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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자유게시판

황혼의 봄

by joolychoi 2013. 2. 17.

 

 

 

 

 

 
 
 
  황혼의 봄  
 
    

혼자 있고 싶다.

지치고 힘이 든다.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깨끗이 헤어지고 싶다.

 

이젠 정말 남이 알고 있는 나로부터

온전히 달아나서 놓이고 싶다.

 

용해될 수 없는 천성 때문이다.

타협할 줄 모르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아니다, 이게 다 경계선 때문이다.

 

언젠가는 허물어질 줄 알았다.

언젠가는 문이라도 열릴 줄 믿었다.

나를 버리고 한 평생 살다보면 누군가는,

한 사람쯤은 사람이 있어

버림받은 나를 보듬어 주지 않을까……

 

하지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희망사항이다.

시쳇말로, 웃기는 소리다. 처참한 현실이다.

어쩌면 저토록 나를 꿰뚫어 알고 있는 것인지.

저들은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요지부동이다.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다.

결국은 내가 또물러서게 될 것임을 저들은 알고 있다.

 

공치사 듣겠다고 사랑한 건 아니지만

보상 받겠다고 한 평생 살아 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슬프다. 한없이 외롭고 쓸쓸하다.

 

나는 요즈음 하루도 빠짐없이

자살에 대해서 생각한다.

일을 하면서 생각한다.

밥을 먹으면서도 생각한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다.

난 적어도 외관상 추호도

슬프지 아니하고 아무 문제없다

.

겉보매 조금도 변함없고,

태연하며 오히려 떠들썩하고 명랑하며 언제나

자신들의 입맛에 딱 맞아떨어지는 결론을 도출해 주는

매우 듬직하고 우량한 머슴이다.

 

혹여 고장 나고 싶어도 고장 날 수가 없는

최첨단 철갑 로봇이다.

 

원래 로봇의 주인들은 로봇의 애로사항에

대해선 관심부터 없기 마련이다.

 

물론 세상의 모든 주인님들은 수시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기계들을

점검하고 돌봐준다.

 

그러나 엄동설한 바람 차가운 날

바닷물에 뛰어드는 사람의 속내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다.

 

늙은 영감을 집에 홀로 남겨놓고

봉사활동 가는 할멈의 속내가

단지 다 늙은 영감태기와 함께

있기 싫어서라는 점과 같다고나 할까.

 

자동차의 엔진오일을 갈아주는 것은

단지 자동차 더러 좀 더

잘 달리라고 그러는 것뿐이다.

아무도 자기 자신 이외의 문제에 대해

선관심을 갖지 않는다.

 

야멸친 세상이다.

생선 맛을 아는 고양이는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 야옹거린다.

자기 자신이란 이름의 독아지에 한 번 빠진

사람은 절대 헤어나지 못한다.

그건 꿀단지 같은 것이다.

 

그게 실은 함정이지만,

아무도 그걸 함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세상은 거의 절반쯤 미쳐서 돌아간다.

사랑 받고 싶은 사람은 천지간에 널브러졌는데

사랑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입만 열면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은

숫제“당신은 오직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고 부르짖는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말은 원래 사기꾼들 전용이다.

 

사랑을 받는 것도 때론 고역일 수 있겠지만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자칭 고귀한

인간을 오로지 섬기기만 해야 하는

從僕의 고통은 이루 다 형언할 수조차 없다.

지옥이 따로 없다.

 

자신보다 열등한 인간에게 지배받는

고통이 가장 큰 고통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가장 이기적인 인간이

가장 열등한 인간이다.

 

비열하고 저급하다.

실제로 저급한 생물일수록

자신의 촉수에 닿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안다.

 

단, 진화가 거듭될수록 은밀히 속내를 감추고

교묘히 위장할 줄 아는 기술을 습득한다.

재미가 없다. 도무지 신명이 나질 않는다.

그러니 그만 살고 싶은 거다.

자살하고 싶어지는 거다.

 

자살하고 싶은 사람은 당연히

자살하는 방법에 대해서 궁리한다.

철학적인 사람은 철학적인 측면에서 考究하고

경제적인 사람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고려할 것이다.

모르긴 하지만 아마 예술적인 사람들은

예술적인 측면에서 연구할 것이다.

그가 만약 문화인이라면

문화적으로 모색할 것이다.

