년퇴직한 교사임을 소개한 후 1574년부터 400여년 전통을 갖춘 학교이며 존리딘 엘리자베스 여왕 1세가 설립한 학교이며 이 건물은1628년 그대로의 건물임을 소개한 후 옛날 전통 교실로 우리 일행을 안내하였다.

그때 학생이 사용하던 의자,교탁,등을 현재까지 보관하고 있음을 소개하고 제2차대전때 학생들이 전쟁에 출병시 벽에 이름을 새겨두고 간 낙서같은 많은 이름,

이중에서도 처칠 수상(首相)의 이름이 새겨져 있음을 확인 할수 있었다.

세계 제2차대시 지휘관17명을 배출하였다고 한다.사랑의 매(처벌)및 매 맞는 장소(버찡스톱)도 현재 사용되고 있다고 소개하였으며,학생은 검은 상.하교복에 넥타이를 매고 하로스쿨의 전통모자(밀집모자와 같은 모자)에 청테를 두른 특수

모를 쓰고 명문고 임을 철저한 자긍심으로 항상 휴대하고 수업하며 그 마을내 

교사와 학생이 생활하고 있었다.학생은 기숙사에서 합숙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교실수업 배당학생은 6-20명  이내로 구성, 교습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일과는 

6-11시까지 오전수업,오후4시까지 수업 종료 후 각종 전원같은 경기장에서 

체력을 단련하고 있다.교내 박물관은 기증 물품 등으로서 처칠수상의 그림,이집트 각종 유물등 많은 소장품이 있고 전쟁기념 추념비(군644명전사자)가 있었으며 

강당에는 7대수상(首相)의 초상화를 게시,전쟁 지휘자의 빅토리아여왕 훈장,지휘관의 마크 등을 게시하여 매주 조례시 도덕성을 강조 전통성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학생수는 780명이나 그 중2명의 여학생이 있다고한다. 학교운영은 학생이 운영비를 부담하며 학부형도 일부 부담하여 운영하고 있다.

교내의 교회 등은 철저한 학습방법 등에 의해 자율적으로 교과운영이 되고 있었다.


   5. 결 론 

 

금번 5개국 연수에서 우리나라 와는 너무나 다른 문화의 생활을 접하면서 

감탄에 가까운 대단함을 보았고 우리나라와 비교할수 없는 웅장함과 다양함을 

느꼈다.유럽 문화의 극치는 석회암의 토질로 대리석 및 카톨릭 문화의 찬란한 

문화가 극에 달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것(유럽인들의 문화)은 겉으로만 보지말고 그 속에 숨어있는 그들의 정신을 찾아야 할것이다.그들이 그들의 것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 처럼 우리의 것을 지키고 보존 해야겠다는 강한 의욕이 가슴에 치밀어 오르면서 그 동안  보기 어려웠던  강렬한 햇빛을 온 몸에 느끼고 싶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막대한 예산을 들여 해외연수를 하고 있는 당국에 감사하며 배우고 익힌 것을 학생들의 몫으로 최대한 돌아 갈수 있도록 보답 하므로서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교단지원에 선진사고로 받아들여 열심히 하여야겠다고 다짐한다 . 끝.  




                 1996년 10 25일   

                      연수를 다녀와서 기록하다

                       


 

     $ 스케너가 없어 당시 사진을 올리지 못하고 컴에 저장된 아내와 딸이 유럽  다녀온

       사진 몇장을  올렸읍니다, 이해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