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필준(必俊 21世)
자는 원서(元瑞)이고 호는 연파(蓮坡)이다. 수(壽)로 통정대부에 올랐다.
(주)최필준(崔必俊):소연공 최게(崔게)의 후이고
한성 좌연공 최득귀(崔得貴)의 증손
ㅇ필학(必鶴 21世)
자는 원여(元汝)이며 호는 송파(松坡)이다. 공은 6살 때부터 조부 노암공(老菴公)
으로부터 수학하였는데 총명함이 남들보다 뛰어났고 역사책을 반쯤 읽었을 때
왕왕이 그 전체의 뜻을 이해하기도 하엿다. 장성해서는 자신을 수양하는 길은
오직 학문임을 알게 되었고, 부모를 섬길때에는 몸을 편히 해 드리고 뜻에
순종하여 조금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때로 독서중 옛 사람들의 효성
스러움이 드러난 대목이 나오면 반드시 감탄해 마지않았으며 “사람이 이와 같지
않으면 사람이; 될수 없다.“라 하였다.
특히 영영재(嶺營齋)에 거처할 때에 여러 벗들과 토론을 하였는데 항상이치를
궁구하고 힘써 행하는 것에 주력하면서 과거공부를 통한 부귀영화를 바라지
않았다. 1845년 을사에 뜻이 맞는 친구 신세모,이해유,정한성과 함께
정재 유치명 선생을 찾아 경전과 예약에 대하여 질문을 하면서 1849년
기유에는 금강산을 유람하였다. 1867년 정묘에 친상을 당하자 묘옆에
초막을 짓고 3년의 시묘살이를 했으며 유고집이 있다.(소연공 파보. 세헌록)
(주)최필학(崔必鶴):소연공 최게(崔게)의 후이고 노암공 최광문(崔光文)의 손
ㅇ동한(東漢 22世)
초 휘는 홍진(泓鎭)이고 자는 관여(寬汝)인데 통덕랑공 최흥호의 후로
매국당공(梅菊堂公) 최규(崔珪)의 현손이다.임오년(1882)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기개가 뛰어나서 과민성이 있고 사념(邪念)없는 사무
처리로 벼슬이 돈녕부의 도정(都正)이며 수로 동지돈영부사에 올랐다.
(족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