이나저나, 누구든지 마지막 가는 길만은

가장 고통 없이 가고 싶다.

아니다. 한 순간의 고통으로

모든 고통을 마감하고 싶은 것이다.

.

.

이 차갑고 냉혈한 현실세계에서

아직도 내가 살아 있다는 건 기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나를 공격해 왔고

나는 수시로 찢어지고

피 흘리며 아프고 서러웠다.

하지만 어떤 고통과 간난 순간에도

나는 나를 지켜보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감시했다.

쓰러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이기고 싶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이제 나도나를 좀놓아주고 싶다.풀어주고 싶다.

스스로를 버렸던것은 돌이킬 수 없는오착이었다.

아들이나 마누라를 위하는 것이

나스스로를 돌보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건 오류였다.

 

內面의 진실을 현실세계에 실현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렵고 힘든 순간일수록 더 높은

도덕적 규준을 들이밀며

스스로를 혹사시켰던 건

스스로에 대한 스스로의 罪다.

나를 돌 볼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나를 돌봐줄 사람은 없다.

내가 타인을 위하여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모두 나를 위해서 존재해야 마땅한 것이다.

 

인생의 의미 같은 건 없다.

있다면 그건 이미 폐기물이다. 쓰레기다.

마땅히 휴지통에 집어넣어야 한다.

 

삶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더 이상 스스로 사람이기를 고집해선 안 된다.

그냥 먹고 마시고, 가장 말초적

찰나에 취해서 살아가야 할 일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취해야 한다.

한 마리 짐승처럼 그리 살다 갈 일이다.

 

삶의 의미 같은 걸 찾아야 할 이유가 없다.
애초부터 그런 건 없었다.
지금부터라도 좀 더 훌륭한
악당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굳이 좋은 남편이 될 필요가 없다.
좋은 아버지가 될 필요는 더욱 없다.
만약 장성한 자식들이 배은망덕하지 않다면
그건 처음부터 부모가 자식들에게 베풀 수 있는
은혜 같은 게 없었기 때문이리라.
 
통상 은혜의 크기에 정비례해서
배은의 크기와 강도가 결정된다.
원래부터 가장 크게 은혜를 입은
인간이 가장 크게 은공을 배신하는 법이다.
원래 검은 머리 가진 짐승은 구제하지 않는게
배신을 당하지 않는 첩경이다.
여기엔 잡아먹느냐, 잡아먹히느냐,
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반드시
잡아먹어야 하는 거다.
공연히 거룩한 척 하지 말 일이다.
가능하다면 좀 더 사납게 잇바디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고 볼 일이다.
 .
.
그런데 이미 늙었다.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송곳니도 없고
포효할 기력도 없다.
 
여기다 저축해 둔 얼마간의 현금도 없다면
인생은 이제 막장으로 치닫는 수밖에 없다.
엄동설한 칼바람 끝에 당당히 마주서기는커녕
마땅히 몸뚱이 하나 의탁할 곳조차 없다.
양지 바른 논두렁이나 담벼락 밑에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서 무료급식 시간이나
혹은 봄이 오기만을 기다랗게
목을 빼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새삼 봄을 기다리는 것은 꽃을 기다리는
마음과는 전혀 무관하다.
좀 안 되긴 했지만, 봄은 사실
노인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계절이다.
 
동네 마다 줄초상이 나는 계절이다.
가느니 천국 따라가는
길이 가장 행복한 길이 된다.
그러고 보면 사망은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다.
해방이다.
 
아들 장가 갈 때
신혼집도 마련해주지 못한 마음의 빚 때문에
손자라도 봐 줘야 한다고……
 
돈으로 못 해주었으니 노력봉사,
몸으로라도 때워야 한다고
이미 사윈 육신으로 애써 자세를 가누며
며느리 눈치, 아들 눈치 보느라
틈만 나면 그저 손자가 귀여워서 못살겠다는 듯
시늉하며 사는 삶이 어찌 달가우랴만
이젠 그럴 기력조차도 딸린다.
날이 갈수록 기세등등해지는
며느리는 그 대단한 전문직이다.
돈도 잘 벌지만 말도 잘하고
머리는 더욱 영리하다.
 
아들은 오로지 그녀의 수호천사요
완벽한 보디가드다.
온갖 정성 다 기울여서 키운 아들이
저 정돈데 손자는 두 말해서 뭣하겠는가.
 
