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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감동을 주는 글

부부(夫婦) / 문정희

by joolychoi 2014.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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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夫婦) / 문정희  
 
부부란
무더운 여름밤 멀찍이 잠을 청하다가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둘이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너무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 꽃만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어디 나머지를 바를 만한 곳이 없나 찾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어 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달에 너무 많이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문득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효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잴 수 없는
백 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들꽃 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네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내 손을 한번 쓸쓸히 쥐었다 펴보는 그런 사이이다
 
부부란 서로를 묶는 것이 쇠사슬인지
거미줄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묶여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느끼며
어린 새끼들을 유정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이이다
 
*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병원에 출근하는 70 이 넘은 박씨,
연금 150만원 타서 아내의 병원비 내고 남은 돈 20만원으로 살아가는
그가 하는 일은 딱 한 가지입니다.
 
병실에 올라가 오래도록 의식없이 거의 사경을 헤매는 아내의 얼굴을
잠깐 들여다보고 내려오면 장례식 장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바로 손거울을 보는 것입니다.
 
때가 묻어 오래된 손거울로 얼굴을 이리저리
구석구석 들여 다 보고는 그 다음엔
족집개로 머리의 흰머리를 뽑습니다.
 
머리도 거의 대머리 수준이라 숱도 거의 없고
겨우 귀 윗 부분, 옆 부분에 조금 남은 정도인데,
거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흰머리를 찾아 뽑습니다.
 
한 1~20분 정도 거울을 들여 다 본다면
워낙 할 일 없는 분이라 이해가 가는데
한번 거울을 꺼내 들면 오전 내내 들여 다 보고,
오후에도 담배 피우는 일 외에는
손거울 보는 걸 낙으로 삼습니다.
 
그런 그가 오후 4시쯤이 되면 어김없이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또 어김없이 7시 좀 넘어 출근하고.
집에 가면 뭐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하긴 뭐해? 집에 가면 낙이 있나 사람이 있나.
누가 밥을 해주나.."
"그럼 어떻게 하세요?"
 
"집 앞에 있는 가게에 가서 라면사서 끓이거나
포 하나 사다놓고 소주 먹고 자는 거지 뭐."
"그럼 늘 술로 저녁을 때우시는거예요?"
 
"그걸 말이라고 해? 나는 이제 자기 전에
소주 2병 먹지 않으면 잠이 안 와.
마누라가 얼른 일어나야지 힘이 나는데
죽은거나 다름없이 저렇게 병원에만
누워 있으니 무슨 재미로 사나.."
 
사람이 취미가 없다는 건 그걸 모르는 사람은
괜찮을지 모르겠지만,아니 오히려 취미가 있는게 불편하고
거치장스러울지 모르지만,
취미가 없다면 사는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헌데 박씨는 무취미가 취미인 양,
아니 생각해 보면 그에게도 취미는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낚시를 드리운 무심한 강태공처럼 의자에 앉아
그렇게 하루라는 긴 시간을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내는 것.
그리고 집에 가서는 소주를 먹는 것.
 
이 두가지 취미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씨는 본래 술을 좋아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그렇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루에 1병 반에서 2병을 먹어야만 잔다고 하는 것은
아무리 술에 철인이이라고
하더라도 언제 결단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울을 들여다 볼 때나,
돈을 셀 때도 손을 많이 흔들고 얼굴도 검다 못해
새카매 당뇨와 간에 문제가 왔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와 얘기할 때는
서두부터 술을 되도록 조금씩,
최소 하루 건너 먹으라고
권유하기도 합니다.
 
 
 
그런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도 박씨는 아침에 한번 병실에 올라가
부인을 만나 보았습니다.
말을 못하고 눈을 감은 채 코줄로
실날같은 생명을 연장해 나가는 게
 
벌써 14년이 넘어가 보는거나
안 보는거나 똑 같은데도 그래도 그는
한결같이 아내가 눈을 뜨고 회복되기만을
이제나 저제나 하는 마음으로
꼭 들여다 보고 얼굴을 쓰다듬은 뒤 병실을 나섭니다.
 
그 날 병실을 나오기 전 그는 간호사로부터
요즘 아주머니 몸 상태가 썩 좋지 않고 혈색도 나쁘다는
말을 듣고는 두말 않고 제일 비싼 보혈 주사를
놓아 달라고 부탁 하고는 내려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간호원이 박씨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러번 걸어도 받지 않자 건물 1층 장례식장 앞
현관으로 내려왔습니다. 시간적으로 보아 의례 박씨가 앉아서
손거울을 들여다 보며 얼마 남지 않은
흰머리를 뽑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없자 간호원은 옆에 늘 같이 나와 앉아있는
다른 환자들한테 그를 못 봤냐고 물었지만
모두 오늘은 안 온 모양이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간호원은 할 수없이 3층으로 올라가
자기 업무를 본 뒤 오후에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자 또다시 1층으로 내려와
박씨 아저씨를 찾았습니다.
 
박씨를 찾은 것은 보혈 강장제 주사를 놔준 것과,
아주머니 기저귀가 다 떨어져 얼른 사 드려야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다음 날이 되어도
박씨가 보이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자 무슨 일이 생겼다고
생각한 간호원이 서울 큰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소재나 근황을 알만한 사람은
이웃집에 사는 아저씨뿐이라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를 어제 오늘 사이에 보지 못했냐고 했더니
못 봤다고 해 그럼 우리집엘 잠깐 다녀와 달라고 부탁했는데,
 
다녀 와서는 문이 잠겨 있어 못 들어갔다는 대답을 듣고
아버지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고 생각한 아들이
그 길로 내려왔는데,방문을 열고 들어 갔을 땐
이미 안방에 자는 듯 죽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작년 10월이었습니다.
 
그로부터 꼭 일주일 후
병원에서 오랫동안 의식없이 투병생활을 하던
그의 아내도 죽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 아내가 죽기 직전
먼저 하늘나라로 갔고, 아내는 그 남편 뒤를
곧 바로 따라갔던 것입니다.
 
--<모셔온 글>--
 
부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