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 정림사지(定林寺址) (사적 제3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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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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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 정문 오른쪽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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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 제9호) : 높이 8.33m의 목탑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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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 제9호) 안내판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 제9호) 기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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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 제9호) 상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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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 제9호) 오른쪽 기단부를 관찰하는 서호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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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 석불좌상(보물 제108호)을 안치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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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 석불좌상(보물 제108호) : 높이 562cm의 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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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 석불좌상(보물 제108호)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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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 석불좌상(보물 제108호) : 왼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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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 석불좌상(보물 제108호) : 오른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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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과 석불좌상 건물 정면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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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 연못의 비단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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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 연못의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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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의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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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 정문 오른쪽 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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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 관리사무소 뒤의 보리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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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시가지 로타리에 있는 계백장군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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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지(定林寺址) (사적 제 301호)
o 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54번지 (산 364)
o 백제시대의 절터로 1942년, 1979년, 1980년 등 여러 차례 발굴 조사로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太乎八年戊辰定林寺 大藏當草」라 (1942년) 새겨진 명문기와가
출토되어 고려 때까지 융성한 절이었다고 한다. (1028년 고려현종 19년)
※ 정림사지오층석탑(定林寺五層石塔) (국보 제9호)
о 백제시대 탑으로 높이 8.33m인데 149매의 화강암조각돌로 조립한 목탑형식의 오층
석탑이다.
•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부여를 점령한 공을 정림사지탑 1층 탑신에 새겨 놓았다.
(평제탑이라 한다.)
※ 정림사지 석불좌상 (보물 제 108호)
o 높이 562㎝ 거불(巨佛)로 오른팔과 왼쪽 무릎이 떨어져나갔고 몸체의 마멸이 심한
편이다. 또한 머리 부분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전체적인 양식고찰이 어렵다.
고려시대 중수할 때 강당자리에 모신 본존불로 보인다.
*** 사진촬영 및 정리 : 白岩 金在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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