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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秋史 金正喜) 선생

by joolychoi 2018.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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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 김정희 (秋史 金正喜) 선생

 

   

 

추사 김정희 선생은 1786년 6월 3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영조의 부마이신

월성위 김한신의 증손이며 예조판서 김노경의 아들로 태어나 백부 김노영에게 입양 되었다.

조선왕조 후기의 실학자이며 대표적인 서예가로 벼슬은 병조참판과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렀으며

 당시의 당쟁에 휩쓸려 제주도와 함경도 북청에서 10여년간 유배생활을 지내다 말년에 생부

김노경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과천에서 71세의 일기로 작고함 선생은 단순한 예술가에 그치지

않고 시대 시조의 구 문화 체계를 탈피하여 신지식의 기수로서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여

신문화 전개를 가능 하게 한 실학자인 동시에 선각자이기도 함 또한, 북학파의 거벽으로서

청조의 고증학풍을 도입하여 학문으로는 경학, 금석학, 문자학, 사학, 지리학, 천문학에

이르기 까지 박통하였고 북한산 기슭의 비석이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임을

 고증하기도 하였다.

 

추사 기념관 추사 기념관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드높은 서예정신과 위대한 업적을 새롭게 조명하고

후세에 남길 작품들을 구체적으로 보존, 전시하여 추사 선생의 다양한 면모와

그 위상을 재정립 하기 위해 2008년에 건립 되었다.

 

 

고고한 예술혼을 지니신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제주 유배 시절을 상상하며 "옥돌괴"

위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예술가의 고독을 조각작품으로 표현

추사기념관에 전시된 작품들 ...

 

추사기념관에 전시된 추사 고택의 모형도

 

 

추사 선생의 제주도 유배지 모습
 
기념관 내부에 있는 추사 선생에 대한 인물평입니다. "글씨의 묘를 참으로 깨달은 서예가란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 또한 법도에 구속받지 않는다" 라는 19세기 서예가 초산(樵山)
유최진(柳最鎭) 선생의 추사 선생에 대한 인물평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그린 고사소요 (高士逍遙) ...뜻 높은 선비가 거닐다 세한도 그림은
절해고도 유배지에서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진지하고 절실하게 담아냈다면 고사소요는
모진 풍파를 겪은 후 평정심을 찾아 달관의 경지가 느껴지는 그래서 세한도에 비하면
편안하고 원숙한 그림을 보여줍니다
 
적설만산 (積雪滿山) .............쌓인 눈이 산을 덮다. 추사 선생이 이루어 놓은
 예술적 업적의 중요한 일장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묵란입니다.
 
완당 김정희 - "세한도"
세한도(歲寒圖) ..(국보 제 180호) 세한도는 1844년도 완당 나이 59세때 ]제주도에서
귀양살이 하는 동안에 제자인 우선 이상적 (역관) 이 정성을 다해 청나라 연경에서
구해 온 책을 보내주는 등 변함없이 사제의 의리를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세한송에 비유하여 그려준 그림으로 완당 생애 최고의 명작입니다
 
추사묘 추사 김정희 선생의 초배의 한산이씨, 계배인 예안이씨가 합장되어 있습니다
묘에는 석상과 망주석 1쌍이 있고 묘비는 1937년 9월에 세웠는데
종인 김승렬이 지었다고 합니다
 
우물 이 집안 사람들이 대대로 마신 석정(石井)이 있습니다. 이 석정에는 추사 선생의 탄생과
관련된 믿기 힘든 설화가 얽혀 있습니다 추사가 태어날 무렵에는 집 뒤편 우물물이 줄어들고
뒷산 나무들이 시들시들했는데 그가 태어나자 샘이 솟고 나무도 되살아 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우물입니다 결국 추사의 천재성은 예산 정기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되네요 ㅎㅎㅎ
 
추사 고택
 
추사고택의 솟을대문 .... 고택 들어가는 입구 입니다. 추사 고택은 추사의 증조부이며,
영조대왕의 부마이신 월성위 김한신 께서 1700년대 중반에 건립한 53칸의 규모의
양반 대갓집으로 추사선생이 태어나서 성장한 곳입니다.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문간채와 사당채가 있습니다.
 
안채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사랑채 입니다. 사랑채는 바깥 솟을 대문을 들어선 마당에 자리잡은 "ㄱ"자형
사랑채 앞마당에는 석년이라는 글씨와 모란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죽로지실 이라는 글귀도 눈에 들어오네요
차를 끊이는 죽로 (겉을 뜨겁지 않게 대나무로 감싸서 만든 화로) 가
있는 방이란 뜻으로 추사 선생이 친구인 초의(草衣) 선사에게 써준 다실의 이름입니다.
 
사랑채 안마당에서 찍은 사랑채 모습입니다. 고택이 위세보다는 소박함이 느껴지고
짜임새 있는 구조물이 꼭 필요한 공간만큼 차지하는 절제미가 건물의
매력이라 느껴졌습니다
 
사랑채 마루에 걸터 앉아 세한도를 그림을 한참을 쳐다 봤습니다 추사 선생이
어떤 마음으로 그렸을까 라고 생각하며....
 
