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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그림 및 포토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여인들

by joolychoi 2008. 9. 4.

신고전주의의 맥을 이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

 

제목만 보면 한시대를 풍미한 화가를 바람둥이로 만든게 아닌지 모를 일이다. 

 

차갑고 딱딱한 분위기를 모델로 순화를 시킨 것일까?

그의 작품에서 많은 누드를 볼 수 있다.

"샘"

"물에서 나온 비너스"

"오달리스크"

등이 아주 널리 알려진 그림이다.

레오나르드 다빈치가 해부학 및 인체에 기반하여

그림을 매우 정교하게 그렸으나

앵그르의 그림에서는 과학적 오류가 종종 보인다.

"샘"에서 오른쪽 발을 들면 무게 중심을 잡기 위해

힙이 쳐지지 않는데 그림에서는 쳐져 있다.

"오달리스크"에서는 허리의 아름다움을 위해

척추뼈가 3개가 더 있는 기형적인 긴 허리 여인을 그리고 있다.

 

첫번째 만나 볼 여인은 샘의 정령인 처녀이다.

 

샘( La Source, 1856, 캔버스에 유화, 루브르, 파리)

 

이 작품은 1820년 앵그르가 40세쯤에 피렌체에서 그리기 시작해서

말년에 완성하였는데 두 제자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 추측되는 작품이다.

샘의 정령인 젊은 여인이 나체로 물가에서 물 항아리를 들고

일부러 물을 쏟아 버리고 있다.

그녀가 흘리고 있는 물은 자연의 근원을 뜻하는 샘이다.

다분히 작위적인 냄새가 나는 설정이다.

이 처녀의 인상은 매우 차갑게 느껴진다.

 

두번째 만날 앵그르의 여인은 비너스이다.

영원한 아름다움과 사랑의 표상,

미의 여신인 비너스, 아프로디테이다.

 

물에서_태어난_비너스-앵그르.jpg

 

물에서 태어난 비너스(마분지에 유채, 31 x 20cm),

 

아프로디테란 이름이 aphros에서 왔고 aphros는 그리스어로 거품이란 뜻이다.

갓 태어난 비너스가 바다 거품 위에 떠있다.

발 밑에 꼬마가 들고 있는 거울은

상징적으로 암컷을 표시하는 기호이다.

 

 

 

 다음 만날 앵그르의 여인은 오달리스크.

오달리스크는 오스만투르크제국(터키) 황제의 시중을 들던 밀실의 여인을 일컫는

말로서 관능적인 욕구를 충족시키주기 위해 대기하던 궁녀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주로 외국에서 잡혀온 여인들을 단장시켜 잠자리 시중을 들게 했다고 한다.

오리엔트에 대한 유럽의 호기심과 취미가 두드려지기 시작한 18세기 말부터

등장한다. 지금도 여전히 유럽에서는 동양 여성이 호기심의 대상이다.

다른 남성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은 금단지대(하렘)의 여인이란 점에서

모델로서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였고

온갖 관능의 판타지를 불어 넣을 수 있었다.

 

앵그르 외에도 많은 화가들이 오달리스크를 주요 모델로 삼았다.

 

오달리스크 1814, 갠버스에 유채 91×162cm루브르미술관파리

 

앵그르의 이 여인은 관능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허리를 길게 그렸다.

사실적인 것보다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한 앵그르의 의도라 볼 수 있다.

시대적 배경을 보면 프랑스가 오스만투르크제국에게 이슬람 지역을

빼앗겨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음밀한 부분을 공개함으로써

일종의 정복욕을 충족시켰다는 시각도 있다.

 

티치아노의 "우르니노의 비너스"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발팽송의 욕녀

앵그르의 초기작품에 해당된다.

로마 유학 2년째 되던 해(1808)에 그린 작품 
그의 미술세계는 로마에서 그 기초가 형성된다.

여인이 언제 가장 아름답고 매혹적일까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목욕하고 나온 여인의 뒷태

엄밀히 말하면 목선을 이야기 하곤 한다.

앵그르 눈에도 그렇게 보였나 보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밝은 빛이 등을 비추고 여성의 육체를 이상화한 걸작이다.

이와 같은 구도의 작품으로는 '하렘의 욕녀(소욕녀)'가 있다

 

 

발팽송의 욕녀(The Bather of Valpincon, 1808,

                                    캔버스에 유화, 루브르, 파리)

 

여기서도 자세 문제가 또 제기된다.

머리는 오른쪽을 보고 발은 왼쪽을 향하고 특히 발바닥을 보이는

자세를

취하며 편히 앉아 있을 수 없다는 것.

앵그르는 실제 모델을 앉혀서 그린 것이 아니라는 뜻인데...

 

이 그림의 원작의 이름은 "앉은 여인"이였다.

나중에 이 그림을 소유한 사람이 자기이름을 붙여

"발팽송의 욕녀"라고 하였다.

 

이 여인은  나중에 "터키탕"에 나오는 한 여인과 거의 똑같다.

엑스트라 배우도 아닌데

왜 그렇게 다시 등장할까?

그것도 아주 긴 세월이 흐른 뒤에....

 

 

다음은 앵그르의 여인들이 가는 목욕탕으로 가보자.

 

터키탕?

갑자기 몇년전에 터키 대사관에서 우리 정부에 항의하여

우리나라에 있는 터키탕의 이름을 전부 없앴던 기억이 난다.

 

여인의 나체를 잘 그리는 화가로 이름을 날리면서

프랑스 귀족들은 그에게 터키의 할렘을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주문을 받은 앵그르는 여러가지 참고자료를 보다가

터키주재 영국대사의 부인이 남긴 "터키탕의 견문기"을 읽고

이 그림을 그렸다.

83세때 일이다.

87세의 일기에서 보면 만년의 작품이다.

 

 터어키 욕탕(The Turkish Bath, 1862, 목판에 유화, 루브르, 파리)

앵그르의 여인들이 다 모인것 같다.

그가 즐겨쓰던 모델과 자세를 여기서 다 볼 수 있다.

오른 쪽 끝의 여인이 가장 애를 쓴 부분인데

실제로 자신의 두번째 부인 델피느를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한다.

왼쪽 끝의 욕탕 속에 있는 여인도
애초에는 없었으나, 나중에 구도상 넣은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서로 가슴을 만지는 레지비언

하인에게 머리를 맡긴채 상념에 빠진 여인

다양한 여인, 다양한 자세를 선보이고 있다.
가운데 있는 여인이 앞에서 말한 "발팽송의 욕녀"이다.

논란이 되었던 자세를 앉은 자세로 바꾸었다.

83세가 된 앵그르가 왜 이 여인을 재등장 시켰을까?

 

이렇게 심혈을 기울었는데 정작 의뢰했던 귀족은

이 그림이 너무 난잡하다는 이유로 인수를 거절했다.

그런 분위기를 없애려고 그림에 원을 그려

그 안에 든 그림외에는 다 지웠다고 한다.

이 그림은 그 귀족의 부인에게 전달되었다고 한다.

 

또 다시 오달리스크 여인이다.

 

오달리스크의 노예(Odalisque with a Slave)

앵그르, "시중을 드는 몸종과 오달리스크" 1839,캔버스에

유채,포그 미술관, 캠브리지, 매사추세츠주

 

티치아노의 그림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그림이다.

노예가 흑인으로 바뀌고 음악을 연주하는 말동무 노예가 들어가 있다.

여기서 흑인노예가 등장하는데

16세기 본격적으로 유럽열강의 식민지 침략으로

노예무역의 흔적이 그림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출 처 : [내 고향 가는 길에] blog.chosun.com/domalg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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