조그만 더 지나면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다.
 
허망하다. 한없이 허망하다.
세상이 모두 허망하다.
그래서 가장 손쉽게 천당행 특급열차를
탈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이 자살이란 말이지.
 
오로지 자식들에게 폐가되기 싫어
노인들이 줄줄이 자살을 한다?
그건 아니다. 그래선 안 된다.
좀 더 적나라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할 건 인정하자.
잘못 살아 온 거다.
잘못 짚었던 거다
.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더 이상 자식들을 위해서
희생의 홈런포를 터뜨려선 안 된다.
더 이상 부모들이 자식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세상을 방치해선 안 된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오로지
그 부모들을 위해서 존재해야 마땅하다.
그게 아니라면 더 이상 자식을
낳아서도 아니 되고,
길러서는 더욱 아니 된다.
 
자식들은 무조건 부모들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이건 자살을 앞 둔 노인들의 구원의 회생을
위한 철학적 프로그램이다.
반드시 되돌아보아야 한다. 두 눈을 부릅뜨고
더욱 냉정하게 되돌아 볼 일이다.
 
어디서부터,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긋나기 시작하였던 것인가.
.
어찌 보면 좀 늦긴 늦었다.
하지만 이리 쉽게 무너질 일이라면
처음부터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할 일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싸울 건 당당히 싸워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어차피 싸워서 얻는 것만이
가장 확실한 자기 것이 된다.
그게 이치다. 그런데 그 부모와 그 자식이
서로 싸운다면 과연 누가 이길까.
노후란 단지 인생의 후반기에 불과하다.
노후를 무조건 죽음과 연관 지어서
계산한다는 건 어리석고 너무 불합리한 짓이다.
무조건 늙은 사람만 죽는 건 아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죽음 앞에 노출되어 있다.
하시라도 죽을 수 있다. 그리고
도래하기 직전까지는 아무도 그 죽음의 실체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래서 누구는 죽음이란
사실상 삶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물건이라고까지 이야기 했다.
 
살아 있는 모든 순간에는
죽음이 아직 도래하지 아니하였고
죽음이 도래한 그 순간 삶은
이미 모든 것이 끝난 상태이니까……
 
아무튼 수많은 경험의 축적이라는
측면에서 노후는 젊은 시절보다 한결 지혜롭다.
단순히 체력이나 폭력이 지배하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다.
 
전쟁에 나선 전사는 가장 먼저
교두보를 구축한다.
 
가장 먼저 두려워하지 말 일이다.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내색하지 말 일이다.
어차피 싸움이다. 얼굴에서
모든 표정을 걷어내고 볼 일이다.
필요하다면 포커페이스 정도는 허용한다.
 
하지만 잠시라도 배은망덕한 인간들을
응징하고야 말겠다는 일념을 잊지 말 일이다.
당한 만큼 되돌려주는 일을 일본어로는 復讐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보복이라고도 한다.
 
가장 큰 배은망덕엔 당연히 가장 큰 몽둥이가 필요하다.
뉘우치지 않는 잘못은 절대 용서해선 안 되는 법이다.
 
기다려라 내가 가장 큰 몽둥이를 너희에게 선물해 주리라.
벼른다는 것은 칼을 간다는 뜻이다.
단, 조심할 일이다,
 
서툴게 벼른 칼끝이 자칫 자신을 향하지 않도록……
.
.
그러게 싸우는 것 보다는 적당히
화해하는 일이 훨씬 더 경제적이다.
 
싸움은 피차를 다 다치게 한다.
말을 물속으로 끌어들이려면
자신이 먼저 몸을 적셔야 하는 법
황혼이 아름다운 것은 하루해가 뜨거웠기 때문이다.
노후는 인생의 가장 화려한 시절이다.
 
마음먹고 싸우면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고
쓰러져도 얼른 일어설 줄 아는 것이 노후의 삶이다.
괜한 곳에 에너지를 소모할 이유가 없다.
 
그 자식들이 그 부모들에게 건성건성 대하듯
대충 하고 잊어버리는 거다.
단념하고 돌아서면 세상이 모두 경쾌해진다.
패륜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내 삶의 전체 전면에
그들은 맞대면을 하게 된다.
인생은 그 살아온 삶으로
진검승부를 가르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내 품을 떠나
독립만세를 부른 자식들이다.
더 이상 미련이나 아쉬움을 가질 이유가 없다.
 
