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bc 〈최악의 시나리오 울산대지진〉 2005년 2월 19일 울산방송 방영
바다와 인접한 국내 최대 공업도시 울산은 지진으로부터 안전한가!
ubc울산방송은 울산의 지진 발생 가능성과 대비책을 점검해 보는 ubc긴급진단 〈최악의 시나리오 울산대지진〉(연출 이정호)을 12일 오후 10시55분 방영하였다.
〈최악의"〉는 1643년(인조 21년) 울산에서 발생한 한반도 최악의 지진 실태를 규명하고, 이같은 규모의 지진이 현재 발생할 경우 예상되는 가상 시나리오를 통해 지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당시 울산 대지진은 땅이 갈라지고, 물이 솟았으며, 충남과 전남 지역의 성첩(성 위에 쌓은 낮은 담)을 무너뜨릴 정도였다. 〈최악의"〉 제작팀의 실험 결과 이 지진 규모는 리히터 규모 7이었으며, 이는 지난 1985년 멕시코와 1995년 일본 고베에 최악의 피해를 입힌 지진 규모와 비슷했다.
이정호 PD는 "역사적 사실과 현재 환경을 고려한다면 한반도에 지신이 일어났을 때 가장 큰 피해가 우려되는 곳이 울산이다"며 "지진에 대한 대비책과 대안을 다양한 각도에서 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프로그램은 김재관(서울대·지진공학연구센터 부소장)와 김소구(한양대·한국지진연구소장), 김익현(울산대) 교수의 자문을 받아 제작됐다. 서대현기자 sdh@ksilbo.co.kr [2005.02.11 21:47]
. 물로 큰 난리가 있다
국내 1호 ''쓰나미 박사'' "한국도 지진해일 영향권"
“남아시아 지진해일 참사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쓰나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잠깐 이러다 말 것 같아 걱정이네요.”
우리나라에서 ‘쓰나미’ 연구 분야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는 삼성화재 위험관리연구소 이호준(36·사진) 연구원은 남아시아 지진해일 참사 이후 바쁜 나날을 보냈다. 지난해 12월 27일 참사가 있은지 불과 3일 만에 주요 방송과 신문에 그의 얼굴과 이름이 등장했다.
지질학계에서 쓰나미 하면 역시 그의 이름이 언급된다. 그는 지난 94년 일본 동북대 재해제어연구센터에서 쓰나미를 처음 접한 뒤 지난해 국립방재연구소를 떠나기 직전까지 국내에선 ‘불모지’나 다름없는 지진해일 연구 분야에 매진해왔다.
그의 연구주제는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해일 진로를 예측하는 것. 이는 지진해일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인 일본에서도 관심 밖인 부분이다. 이런 공백을 매우기 위해 쓰나미 연구에 뛰어들었다.
“우리나라에도 언제나 지진해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그는 특히 일본의 혼슈 북서쪽 사가타시 연안지역을 주목한다. 이곳은 수십년 간 지진이 발생치 않은 ‘지진공백역’으로 일본에서도 특별관리 중이다.
사가타 지역에 강진이 발생할 경우, 우리나라에 지진해일이 도달하는 시간은 100여분. 때문에 일각에선 대비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지진해일은 일직선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해저 지형의 영향으로 좌우로 회전을 합니다. 그만큼 지역별로 어떤 피해가 예상되는지 정확하게 예측할 필요가 있죠.”
그는 일본의 지진해일 예측 소프트웨어 ‘투나미(TUNAMI)’를 변형시켜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지난 몇 년간 지진해일 시뮬레이션 분석 연구를 했다. 그 결과 사가타시 외해의 강진은 우리나라 해안 지대에 3∼4m 파고의 쓰나미를 일으키며, 이는 목조건물을 부숴버릴 정도의 세기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느긋하다. 1741년 간포우 지진, 1940년 가무이미사키 지진, 1964년 니이가타외해 지진, 1983년 동해중부 지진, 1993년 북해도남서외해 지진 등 기록에 남은 지진해일은 지금껏 다섯 차례. 다음 지진해일은 시간 문제다.
“현재 기상청에서 마련중인 지진해일 예측 시스템 구축은 예산문제 등으로 지지부진하고 있는데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합니다. 우리의 안전을 담보로 갖는 여유는 위험합니다.”