대팽두부과강채 ....大烹豆腐瓜薑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두부와 오이 생강과 나물이며 고회부처아녀손.... 高會夫妻兒女孫 가장 훌륭한 모임은 아내와 남편과 아이와 손자 평범하고 귀한 깨달음을 적은 글이지만 저에게 아주 큰 일침을 준 글이었습니다 ㅎㅎ 석년
사랑채 댓돌앞에 세워진 이 돌기둥은 해시계 받침 용도로 쓰였으며 "石年" 이라는 글씨는 추사 선생의 아들인 상우가 추사체로 쓴것을 각자(刻字) 한 것이다. 어쩌면 추사 선생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석년" 이라는 글씨.... 으리으리 하고 화려한 건축이 아닌 짜임새 있는 구조물이 꼭 필요한 공간만큼 차지하는 절제미가 고택의 건축물의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세보다는 소박하고 정갈하면서도 품격이 높은.... !! 처마끝의 우아한 곡선미가 너무나 아름답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수 있어서 정감이 가네요.. 추사체험관
추사체험관 입구에 만들어진 모형도 저기 빈 자리에서 난을 한번 그려 볼려했더니 추사 선생님이께서보고 계셔서... ㅎㅎㅎㅎ 추사체험관은 말그대로 추사 선생님의 그림을 탁본이나. 난초 그리기 세한도 그리기, 추사체 쓰기 추사선생 서적 읽기, 무지 부채꾸미기. 등... 제가 갔던 이날 엄마손을 잡고 들어와 부채를 꾸미는 체험을 하러 들어 왔길래 이뻐서 한 컷 했습니다 ㅎㅎㅎ 제가 그린 세한도,,, ㅎ
추사 김정희 선생의 그림을 감히 제가 흉내를 좀 내 봤습니다. 잘 그리기 보다는 절해고도 라는 유배지의 땅 제주에서 세한도를 그렸을 추사 선생의 그 마음을 헤아리며 잠시 붓을 잡아 봤습니다. 세한도 그림 자체가 비장감이 돌게 하네요 ㅎㅎㅎㅎ 월성위묘
월성위 김한신의 묘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 월성위 김한신과 영조의 둘째딸인 화순옹주의 합장묘 입니다
홍문
화순옹주 정려문 정려문은 추사선생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영조의 차녀)의 정절을 기리고자 정조가 명정(命旌)한 열녀문입니다 화순옹주는 부군 월성위 김한신이 39세 젊은 나이로 작고하자 그때부터 식음을 전페하고 부왕 영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군을 따르고 말았다네요 영조는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면서도 부왕의 뜻을 저버린데 대한 아쉬움 때문에 열녀 정문을 내리지 않았으나 휴에 정조가 명정하였습니다 . 화순옹주는 조선왕조의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라고 합니다 백송 조각공원 백송 공원은 여러 작기들이 만들어 놓은 전시 작품입니다 추사 선생을 생각하며 만든 작품이라고 하네요. 백송 추사 고택에서 500m 가면 예산 백송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백송 가는 길 예산의 백송은 중국 북부지방이 원산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송은 우리나라에 몇 그루 밖에 없는 희귀한 수종으로 이 백송은 추사 선생이 25세때 자제군관 자격으로 생부 김노경을 따라 청나라 연경(지금의 북경)에 다녀오면서 가지고 온 씨를 고조부 김흥경의 묘소 앞에 심은 것입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그린 (국향군자) 사군자(四君子)의 香氣
화려하고 화사한 젊음을 잃었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지금 당신의 향기가 아름답고 그윽 합니다. 묵향 처럼, 난향 처럼 가슴 속 까지 깊이 스며드는 당신의 그 향기가 좋습니다. 세월의 주름살 따라 흐르는 경륜과 식견의 향기는 마르지 않고 항상 온화한 것.
온 방을 가득 채우고 남아 가슴을 적셔오는 당신의 향기에 취해봅니다. 꽃은 머지않아 시들어도 향은 난향이 되기도 그러다가 국향인가 하면 매향 처럼 향긋하기도 한 사군자 모두 입니다. 인격과 관용이 쌓여 빚어내는 그런 향기입니다. 인생의 깊은 의미를 헤아리는 당신은 멋을 갖춘 사람입니다.
나이 사오십 되어 중년이라고 하고, 공자는 불혹, 지천명이라고 했던가. 이제 우리는 자신의 인생과 기품에 따라 자기만의 향기를 소중하게 생각 하고 가꾸어 가야 할 때,
젊은 시절, 살아온 발자취가 나이 들어 아름다운 배려와 관용의 미학으로 빚어내고 있으니..
그대는 지난날의 삶을 아쉬워 마세요. 주름살이 깊어진 만큼 가슴 속도 깊어지고 피부가 거칠어지는 대신 사랑은 더 부드럽고 향기는 더욱 더 짙어집니다.
 
그대로 그모습이 어느 화장품, 어느 향수 보다 향긋 합니다. 느낌으로 전해오는 향기를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우리 흐르는 세월을 수용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즐거움으로 보내요.
-좋은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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