아무리 친절한 교사라도 졸업생을
다시 불러 가르치려 들 이유가 없다.
제 인생은 제가 사는 것이다.
넘어지든지 깨지든지 상관하지 말 일이다.
 
그 보다는 우선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할 일을 놓아버리면 인생은 무료해서
도무지 살맛이 나지 않는 법이다.
일하고 싶어도 마땅히 일 할 자리가 없다고
구질구질하게 변명하지 말 일이다.
꽃을 꺾는 사람은 반드시
꽃병을 준비해야 하는 법이다.
 
일을 하고 싶다면 당연히 일 할 자리도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무릇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똑 같은 일을 하더라도
공짜로 일을 해선 안 된다.
 
반드시 돈이 되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꾸역꾸역 돈도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건 모두 헛수고다.
 
평생을 걸어 무료로 자식들 길러
보람도 한 번 제대로 못 찾아 본 주제에
다시 또 공짜 사업이라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이제부터의 사랑은 아낌없이 빼앗는 사랑이다
.
사회봉사활동 같은 건 별로 할 일 없는
인간들에게 맡겨두면 된다.
 
어떤 사람들은 안정된 노후생활을 위해
수억 원 정도의 현금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이것 역시 한 마디로 말해서 웃기는 소리다.
 
돈이 있으면 해야 할 일이 사라져버리기 마련이다.
요즈음 세상에 돈 없이 무슨
일을 벌일 수 있느냐고 하겠지만
일은 원래 몸으로, 사지육신으로 하는 거다.
 
남을 부려서 돈 버는 일을 사업이라고 한다면
제 몸을 굴려 돈 버는 일을 노동이라고 하겠지.
그러나 사업과 사기는 고작 글자 한 자 차이이고
노동과 운동 또한 글자 한 자 차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빛나는 노후의 삶을 위하여
고작 노동자나 되라는 거냐! 고 하겠지만
세상에 가장 강력한 재테크는 건강이다.
건강해서 노동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하기 때문에 건강해지는 거다.
 
운동 삼아 노동을 하고 겸해서 돈도 버니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은 아닌가.
돈이 없으니 반드시 돈을 벌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점도 진짜
재미난 일은 아닌가.
 
금년 소득은 미니멈 오천만 원 정도로 잡고
향후 10년 정도만 일을 하면 오억 원을 번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돈벌이 바쁘다
보면 돈 쓸 틈도 별로 없다.
 
그 돈 다 어디에 쓸 건가 하고 물어 볼 필요는 없다.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해도 전혀 뒤늦지 않다. 더욱이
그 돈으로 아들 며느리 신혼집 마련해
줄 일은 결단코 아니 일어날 것이다.
 
누구는 한가롭고 여유로운 삶을 즐기며
각종 패키지 해외여행이다,
 
전국 방방곡곡 산재한 맛 집들 찾아다니는
재미에 세월 가는 줄도 모른다지만
그게 바로 최악의 노후생활이 된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 한다.
그게 바로 은퇴자들의 줄 무덤이란 거다.
다시 분명히 말하지만 노후란 화장터 앞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그리 하릴없고 무의미한
산송장의 시절이 아니란 말이다.
 
젊어서의 게임이 오픈게임이었다면
노후의 게임은 메인게임이다.
이제 바야흐로 노후의 삶에 대한
철학이 달라져야 하는 시대가 온 거다.
 
마지막 그 순간까지 불꽃처럼 살다 갈 일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기왕의 슬픈 운명을 인정하기 위함이겠고
여전히 내면응시의 푸른 안광을 거둘 수 없는 것은
내가 현재 살아있기 때문이다.
 
모든 삶은 한 순간도 중단 없이
뜨겁게 달아올라야 한다.
이제 더는 아무것도 태울 것이 없는
그 순간까지 삶은 마땅히 타올라야 한다.
 
이제 곧 봄이 온다.
황혼의 봄이다.
살아있는 내 몸에
불을 질러 꽃을 피워내는
황혼의 봄이다.
 
출처:blog.chosun.com/qkfmsthfl :시골 살면서(양송이 (qkfmsthf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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