우한울 기자erasmo@segye.com 동해 바다에 연해 있는 강원도 삼척을 가면 삼척시와 그 이웃한 동해시 주민들이 매우 신성시 하며 보물로 여기는 한 비석이 있다. 강원도 지방유형문화재 제38호인 ‘척주동해비’ (陟州東海碑)가 그것이다. 척주동해비를 세운 미수 허목 척주란 삼척의 옛 이름으로 이 비석을 세운 이는 조선조 후기의 문신이며 대학자였던 미수(眉?) 허목(許穆, 1595년, 선조 28∼1682년, 숙종 8). 허미수는 60세가 넘도록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뒤늦게 관직에 오른다(최초 관직 사헌부 지평, 63세). 사헌부 장령(64세)을 하던 1660년, 조선조 17대 임금인 효종이 붕어(1659년)한 후 인조(16대)의 계비인 조대비의 복상(服喪)문제로 우암 송시열과 맞서 논쟁을 벌였다. 서인의 우두머리였던 송시열은 효종이 차남으로 왕위에 올랐으므로 조대비는 1년상만 입어야만 한다고 주장했고, 허미수 등 남인은 효종이 차남이어도 대통을 이어 왕위를 계승했고, 종묘의 제례를 주관한 사실상의 종통이므로 3년 복상이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이 예송논쟁에서 서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며 남인이 실각하게 되자 허미수는 삼척부사로 좌천되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 퇴조비(退潮碑)를 세우다 삼척부사로 부임한 허미수는 향약(鄕約)을 만드는 등 백성을 교화하며 여러 치적을 쌓아 목민관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하였다. 그리고 2년간의 짧은 부임 기간 중에 역사에 길이 남을 치적의 하나로 척주동해비를 건립한다. 당시 삼척에는 격심한 해파와 조수가 읍내에까지 밀려들어 강의 입구가 막히고 오십천이 범람하여 백성들은 인명과 재산을 잃어버리는 큰 재앙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방의 수령으로 백성의 고통을 안타깝게 여긴 허미수는 그가 평생 연구하고 깨달은 철학의 극치를 담은 오묘한 문장인 동해송(東海頌, 동해바다를 예찬하는 글)을 짓고는 그가 개발한 독특한 전서체(篆書體)에 담아 비를 세우게 된다. 이것이 바로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다. 비(碑)를 세운 이후 수마가 물러가고 바다가 잠잠해지다 허미수가 척주동해비를 세운 이후 신기하게도 아무리 심한 폭풍우에도 바닷물이 넘치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이후 사람들은 그 비석과 비문의 신비한 위력에 놀라 이 비를 퇴조비로 부르기도 했다. 비문에 의하면 본래 미수 선생이 비석을 세운 곳은 정라진의 만리도(萬里島, 지금의 큰 방파제 끝부분)였다. 그런데 48년 뒤인 1708년 누군가에 의해 비문이 훼손되는 일이 발생한다. 한편 김구용이 지은 『척주지』(1848년)에 의하면 1708년 비석이 파손되자 조수피해가 다시 일어나므로 당시 부사 홍만기(洪萬紀)가 사방으로 비문을 찾다가 허미수 선생의 문하생(門下生) 한숙(韓塾)의 처소에서 원문을 구하여 모사개각을 했으며, 1709년 2월에 부사 박내정(朴乃貞)이 죽관도(竹串島) 동쪽 산록에 비각을 짓고 옮겨 세웠다고 전하고 있다. 그후 이 비석은 259년간 그 자리에 보존되어 오다가 비각의 위치가 음지라 훼손의 염려가 있어 1969년 12월 6일 지방 유지들이 햇볕과 바람이 잘 드는 현재의 삼척시 정상동 죽관도(현재의 육향산) 산정으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장차 큰 해일이 오면 내 비석으로도 막을 수 없다” 금석문 연구가들에 의하면 척주동해비문의 글씨는 허목 선생의 전서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글씨라고 하는데, 특히 중국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독창적인 서체로 품격 있고 웅혼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한다. 비문의 신비한 힘이 알려진 이후 많은 사람들이 비문을 탁본하여 소장하였는데, 소장한 사람들이 물과 수재로부터 보호되었다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이 비문이 모든 재액을 물리치고 소원하는 바를 성취하게 하며 가정의 안녕과 번창을 보장해 준다는 믿음이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삼척시청 문화공보담당관실 안내문의 내용). 그런데 취재진은 현지 답사를 통해 이 비를 처음 세운 허미수 선생이 남긴 다음과 같은 말이, 입을 타고 전해 내려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같은 작은 해일은 내 비로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큰 해일이 오면 내 비석으로도 막을 수 없으니 그때는 이곳을 떠나라. 앞으로 불로 난리가 난 후에 물로 큰 난리가 있다.”(척주동해비가 있는 육향정 아래 육향식당 주인 김성근씨 증언, 42세)
[관련예언]탄허스님의 예언
김탄허스님-고박정희 대통령 자문역활
(지축이 서면) 우리나라는 동남해안쪽 100리의 땅이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토는 서부 해안쪽으로 약 2배이상의 땅이 융기해서 늘어날것입니다. 이러한 파멸의 시기에 우리나라는 가장 적은 피해를 입게 되는데 그 이유는 한반도가 지구의 주축부분에 위치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개벽이다- 발취]
만약 저의 사견인데 일본에 강력한 쓰나미가 발생할경우 현재 백두대간 (사진오른쪽) 에 있는 강원도 경상도 는 큰피해가 있지않을까 생각 합니다
1900년 이래 지금과 같은 자연재해로 큰피해를 입은적은 처음이라고 합니다순식간에..눈앞에서 수천 수만명의 생명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소운은 대운에 뭍힌다고 합니다
그 수만명의 사람들의 개인적인 운명이 천재이변의 위엄앞에 아무런.. 저항도 할수 없었습니다
우주가 돌아가는 크나큰..대세를 알지못하고는 미래는 우리에게 두려움뿐인 거겠지요 모든 변혁은 그내면에 원인이 있습니다
그런 원인을 알고 대비할수 있는 현명한 눈을 열수 있으시길 ...
위기관리를 아십니까?
기업이나 국가의 경우 태평성대에서는 긍정적인 긍정론자가 가장 적합한 리더 이지만 위기상황에서는 전혀 무조건적인 긍정론자가 오히려 재앙을 초래하게 됩니다.
위기관리는 최선과 최악의 모든 부정적인 상황에 대해 미리 시나리오를 구상해두고 그 하나 하나의 요소에 대해 대비책을 미리 강구해놓아 위기를 타개해 나가는 것입니다. 뛰어난 위기관리자는 긍정론과 부정론에 치우치지 않고 부정적상황을 전제로 긍정적으로 밀고 나가는 관리자를 말합니다.
현대사회의 기업과 국가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관리자들이 바로 이런 위기관리자 들입니다. 저희 미래문명은 이러한 여러가지 과정을 통해현실 생활속에서 미리 대비하는 위기관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방법을 각자 찾아보시기바랍니다 분명 있답니다.그해답을 찾고자 하신분
|