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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그림

by joolychoi 2008. 12. 10.

 


♣.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그림 .♣

단원 김홍도 (檀園 金弘道 1745-?)
안견, 장승업과 함께 조선 3대 화가로 불리는 김홍도는

37살 때 ‘단원檀園’이라 호를 짓는다. 단원은 그가 좋아했던 명나라 말기의
유명한 화가 이유방의 호였다. 김홍도는 왕명을 받들어 여러 곳을 여행하며
곳곳의 명승을 화폭에 담았다. ‘총석정도’는 여행할 때 제작한 초본草本과
그때의 인상을 토대로 하여 나중에 제작한 것으로 을묘년화첩에 들어 있는 것.
이 화첩은 그가 50대에 들어서면서 자신감 넘치는 필치를 구사하던 때의 작품으로,
김홍도 화풍의 변천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단원도檀園圖, 135 x 78.5cm, 종이에 담채, 개인소장



산수도, 27 x 31.5cm, 종이에 담채, 조암미술관



옥순봉, 45 x 37.5cm, 호암미술관


군선도, 32.8 x 60cm, 국립중앙박물관



도강도, 99.3 x 51cm, 국립중앙박물관



우인도, 99.2 x 55.2cm, 국립중앙박물관


화조도, 종이에 담채, 26.5cm x 10cm, 개인 소장
미공개 화첩 단원이 말년에 그린 것으로 보이는 10폭의
수묵담채화로 이루어진 화첩


석가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수보리가 험난한 산행을

통해 참선하는 가운데 포말이 이는 물을 바라보는

장면을 그린,  수보리 구경



수차를 힘차게 밟으며 밝은 표정으로
생업에 열중하고 있는 인물을 그린, 수차도




달마의 면벽좌선 모습을 그린, 구년면벽좌선



중국 명대 절파풍의 화조화가 여기呂紀의 필법을 본떠
버드나무에 앉은  새 한 마리를 그린, 유상독조




한적한 들길에 동자를 데리고 나귀를 탄 인물을 그린,
무인식성명



웃통을 벗고 부채를 든 남자가 잡은 물고기를 응시하는

장면을 포착한,계색도


호방하고 원숙한 필치가 돋보이는 지팡이를 든, 두 맹인


당시 중국풍물을 다룬 이색적인 풍속화, 낙타를 탄 몽골인


북한의 국보 제46호로 지정된 묘길상을 그린 실경산수화, 묘길상


중국 명대 절파풍의 화조화가 임양林良의 필법을 본떠 그린, 화조도

풍속도


벼타작, 종이에 담채, 27cm x 22.7cm, 국립중앙박물관


빨래터, 종이에 담채, 27cm x 22.7cm, 국립중앙박물관

 

 

우물가, 종이에 담채, 27cm x 22.7cm, 국립중앙박물관


노중상봉, 종이에 담채, 27cm x 22.7cm, 국립중앙박물관


주막, 종이에 담채, 27cm x 22.7cm, 국립중앙박물관


길쌈, 종이에 담채, 27cm x 22.7cm, 국립중앙박물관


논갈이, 종이에 담채, 27cm x 22.7cm, 국립중앙박물관

 

씨름, 종이에 담채, 27cm x 22.7cm, 국립중앙박물관


서당, 종이에 담채, 27cm x 22.7cm, 국립중앙박물관


무동, 종이에 담채, 국립중앙박물관

풍속화는 왕의 국정자료였다

나라의 녹을 받으며 그림을 그린 화원이었던 김홍도가 당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단적으로 알려주는 기록이

국왕 정조의 개인문집에 남아있다.

김홍도는 그림에 솜씨가 있는 자로 그 이름을 안 지 오래이다.
30년 전쯤 나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이로부터 무릇 그림에 관한 일은
모두 홍도를 시켜 주관하게 하였다.’  여기서 그림에 관한 일이란 국정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화원들에게 풍속화를 그리도록 지시한 일을 말한다.”

조선 중기, 중인 신분으로 태어난 김홍도는 얼굴을 그려도 우리의 얼굴을,
산수山水를 그려도 우리의 산수를 그렸다. 심지어는 노자, 장자도
우리 얼굴로 재탄생됐고, 관세음보살도 우리 어머니가 승화된 모습이다.

단원은 우리 고유 화풍을 그리기 시작한 겸재 정선의 충실한 계승자로서
그 역할을 다했던 것이다.

화원에서 활동한 궁중화가였던 그는 정조의 총애를 한몸에 받은 행운아다.
어린 나이에 궁중에 들어간 단원은 그의 나이 11세때 영조 세손이던
정조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7살 때부터 표암 강세황에게서 화법을 배우기 시작해
진경시대 회화를 갈무리했다는 천재화가.


그런 인연 덕분인지 정조에게 일본의 지도를 그려 바치기도 했고,
정조의 명으로 수원 용주사 ‘삼세여래불탱 화’를 그렸다.

정조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용주사에서 펴낸 ‘부모은중경’의 삽화를 그린 이도 바로 단원이다.

학예에 뛰어났던 정조 자신이 그림을 직접 그릴 정도로
그림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재주 많은 단원을 아낄 수밖 에 없었다.


단원은 다른 이들과 달리 산수, 인물, 사군자, 화조 등 모든 분야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제도권’ 화가로서의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임금의 눈높이에 맞추다 보니 자연 절제된 선과 구도를
벗어나기 어려웠다는 평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그림은 당대 비슷한 나이의
신윤복의 화풍과 곧잘 비교된다.

권력과 멀리 있던 신윤복은 단원에 비해
자유로운 생활을 하다 보니 자유분방하고 호방한 그림을 그렸다.

한량과 기생의 애정 등을 묘사한 풍속도에서는 ‘모범생’
단원의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을 담아 냈다.

문근영, 바람의 화원에서 또 변신

       

      문근영이 또다시 대변신을 감행하는 모습이 방송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사도세자 예진의 단서 중 하나인 장벽수의 초상화를 찾기 위해

      극중 신윤복이 장벽수의 생일잔치에 은밀하게 기생 '설이'로 분장한다는

      설정으로 벌써부터 문근영의 기녀 변신 모습이 어떨지

      시청자들에게 큰 설레임으로 다가가고 있는데요

      바람의 화원 제작 관계자는

      '신윤복이 극 중 여장을 몇 번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여장 신은 기녀로 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어느때보다

      꾸미는 것에 공을 들였다며 이번 변신에 스탭들 모두가 넋이

      나갔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문근영은

       

      기생으로 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느낌도 색 달랐고 설레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게 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