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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비타민 글[1]

인간관계에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렌착 끊기(영상글 첨부)

by joolychoi 2022. 10. 10.

 

♥인간관계에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렌착 끊기♥

 

티베트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히말라야의 어느 골짜기에 수달이 사는 호수가 있다.

달 밝은 밤이면 수달이 물속에서 물고기를 잡아

수면으로 헤엄쳐 올라온다.

그러면 호숫가 나무 위를 배회하던 올빼미가

재빨리 내려와 수달의 손에서 물고기를 낚아챈다.

얼핏 보면 올빼미가 수달의 먹이를 빼앗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관찰해 보면

수달이 자발적으로 물고기를 내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음 날 밤이 되면 수달은 어김없이

물고기를 잡아 물 위로 떠오르고

나무에서 기다리던 올빼미가 또다시 날아 내려와 낚아채 간다.

둘의 관계에서 수달이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그냥 끝없이 자기를 희생하며

올빼미에게 물고기를 잡아다 바칠 뿐이다.

올빼미는 수고하지 않고도 매일 밤 맛있는 식사를 즐기지만

수달은 좀처럼 긴장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올빼미 때문에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이

매일 밤 물고기를 잡기 위해 분투해야만 한다.​

자신은 굶더라도 올빼미를 배불리 먹여야 하는 것이다.

수달이 조금만 늦어도 올빼미는 배고프다고 소리를 지르고 수달은

올빼미의 감정에 동화되어 어쩔 줄 몰라 하며 연신 자맥질을 한다.​

아무리 봐도 이 관계는 매우 불균형적이고 불공평해 보인다.

올빼미의 요구를 계속 충족시켜 주면서도

수달은 심리적 만족조차 얻지 못한다.​

오히려 올빼미가 자기를 떠날까 봐 불안해하며

넓은 호수를 외면하고 나무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그럴수록 올빼미는 더 당당하고 당연하게 수달의 노고를 가로챈다.

자신도 뚜렷한 이유를 모르는 상태에서

수달은 언제까지나 올빼미의 육체적 정신적 노예가 되어

갈수록 덩치가 커져 가는 올빼미를 위해

더 많은 물고기를 찾아 헤맨다.

올빼미는 거꾸로 불만과 요구가 늘어만 간다.

수달이 약하고 올빼미가 강하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실제로 수달은 야행성이라서 밤에 매우 강하며

물새의 발을 물고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잡아먹기도 한다.

올빼미가 추격할 수 없는 깊이로 얼마든지 잠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수달은 올빼미 소리가 들리면

최면에 걸린 듯 자신도 모르게 복종한다.

이 수달과 올빼미의 관계를 티베트어로 '렌착'이라 부른다.

 

'렌착'은 간단히 말해 '전생의 빚'을 의미한다.

전생이나 전 전생에 수달이 올빼미에게 빚을 졌기 때문에

이번 생에서 갚는 중이라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않거나

강제로 혹은 속임수를 써서 금품을 빼앗았다면

일 년 후든 십 년 후든 그 사람의 이름을 들으면

당신은 자동적으로 죄책감과 부채감을 느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생에 그런 행위를 저지른 경우에 이번 생에서

구체적으로 기억하지는 못할지라도 죄책감과 부채감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끌려가게 된다는 것이 렌착이다.

과거에 티베트인들은 심심풀이 삼아 도박을 즐겼는데

돈이 없기 때문에 작은 조약돌을 가지고 내기를 했다.

이때 조약돌 몇 개라도 빚을 지고 갚지 않으면 다음 생에

그 사람의 종이 되어 몇 배로 갚게 된다고 그들은 믿었다.

렌착은 그런 인생관이 낳은 해석이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일을

전생의 인과관계로 돌리는 것이다.

한편으로 티베트 불교의 스승들은 과거의 행위보다

지금 이 순간 쌓는 업에 깨어 있으라고 가르친다.​

수달과 올빼미의 에너지 흐름은 양쪽 모두에게 해로울 수 있다.

수달의 애착은 기쁨도 보상도 없는 자기희생에 불과하며 올빼미의

만족할 줄 모르는 착취는 돌이킬 수 없는 영적 타락으로 이어진다.

둘은 모두 어떤 긍정적인 것도 얻을 수가 없다.

의무감에 매달리느라 수달은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산 적이 없다.

전생에 빚이 원인이라 해도 이번 생의 불건강한 관계는

다음 생의 또 다른 불행한 관계로 악순환될 수밖에 없다.

인간관계에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훌륭한 정원사는 어느 가지가 나무에 유익하고,

어느 가지가 단지 자양분을 빼앗을 뿐인지 구분할 줄 안다.

가지치기 안 된 나무가 과수원을 망가뜨리둣 정리되지 않은 관계는

인생을 고갈시키고 불만족과 고통의 원인이 된다.

고통은 우리를 떠나는 것들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관계의 가지치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올빼미가 없으면 수달은 넓은 호수를 헤엄치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수달이 없으면 올빼미는 충분히 맹금류로 살아갈 수 있다.​

수달의 삶은 수달의 삶이고 올빼미의 인생은 올빼미의 인생이다.

이 단순한 자각이 불건강한 관계를 끊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가

렌착인지 진정한 애정인지 알아차려야 한다.​

그 기준은 이것이다.

관계가 순수한 기쁨을 주는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자리하고 있는가?

자기희생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결과와 성장을 가져다주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관계와 작별하는 것은

잘못이거나 이기적인 일이 아니다.

전생의 빚을 갚는 중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거는 수달로 살아갈 이유가 없다.

전생이라는 것도 마음이 지어낸 환영에 불과하다고

티베트 불교 스승들은 말한다.

중독적인 관계나 렌착은 상대방의 불완전함과 연약함을 받아들이고

연민심을 갖는 것과는 다르다.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는 것은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진실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것은 그것보다 더 소중하다.

렌착을 끊는 또 하나의 기준은 이것이다.

'나는 내 삶의 중요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질 능력이 있다고 믿는가?'

이 우화의 결말은 당신이 써 보길 바란다.

"어느 날, 수달은 깨달았다......"

살면서 중요한 문제들이 참 많지만

그중에서 인간관계는 정말 중요한 문제이다.

관계라는 것은 우리를 외롭게도 괴롭게도 한다.

수달과 올빼미의 이야기처럼 병든 관계는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근묵자흑 : 먹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검어진다.

나쁜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나쁜 버릇에 물들기 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다.

짧다면 짧은 인생의 시간 속에서 나를 파괴하는 부정적인 관계는

멀리하고 좋은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

꿀벌을 따라가면 꽃밭에 도착하고

똥파리를 따라가면 똥간이 나오게 되는 법이다.

주변의 관계를 돌아보라.

이미 병든 관계를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진 않은가?​

그것은 노예이다.

노예는 부림의 대상이지 절대 동등한 관계가 될 수 없다.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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