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개 내 (Gaenea)
마음의 시(詩)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by joolychoi 2009. 9. 28.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없는 사랑말고
저무는 들녁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